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라얀, 그는 거장인가 괴물인가

올해로 탄생 100주년… 평론가들 독기어린 비판

"괴물을 신화로 만들지 말라.”
“저 늙은 악마의 부활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소서.”
각기 올해 초 영국 신문 ‘이브닝 스탠더드’와 ‘텔레그래프’에 실린 두 칼럼의 제목이다. 여기서 ‘신화가 된 괴물’ ‘늙은 악마’라는 섬뜩한 표현이 겨냥한 인물은 클래식 음악의 대명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다. 1989년 7월 16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올해 4월 5일로 100번째 생일을 맞았을 한 음악가에게 평론가들이 이처럼 독기 어린 비판을 퍼부은 이유는 무엇일까.

“출세 위해 나치에 입당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노먼 레브레흐트는 1월 30일자 ‘이브닝 스탠더드’에 게재한 자신의 칼럼을 “믿기 어렵지만 늙은 괴물이 되돌아왔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이후 A4 용지 두 장 분량으로 이어지는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잘츠부르크, 런던, 베를린, 빈 같은 서유럽 도시들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카라얀이 올해 클래식 음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고 지적하면서 “한 지휘자를 죽은 이들 가운데 불러내는 것은 영웅 숭배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카라얀이 출세를 위해 나치에 입당한 사실을 거론하며 그가 나치 시대의 정신적 아들이라고 규정하고, 카라얀이 작품의 다양한 특성을 아름다움이라는 획일적 틀에 구겨넣었다고 비판했다. 이 칼럼의 마지막 두 문장은 이렇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도덕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신화는 시간의 시험을 견디지 못한다.”

3월 13일 ‘텔레그래프’의 음악 칼럼니스트 이반 휴웨트는 “카라얀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그가 특별히 심오한 음악가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엄청난 부자였기 때문”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메이저 음반사들의 음반 출시와 기념 콘서트로 채워질 2008년 음악계에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휴웨트는 레브레흐트 못지않은 독설적인 필치로 카라얀이라는 한 인간과 그의 음악을 도매금으로 비판했다. 그는 카라얀의 음반을 해당 레퍼토리 중 최고의 해석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베를린 필의 비단결 같은 소리는 카라얀의 의지를 육화하는 도구로 쓰였을 뿐이라고 적었다. 그는 특히 “사랑이 결핍된 자리를 채우는 것은 권력”이라는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브 융의 말을 인용하면서 “카라얀의 전 생애는 권력에 대한 갈구로 채워졌다”고 비판했다.

‘유럽의 음악 총감독’이기를 꿈꾸었던 카라얀의 육신은 이미 19년 전 그의 모국 오스트리아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논쟁 속에서 살아 있다. 20세기 음악계를 통틀어 카라얀만큼 애호가와 평론가들로부터 극단적인 평가를 받은 인물은 없다. ‘기회주의자’ ‘독재자’라는 비난과 ‘지휘의 신’ ‘음악의 황제’라는 찬사가 그의 이름 주위를 공전한다.

카라얀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것은 상승과 확장의 욕망이다. 그는 1908년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의사이자 음악 애호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독주회를 열 만큼 피아노 연주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원 원장 파움가르트너를 만난 후 지휘로 방향을 바꿨다. 그는 1930년대 초 빈에서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의 ‘팔스타프’와 ‘루치아’ 공연을 듣고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토스카니니의 연주를 듣고 악보 위의 음표들이 지휘자의 손을 통해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 깨닫는다. 독일 울름 시립 오페라에서 열악한 환경과 싸우던 그는 27세에 아헨 극장 음악총감독으로 임명된 이후 탄탄한 출세 가도를 달린다. 2차 대전 직후 전쟁 중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활동을 금지당했지만 당시 음악계의 실력자 월터 레그의 도움으로 빈필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47세 되던 1955년에는 마침내 베를린 필 종신지휘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베를린 필, 라 스칼라, 필하모니아, 빈 국립 오페라를 넘나들며 사실상 유럽 음악계를 제패했다.

카라얀이 비판받는 이유는 그가 인생과 음악의 양면에서 거둔 성과가 지나치게 화려했기 때문이다. 음반 판매량에서 그의 옆에 설 연주자는 없다. 카라얀의 음반은 지금까지 1억1500만 장이 팔려나갔다. 이는 ‘노란 딱지’로 유명한 메이저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의 전체 음반 매출량 3분의 1에 해당한다. 레퍼토리 면에서도 그의 오른쪽에 설 지휘자는 드물다. 그는 베토벤, 브람스, 바그너, 브루크너, 슈트라우스 등 독일 관현악 음악의 핵심 레퍼토리에서 다른 지휘자들이 쉽게 넘보기 힘든 웅장한 성벽을 구축했다. 그는 관현악곡뿐 아니라 오페라에서도 탁월했고, 독일 음악만이 아니라 러시아나 이탈리아 음악에서도 빼어난 녹음을 남겼다. 그러나 엄청난 음반 판매량은 그의 비판자들로 하여금 그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근거가 되었고, 그의 넓은 레퍼토리는 음반 산업을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하려는 지나친 야심으로 평가절하되었으며, 그가 조련한 베를린 필의 화려한 소리는 음악의 외면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음반 지금까지 1억 장 이상 팔려

카라얀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카라얀 마스터 레코딩’

1935년 아헨 극장의 음악 총감독이 되기 위해 나치에 입당했던 전력은 끈질긴 논란거리다. 뒷날 카라얀은 이에 대해 당시 아헨 극장의 총감독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나치 당원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지만, 그가 나치 당원이 된 것은 그보다 2년 전인 1933년이라는 견해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20세기 전반 최고 지휘자로 알려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나치 전력에 대해서는 독일 음악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옹호하는 이들이 유독 카라얀에 대해서만은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3월 22일자 ‘텔레그래프’에 ‘위대한 카라얀을 칭송함’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한 음악 평론가 마이클 헨더슨은 앞선 두 칼럼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그들은 카라얀의 ‘장미의 기사’ ‘팔스타프’ ‘말러 교향곡 9번’ ‘시벨리우스 7번’ ‘60년대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들어보지 않았는가”라며 비판했다. 그의 나치 전력에 대해서도 “그가 나치 당원이었던 것은 쇼스타코비치가 공산당원이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물론 쇼스타코비치 애호가들이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말이다. 헨더슨은 베를린 필에서 47년간 연주했던 첼리스트 페터 슈나이더가 “나는 그를 사랑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면서, 자신도 전설적인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장미꽃을 얹어놓곤 했던 카라얀의 무덤 앞에 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정만섭씨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연주하면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이라며, “그의 스타일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널리스트 고종석이 작고한 평론가 김현을 옹호하며 사용한 표현을 빌리면, 카라얀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가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라얀처럼 되기는 어렵다. 다시 한 번, 그가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