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책을 많이 사라, 질릴 때까지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김영선 옮김 돌베개·1만4000원

1. 서점 서가에서 책을 뽑아 펼치고는 코를 깊숙이 박고서 잉크와 종이 냄새를 들이마신다.
2. 모르고 같은 책을 두 번 산 적이 있다.
3. 한 가지 주제에 관한 책들을 모아놓고 그 가운데 한 권도 읽지 않은 적이 있다.
4. 표지 디자인이 좋다는 이유로 책을 산 적이 있다.

위 네 문항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제목만 보고도 이 책에 손을 뻗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책중독자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에 따르면 “(이런 이들은) 책중독이라는 깊고 비참한 나락을 굽어보고 있다.”

저자 톰 라비는 책중독이 “깊은 수렁”이라고 말한다. 책 좋아하는 이의 과장된 겸양이 아니다. 중독이라고밖에 표현할 길 없는 그의 탐서 행각은 처절하다. 그가 소개하는 한 가지 에피소드. 어느날 그는 총무게 24㎏짜리 디킨스 전집을 사들인다. 책 더미에 지쳐 있던 여자친구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녀는 “디킨스야, 나야? 책이야?, 나야?”라고 외치곤 집을 나간다. 절망에 빠진 그가 다음날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하고 책을 사서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책더미 속에서 오래 전에 사두고 잊어버린 디킨스 전집을 무려 세 질이나 발견한다….

책중독자에는 세 부류가 있다. 장서광과 애서가와 수집가다. 장서광은 사고 또 사는 사람이다. 볼라르라는 이름의 18세기 파리의 변호사는 순전히 책을 쌓아놓기 위한 용도로만 집을 여섯 채나 사들였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책들을 처분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 애서가는 읽고 또 읽는 사람이다. 이들은 책의 거죽에 열광하는 장서광과는 달리 책에 담긴 내용 때문에 책을 사랑한다. 수집가들은 ‘차이’에 열광한다. 책을 판본별로 구입할 정도로 사소한 차이에도 열광하는 이들에게 소량으로만 찍혀 나온 저자 초판본은 ‘머스트 바이’ 아이템이다.

저자는 “책중독자들은 반드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책을 쓴 목적이 책중독자들에게 중독을 치유할 방법을 알려주는 데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고금의 책중독자들의 행각을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풍자하지만, 그 풍자 속에는 그들의 열정에 대한 열렬한 공감이 배어 있다. ‘상상 속의 책방’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그가 묘사하는 이상적인 서점의 모습을 보라.

그곳에서는 “박식한 동료 책중독자들이 예의를 지켜가며 화기애애하게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서가는 미로처럼 배치되어서 작은 은신처들을 구석구석에 숨겨두고” 있으며, 서점의 주인은 “오로지 책 가까이에 머물 수 있다는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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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은 ‘치유하기’다. 하지만 “손가락에 침을 묻혀 페이지를 넘기는 사람은 즉시 교살당할 것”이라는 십계명을 갖고 있는 저자가 치유법따위를 알려줄 리 없다. 그는 오히려 즐기라고 말한다. “걱정 말고 즐겨라. 책을 많이 많이 사들여라. 그래서 심한 곤경에 빠져 다시는 책을 사고 싶지 않을 때까지.”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