[신간탐색]여섯 명의 인물을 통해 중국 현대사 보여주기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국 작가 자젠잉에게는 베이징이 그렇다. 누군가에는 크기만 할 뿐 멋없는 도시 베이징이 그에게 아름다운 도시인 것은 거기에 베이징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초상>은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작가생활을 하는 자젠잉이 그려낸 베이징 사람 여섯 명의 이야기다.

<중국인의 초상> 자젠잉 지음·김명숙 옮김 돌베개·1만7000원

작가가 선정한 여섯 명은 기본적으로 그가 애정을 지닌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인물들은 작가가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고 있는 ‘사적 개인’이 아니라, 개혁·개방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사회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골라낸 하나의 전형으로서의 ‘중국인’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문학적 필치를 동원해 그려낸 ‘중국인의 초상’인 동시에, 특정 개인들의 삶에 투영된 중국 현대사의 변동을 기록한 중국 사회 르포라 해도 무방하다.

책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그의 이복오빠 자젠궈의 이야기를 보자. 자젠궈의 부모는 지식인이었으나 마오쩌둥을 숭상한 그는 급진적인 홍위병이었다. 그는 네이멍구자치구의 한 농장에서 7년 동안 농부로 살았다. 1976년 마오가 죽은 후에도 네이멍구를 떠나지 않고 13년을 더 머물렀다. 1989년 그가 베이징에 돌아왔을 때 베이징은 이미 문화혁명의 본거지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의 전진기지였다. 그해 톈안먼 항쟁의 열기 속에서 그는 열렬한 민주주의자로 변신했다. 그러나 톈안먼 항쟁은 무력으로 진압됐고 그는 다시 무기력해졌다. 손대는 일마다 실패했고, 1998년에는 중국민주당이라는 이름의 정당 창당을 기도하다 체포돼 9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중국인들은 더 이상 혁명을 원하지 않는다. 경제호황의 수혜를 입은 중국인들은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혁이 적절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급변하는 중국 사회에서 ‘혁명’의 열정을 버리지 못한 자젠궈 같은 이들은 시대에 뒤처진 ‘미아’ 신세가 됐다.

책에 등장하는 나머지 다섯 명은 중국 지식인 사회와 기업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저명한 소설가, 베이징대학 교수, 중국 가전업계의 대부, 부동산 거부, 중국 출판업계의 거물 등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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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영웅도 아니고 악인도 아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나름의 보람과 사회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중국의 도시인들일 뿐이다. 작가는 인물들의 삶의 궤적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대신, 그 궤적에 얽혀 있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과 개인적 선택들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그렸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