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그리워!

[커버스토리]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제작 앞두고 인물논쟁 다시 점화

정권이 바뀌고 사회 분위기 따라 부침이 많았던 '평가'는 접어두고

전쟁 영웅이 아닌 '인간 이순신'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 통제사(이순신 장군)가 일부러 죽음을 택했단 말이오?"

"삶 대신 죽음을 택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허나 불멸을 위해 죽음을 이용할 수는 있겠지요. 세상에 대한 복수일 수도 있겠고... 이제 그 누구도 이 통제사를 두 번 죽이지는 못할테니까요."

소설 〈불멸〉(김탁환 지음)에서 노량해전이 끝난 후 한음 이덕형이 이순신 장군의 참모였던 권준으로부터 듣는 이야기다.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택함으로써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을 얻었다는 소설의 해석은 논란의 소지가 충분한 부분이다.

사후 400년 동안 계속돼온 신화 논쟁

이 소설을 소재로 한 대작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가제)이 최근 제작을 앞두자, 이순신에 대한 논쟁이 새롭게 불붙었다. 소설가 송우혜씨는 원작소설의 저자인 김탁환 교수(한남대 문예창작과)를 상대로 〈불멸〉이 이순신을 폄훼하고 있다면서 반론을 제기했다. 이순신 사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400여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 '이순신 신화 논쟁'이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 전투에서 마지막 승리, 장렬한 전사. 이순신의 일대기는 그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영웅'에서 '역적'으로, 다시 '영웅'으로 오간 당대의 인생역정도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소재다. 백의종군으로 출전한 후 불과 12척의 배로 무려 300여척의 왜군 전함을 무찌른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이야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소설 소재로, TV드라마 소재로, 최근에는 오페라로 그의 일대기가 무대에 올랐다. 영화계에서도 지난해 한때 이순신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 일대기는 연극이나 영화, 오페라의 소재일 뿐만 아니라 정권 유지의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했다. 3공화국 시절 이순신 장군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성웅'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어려운 상황에 나라를 구한 무인의 상징이 돼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박 전 대통령의 정권을 합리화하는 기반이 된 것이다. 충청도 아산 현충사가 성역이 됐고 이순신 동상이 세종로에 터를 잡았으며 그의 충효정신은 교과서를 통해 널리 교육됐다.

"난세를 이끈 원칙론자로 조명"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1980년대에 이르러 이순신의 성웅 신화는 깨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 유신시대에 이미 시인 김지하는 단편 희곡 〈구리 이순신〉에서 이순신에게 무거운 구리 갑옷을 벗으라고 주문했다.

이순신에 대한 재평가는 그의 라이벌이던 원균에 대한 재평가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이정일 울산대 교수(사학)가 1978년 고려대 석사학위논문 '임란시 원균의 공과에 관한 일고'를 통해 원균의 복권을 시도했다. 당시 이 논문은 학회지에 실리지 못하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 여러 경로를 통해 소개됐다. 이때 발행된 고정욱의 소설 〈원균 그리고 원균〉도 원균을 명장으로 조명, 큰 관심을 끌었다.

원균은 '용장'으로 평가되고 이순신은 영웅적 면모를 하나둘씩 잃었다. 이와 함께 이순신의 나약한 면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난중일기〉에 이순신은 자주 술을 마신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몸에 잔병도 많았다. 평소에도 신경성 위장병뿐만 아니라 안질-피로-곽란-배앓이로 고생했다. 〈난중일기〉에는 병으로 고통받는 모습이 자주 서술되고 있다.

무과에 급제한 것도 32세 때로 다른 사람들보다 늦었으며 성적도 중간 정도였다. 28세 무과에는 말에서 떨어져 낙방한 적도 있다. 전쟁 때는 너무나 조심스럽게 작전을 개시해 인근 관리의 장계에는 이순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임진왜란 후 정유왜란에 이르기까지 수년 동안 조정으로부터 부산을 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아직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는 끝내 역적으로 몰려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가 겨우 살아나 백의종군했다.

이순신에 대한 반(反)영웅화와 인간화 시도는 1998년 발행된 소설 〈불멸〉과 2000년 발행된 소설 〈칼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20여년간 지속됐다. 이 두 편의 소설은 베스트 셀러가 됐다. 출판사 황금가지는 드라마 제작에 맞춰 6월께 〈불멸〉을 새롭게 출간키로 해 또 한 번의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송우혜씨는 "박정희와 이순신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면서 "이순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나라를 구한 명장"이라고 주장했다. 송씨는 "〈불멸〉이란 소설을 이순신 장군이 읽는다면 억울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작가인 윤영수씨는 "이순신의 인간미를 살리려고 노력하겠지만 최대한 사실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유신정부는 완벽한 영웅 이순신을 원했고, 그 이후 사람들은 따뜻한 인간 이순신을 원했다. 2004년 대중이 어떤 이순신을 원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인물상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불멸의 이순신〉의 총연출자인 KBS 김종선 CP는 "드라마 〈태조왕건〉이 통일에 대한 정체성 문제를 다루었다면 이순신 드라마는 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역사에서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할 것인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CP는 "이순신에게서 어려운 시대를 끌어나간 원칙론자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순신이 쉽게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역경에도 원칙을 지켰고 끝내 가장 존경받는 사람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몇해 전 KBS 〈역사추리〉 팀이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에 이순신 장군이 선정됐다고 한다.

'원칙주의'라는 개념을 해군사관학교 임원빈 교수는 유학적으로 풀이했다. 임 교수는 "원칙이란 유학적 개념으로 이야기하면 의리라고 할 수 있다"면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며 옮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의리"라고 말했다.

이순신은 '의리'를 철저하게 지킨 사람이라는 것이 임 교수 주장이다. 임 교수는 "이순신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유학의 나라 조선이 배출한 인물"이라며 "충효정신도 바로 이 의리정신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순신이 퇴각하는 왜군을 섬멸하기 위해 굳이 노량해전에 나선 것도 일본이 의리를 저버린 패륜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조선이 일본에 은혜를 베풀었지만 이를 전쟁으로 되갚았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이순신의 유학적 역사인식이 왜군을 응징하는 신념의 밑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칼의 노래] 쓴 김훈

"장군은 순수하게 사명만 완수"

"역사적으로 다룬 것인데 내면을 중심으로 했다."

이순신 장군의 영웅화와 인간화 두 가지 측면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순신에게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있다. 성웅만은 아니었다. 그 역시 인간이다. 영웅과 인간의 두 가지 측면이 복합돼 있다고 본다."

이순신 장군에게서 현대 사회가 무엇을 배울 수 있다고 보나.

"이순신 장군은 아무 보상도 바라지 않았고 사실상 받지 않았다. 세상과 거래도 하지 않았다. 순전히 사명을 완수했다."

이순신 장군이 조정의 명을 어기고 부산으로 진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논란이 많다.

"임금도 해전에서 진퇴는 수군사령관에게 맡기는 것이다. 실무에 관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조정의 명령 자체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됐다."

원균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순신의 글에 원균을 비난하는 글이 나온다. 원균이란 사람은 개인의 전투는 잘 수행한 사람이다. 이순신이 조정으로 끌려간 후의 칠전량 참패는 원균 뿐만 아니라 조정의 책임도 있다. 이 전투는 도원수 권율이 사실상 기획했다. 도원수는 육군과 해군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영의정 류성룡과 임금도 이 전투를 승인했다. 전투의 패전에 대해 원균에게 전술적인 책임은 있지만 전략적 책임은 상부에 있다. 원균에 대한 비난은 가혹한 일이다. 그는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 이순신과 원균의 공과 비교는 의미가 없다. 누가 더 인격적으로 우월한가 하는 졸렬한 논쟁은 더 이상 안 했으면 좋겠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의 자살설은 어떻게 보나.

"정황이 성립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

소설가 송우혜씨와 〈불멸〉의 작가 김탁환 교수와의 논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보도를 통해 들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영화 [성웅 이순신]

1998년 작고한 영화배우 김진규씨는 생전 '이순신 장군님'으로 불렸다. 1971년 개봉된 영화 [성웅 이순신]과 1978년 개봉된 [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의 배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1960년 후반의 이순신 성역화 작업에 발맞춰 1970년 기획된 이순신 영화는 모두 3편이었다. 세 영화 모두 김씨에게 이순신의 배역이 주어졌다. 하지만 자신이 투자하고 이규웅 감독이 연출한 [성웅 이순신]만 제작됐다. 역시 김씨가 주연을 맡았다.

김씨는 1960년대 한국 영화 중흥기 시절에 흥행의 보증수표였으며 멜로물의 톱스타 미남배우였다. 영웅보다 더 높은 격인 성웅의 역할이 그에게 맡겨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배역한 이순신은 그러나 지나치게 미화되고 신격화돼 현실성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최무룡-신영균-남궁원-신성일 등과 함께 한국 영화계를 이끈 남자배우였다. 당시 전국여성인기투표에서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 이어 3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1955년 영화 〈피아골〉로 데뷔한 후 700여 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했다. [오발탄]과 〈흙〉〈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의 대표작이 있다.

[성웅 이순신]은 당시 개봉극장에서 14만7천 명을 동원했다. 텔레비전 보급으로 영화 관객수가 급격하던 줄어들던 시점에서 비교적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하지만 대작 영화로 제작된 탓에 수익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이순신 영화는 정책상 정부로부터 장려를 받았다. 국난을 극복한 영웅을 그렸다는 점에서 사극 영화에는 우수 영화에 주어지는 외화수입쿼터가 주어졌다.

김진규씨의 후반기 삶은 거의 이순신의 삶과 함께 했다. 그는 평소 이순신을 존경했다고 한다. 다시 배우에서 영화제작자로 변신, 제작한 영화가 [난중일기]이다. 장일호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서 그는 또 주연을 맡았다. 김씨는 이 영화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1962년에는 유현목 감독의 연출로 [성웅 이순신]이라는 영화가 제작됐다. 하지만 별다른 빛을 받지 못했다. 이때에는 김승길이라는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