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복원·복제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복원전문가가 본 ‘인사동 스캔들’의 허와 실

2007년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인 45억여 원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가 위작 시비로 법정공방까지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미술계를 다룬 영화 <인사동 스캔들>이 흥행 순항중이다. 복원과 복제, 밀수를 바탕으로 한 미술계 큰손들의 쫓고 쫓기는 치열한 사기극이 이 영화의 주내용이다. 당연히 영화에는 미술품 복원과 복제 과정이 묘사된다. 하지만 ‘옥의 티’가 자주 눈에 띄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국내 대표적인 복원 전문가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 소장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최 소장은 2007년 2800여 점에 달하는 이중섭·박수근 화백 위작 사기사건, <빨래터> 공방 등 등 국내 미술품 위작 시비와 관련한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최 소장을 통해 <인사동 스캔들>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소품 준비 소홀, 시대적 착오도
영화에서 이강준(김래원)은 절집에 놓인 <강화병풍>의 훼손된 부분을 직접 먹과 붓을 이용해 복원한다. 하지만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복원은 주변 환경의 영향에 따라 열화(산화 또는 알카리화해 훼손된 상태)한 유물을 원래 상태로 복구하는 것이지만 이때도 남아 있는 부분만 복원하는 것이지, 없어지거나 흐릿해진 부분을 새로 만들어 넣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숭례문 등 소실된 문화재를 다시 만드는 것도 엄밀한 의미의 복원은 아니다.

만약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린 작품이라면, 산성도를 조절한 물을 이용해 종이를 붉게 만든 산성 요인을 제거함으로써 그림 색을 더 선명하게 하고 더는 훼손되지 않도록 뒷면을 새로 배접하는 것이 복원이다.

또 영화에서 인사동 토박이 권마담(임하룡)은 ‘상박’을 일컬어 “한지 옛 그림을 얇게 벗겨내 똑같은 두 장의 그림으로 벗겨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에서 만든 것으로 얇은 종이 두 겹이 한 장을 이루는 이른바 ‘음양합지’를 청전 이상범 화백 등 일부 근·현대작가가 이용했던 것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두 겹을 가를 경우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아 그림을 망친다.

또 영화에서 이강준은 맑은 계곡물을 이용해 종이에 묻은 먹을 없애기도 하고, 회음수를 이용해 사라진 그림을 되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허구다. 최명윤 소장은 “종이에 쓴 먹은 물로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며 “다만 세월이 흘러 그림의 색소가 퇴색됐을 경우 특수약품을 투입해 그림의 색을 좀 더 진하게 살려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먹이 색깔을 내는 것은 먹에 들어간 아교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교가 습기의 영향을 받아 없어지면 우리 눈에 그림색이 흐리게 보이는 것이다. 보존하기 위해 다시 표구하는 과정에서 그림 뒤에 붙은 배접지를 떼어내려고 뜨거운 물에 그림을 담그기도 하는데 이때도 먹의 아교가 녹아 용출되면서 그림 색이 흐려진다. 이때 특수 보조약품을 쓰면 아교가 녹아 용출되면서 흐려진 부분의 색깔은 다시 진해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처럼 없어진 그림이 완전히 되살아나는 일은 없다.

진품이라면 국보급에 해당할 작품을 개인의 소견만으로 복원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전문가 집단이 진위를 가리고, 진품이라면 보존 처리 방법을 함께 논의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림을 소장한 배태진(엄정화)이 그림을 언론에 공개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진위는 2명의 전문가에게만 개인적으로 묻는 것으로 돼 있다.

기왕 복원이나 복제를 다루는 영화이니만큼 소품에도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속에는 경매에 오르는 고가의 작품이 즐비하지만 한결같이 수준이 떨어지는 것들이다. 실제 진품을 등장시킬 수는 없더라도, 요즘엔 ‘릴리프’라고 하여 좋은 그림의 복사본을 유화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도 있다. 고가의 작품이라면서 낮은 수준의 작품을 등장시킨 것은 최고급 주택에 싸구려 플라스틱 가구로 인테리어한 것과 다름없다.

최 소장에 따르면 영화 속 유리 소재의 복원용 책상도 종이 소재의 그림을 복제하는 기구로는 적합하지 않다. 복원 과정에서 원본 뒤에 붙은 배접지를 분리하고 다시 접착하는 과정에는 물이 필요하다. 물의 힘으로 그림을 그린 종이를 쫙 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와 같이 물을 흡수할 수 없는 재질의 책상에서 복원작업을 하면 물 묻은 그림은 겉돌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물을 흡수하는 두꺼운 나무책상이 배접지가 붙은 종이 재질의 그림을 복원하는 책상으로 이용된다. 유리 책상은 배접을 떼어내는 과정이 다 끝난 상태에서 그림의 밑을 비춰봐야 한다거나 찢어진 부분을 서로 맞출 때 필요하다.

시대적 특성을 놓친 부분도 있다. 과거에는 캔버스를 나무틀에 고정시킬 때 철못을 사용했다. 영화에서는 옛날 그림이라면서도 캔버스를 뒤로 넘겨 스테이플러로 고정시키는 현대적 기법을 사용한 게 눈에 띈다.

국보급 도자기 포장방법도 허술
수천만 원짜리 도자기를 영화처럼 포장하다가는 난리난다. 영화에서는 작은 알갱이 스티로폼을 넣은 큰 상자 안에 도자기를 집어넣는 것이 전부인데, 실제 고가 도자기를 운송할 때는 훨씬 더 정교하게 포장하는 것이 기본이다. 일단 한지 등으로 도자기를 포장한 후 다시 헝겊으로 감싼 다음 오동나무상자에 넣는다. 그런 뒤 포장한 도자기와 오동나무상자 사이의 좁은 여백에 솜을 넣어 만든 종이를 끼워넣어 도자기가 움직이지 않도록 한 다음 상자의 뚜껑을 닫고 끈으로 묶는다. 마지막으로 큰 궤 속에 이렇게 포장한 작은 상자들을 빼곡히 몇 개씩 넣어 상자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또 영화처럼 그림 위조단이 일하는 공장의 백열등 불빛으로는 제대로 위조품을 만들 수 없다. 그림의 세밀한 부분을 베껴야 하기 때문에 조도가 상당히 높은 환한 불빛이어야 한다.

최 소장은 “몽유도원도와 가상의 그림인 벽안도가 한 쌍을 이룬 것으로 설정했다면 두 그림이 그려진 재질도 같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몽유도원도>는 1447년(세종29년) 안평대군이 꿈에 도원에서 논 광경을 조선 최고의 궁중화원 안견에게 말해 그리게 한 것인데, 영화 속에서 <벽안도>는 안평대군이 안견의 꿈을 물은 것에 대한 안견의 화답으로 안평대군이 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린 그림으로 설정돼 있다. <벽안도>가 작가의 상상으로 지어낸 그림이기는 해도 영화 속 설명대로 <몽유도원도>와 <벽안도>가 한 쌍을 이루는 작품이라면 <벽안도> 역시 <몽유도원도>와 마찬가지로 종이가 아닌 비단에 그렸어야 한다는 게 최 소장의 얘기다.

반면 고화로 보이게 하기 위해 오래된 먼지를 이용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또 오래된 책의 시커멓게 썩은 옆부분을 오린 후 물에 누렇게 우려낸 물을 종이에 먹임으로써 그림이 오래된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자외선을 집중적으로 쐬면 종이가 빠른 속도로 산화하기 때문에 이것도 같은 이유로 사용되고 있다.

영화는 상업적 오락물이요 가상의 이야기다. 때문에 다큐영화가 아닌 이상, 영화가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오락영화의 범주에서 <인사동 스캔들>은 꽤 재미가 있다. 다만 미술을 아는 관객의 눈에는 잘못된 설정이 거슬릴 것이 분명하고, 미술을 모르는 관객은 혹 복제와 복원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습득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이 영화에 아쉬움이 남는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