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아까운 책]서구인의 반문명적 역사에 대한 자각

<아마존 : 정복과 착취, 경외와 공존의 5백년>
존 헤밍 지음 |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3만원

1912년 어느날, 페루의 아마존에서 고고학계의 대발견이 이루어졌다. 1500년 서구인이 처음 아마존에 도래한 이래 무려 400여년이 걸린 발견이었다. 미국인 하이럼 빙엄은 현지 농부의 제보를 듣고 안데스 절벽을 기어올랐다. 시야를 막은 빽빽한 수목을 헤치고 올라서자 그의 눈앞에는 마추픽추가 서 있었다.

잃어버린 도시가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마추픽추는 잉카 유적이지만, 빙엄이 그 경이로움을 느끼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먼 데 있고 굉장히 낯설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유적임을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존>도 흡사 마추픽추 같은 것이라면 어떨까. 저자 존 헤밍은 책 전체를 통해 아마존의 역사를 문명인 대 비문명인, 인간 대 자연이라는 두 개의 대비 위에 얹어놓았다. 아마존의 역사도 처음에는 서구 정복의 역사에서 흔한 야만적인 장면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저자가 진정으로 의도한 것은 야만성의 폭로라든가 반성의 촉구가 아니다. 오히려 서구인 스스로가 반문명적인 역사를 써왔음을 자각하고, 그들이 아마존 자연과 원주민의 고귀한 존재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면밀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할 증거를 확인하는 것이다.

아마존에서 ‘기록된 역사’는 에스파냐인 비센테 야네스 핀손이 원주민과 교전을 벌여 36명을 노예로 끌고간 것으로 시작된다. 다행이었을까. 이후로도 서구인들이 아마존에 도착했지만, 그들 눈에 아마존은 매력이 없었고 잠깐이나마 아마존은 미지의 세계로 남았다. 아마존을 탐험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는 서쪽에서 시작됐다. 잉카 정복이 거의 완료되면서 정복자들은 간절히 새로운 정복지를 꿈꿨고, 그들의 열망은 이윽고 몸에 황금을 바른 왕의 나라, ‘엘도라도’ 전설로 형상화되기 시작했다. 이제 아마존은 정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땅으로 여겨졌고, 정복자들이 아마존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하지만 서구인들은 아마존 숲에 들어가자 한없이 작아졌다. 잉카 문명을 정복한 더 문명한 인간들이 정작 아마존의 숲 천장 아래에서 한없이 무능한 인간으로 전락했다. 당시 서구인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대조적으로 원주민들은 숲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삶의 양태를 갖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정복자들에게 그런 건 관심사가 아니었다. 매번 ‘엘도라도’ 왕국이 아닌 것을 확인할 뿐이었고, 좌절이 늘어날 뿐이었다. 숲에서 살 수 없는 그들은 원주민을 파괴하고 학살함으로써만 탐험의 여력을 얻을 수 있었다. 원주민에게 식량을 얻고, 짐을 지우고, 배를 만들고, 노를 젓게 해야 했다.

이와 같은 모습은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단어 몇 개만 바꾸면 거의 그대로 대입이 가능하다. 엘도라도 신화가 무너진 자리에는 다른 것들이 들어와 채운다. 대농장이든, 대목장이든, 제국주의의 깃발을 꽂은 도시든, 가톨릭 신정 국가든, 대자본으로 무장한 고무 사업소든, 국부를 위한 벌목이든 인간들의 새로운 야망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 문명의 동력을 얻기 위해 아마존을 파괴한다. 그렇게 지난 500년 동안 아마존의 역사가 흘러왔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인간다움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종교적 휴머니즘에 기반한 열정적인 선교사들은 초창기부터 동포들의 잔학상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겼다. 고고학자와 자연학자들은 가장 먼저 편견 없이 아마존의 자연을 재인식하기 시작했고, 위대한 인류학자들과 오늘날 세르타니스타(아마존 인디언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탐험가나 인류학자들)의 시조격에 해당하는 이들이 출현했다. 아마존 역사를 구성할 또 하나의 강력한 축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김대수 <미지북스 편집자>

‘내가 만든 아까운 책’은 출판사 편집자들이 꾸미는 지면입니다. 공들여 만들었지만 주목받지 못한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