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안교육, 그 이상과 현실 사이

우리 헌법은 국민의 교육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누구나 차별 받지 않고 교육 받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교육은 헌법이 선언한 것과 달리 성과 위주의 획일화된 형태로 고착화된다. 대학진학률이 좋은 학교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성과 위주의 교육이 지속될수록 공교육을 거부하는 움직임도 늘어났다. 개헌을 통해 교육 받을 권리를 학습자 중심의 ‘학습권’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국가의 획일적인 공교육이 아닌, 학생이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의 대안교육이 지향하는 형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6·13 지방선거와 연계해 10차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방침을 천명했다. 개헌을 통해 지금의 공교육이 변화할 수 있을까. 1995년 처음 설립된 대안학교는 현재 얼마만큼 발전해 왔을까.

경기 부천 산학교 초등학생들이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발표회를 하고 있다. / 산학교 제공

“늘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저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특목고 입시경쟁에 던져졌습니다. 하교 후에 바로 학원으로 향해 밤 11시에 집에 와 새벽 3시까지 과제를 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과학자를 꿈꿨지만 점점 공부에 흥미를 잃었고, 그 자리는 ‘한 문제 차이로 인생의 결이 달라진다’, ‘이 경쟁에서 패배하면 인생에서 패배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말들로 가득 찼습니다. 결국 우울증과 시험공포증 진단을 받아 상담 및 약물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성적을 유지할 수 없다는 자괴감으로 자해와 자살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서 입시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했고, 더 이상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자퇴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청소년들은 공교육 내에서 자신의 기질과 상황을 인정 받을 수 없습니다. 또 다양한 욕구를 발현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학교 밖의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유승아·검정고시 출신 웹디자이너)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는 공교육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교육은 국가가 획일적으로 지정한 ‘공교육’이다. 그러나 정작 공교육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공교육을 처음 규정한 교육법은 1949년 12월 31일에 제정됐다(이후 1997년 12월 13일 교육기본법이 제정되며 폐지). 불과 7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공교육은 일찌감치 변질됐다. 교실은 입시교육의 장이 됐다. 나아가 ‘학습’은 사교육시장에 맡기고 학교는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했다는 극단적인 지적도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에서 학교 붕괴, 교실 붕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이들의 학교 밖으로의 이탈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가 2015년 발표한 ‘관계부처 합동 학교밖 청소년 대책’에 따르면 학령기에 학교를 떠난 청소년이 누적기준 36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더 이상 입시 위주의 획일적·주입식 교육으로는 학교가 학생을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미국, 유럽 등은 공교육의 붕괴를 인정했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는 홈스쿨링을 합법화해 학교에 가지 않아도 학력을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2016년 12월 7일 참의원 본회의를 통해 ‘의무교육 단계의 보통교육에 상응하는 교육기회의 확보 등에 관한 법률’을 의원입법으로 가결했다. 대안교육을 일본의 학교교육법·교육기본법과 동등한 위치로 인정한 것이다.(20페이지 박스 참고)

여기서 우리가 갖게 되는 의문이 있다. ‘왜 아이들이 반드시 학교를 다녀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라면 사교육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다양한 경험과 학습이 목표라면 학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가가 정해놓은 교육기관을 벗어난 곳에서의 학습은 학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대안학교에서 이수했더라도 학력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국가가 정해놓은 검정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대안교육이 실시된 지 올해로 2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대안학교는 국가로부터 학력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교육부의 기본방향도 공교육에서 잠시 이탈한 학생이 공교육으로 돌아오기 위해 쉬어가는 곳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300여개 대안학교가 비인가 운영

대안학교는 학력 인증 여부에 따라 인가학교와 비인가 대안학교로 나뉜다. 대안학교 중 학력을 인정해주는 인가학교는 특성화학교와 위탁형 대안학교밖에 없다. 2017년 현재 특성화학교는 71개곳이다. 위탁형은 일반고교 재학생 중 부적응자들을 대안교육기관에 맡겨 교육하되 원 소속학교의 졸업장을 주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렇게 인가된 대안교육 각종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2017년 기준으로 3072명이 있다. 전체 초·중·고교 재학생의 0.05%에 불과한 수준이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300여개의 대안학교는 비인가 형태로 운영된다. 비인가 대안학교들은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지방자치단체 학교밖 청소년지원조례에 따라 강사비의 일부로 보조금을 받거나 급식비의 일부를 지원 받는 수준이다. 대부분은 학부모가 내는 기부금이나 수업료로 운영된다.

대부분의 대안학교는 여러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비인가 형태를 고집한다. 1995년 만들어진 이후 20년 넘게 비인가로 운영되는 곳도 많다. 박민형 대안교육연대 정책위원장은 “인가를 받는다는 것은 교육과정이나 교원자격, 학력인정기준 등을 학교라는 공교육의 기준에 맞추겠다는 의미”라며 “그러나 대안학교만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 실험적인 교육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인가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가조건이 까다로운 것도 대안교육이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물적조건으로 운동장과 담보가 설정되지 않은 건물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교사의 70%가 교원자격증 소지자여야 한다. 또 국어·사회 등 의무교육에서 진행하는 수업의 50% 수준을 교육해야 하는 등의 조건이 붙는다. 기존의 공교육이 아닌 다양한 경험을 중시하는 대안학교로서는 교육부의 인가요건을 충족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셈이다. 또 학교 운영비 대부분을 학부모 기부금이나 학비로 운영해야 하는 대안학교로서는 경제적 여건도 무시할 수 없는 장벽이다.

대안학교 측은 대안교육을 인가 등의 방식으로 공교육 안에 포섭하기보다는 대안교육을 공교육과 동일한 선택지에 놓고 학생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지원 역시 학교 안 청소년과 학교 밖 청소년으로 이분화하지 않고 기존 공교육과 동등한 보편적이고 통합적인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안학교 측은 대안교육연대를 중심으로 2012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대안교육 지원법률안 제정을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대안교육을 공교육과 동일한 학습으로 인정하고, 이를 학력으로 인정하고자 하는 공감대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안교육 지원법률안 3차례 무산

실제 KBS 방송문화연구소가 2015년 초·중·고교 재학생 학부모 9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안교육에 대한 학부모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63.7%가 대안학교가 공교육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응답자의 96.3%는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으며, 이들 중 53.2%가 여전히 보낼 생각이 없다고 답변했다. 또 대안학교에 보내지 않으려는 이유로 ▲기존교육에서도 다양하고 창의적 교육이 가능하다(37%) ▲과도한 교육비와 각종 학부모 활동 부담 때문(31.7%)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22.8%) 등을 들었다. 대안학교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내 자식은 굳이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들의 심리가 반영된 셈이다.

산학교 초등 6학년생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연극공연을 하는 모습. / 산학교 제공

백승준 서울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센터장은 “입시 위주 공교육 중심사회에서 대안교육이 긍정적 인식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이어 “대안학교 스스로도 그동안 문제로 지적돼 온 것들을 자체적으로 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그렇지만 공교육 안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고, 자기 나름대로의 꿈과 계획이 있는 아이들을 학교 안에 묶어두려 하기보다는 ‘이런 길도 있다’고 공교육 스스로 대안교육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교육기회확보법’ 대안교육 인정

우리나라는 초·중등교육법 제8절 각종학교 항목으로 제60조 3항에 대안학교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앞서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 즉 ‘부등교(不登校)’ 학생 문제를 심각하게 겪어온 일본은 지난 2016년 12월 ‘의무교육단계에서 보통교육에 상당하는 교육기회의 확보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교육기회확보법’)’을 제정했다. 일본의 공교육을 전제로 한 법의 하위항목으로서 대안학교를 두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 대안학교 지원법을 둔 것이다.

실제 일본의 부등교 학생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교육기회확보법이 제정되기 전인 2014년 한 해 동안 장기간 등교하지 않는 학생이 하루 180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문부과학성 보고에 따르면 2014년 초·중학교 전체학생 1012만736명 중 연간 30일 이상 등교하지 않은 부등교자는 12만2902명에 달했다. 이 중 5만7095명은 이미 그 전 해부터 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나머지 6만5807명은 새롭게 부등교한 학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학생의 12.1%에 달하는 수준이다. 일본 내각부의 2015년 <자살대책백서>에 따르면 1972~2013년 사이 자살한 16세 이하 아동·청소년 수는 1만8048명으로 특히 여름방학 후 2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자살하는 건수가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단순히 학교에 가기 싫다는 수준을 넘어서 학교에 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일본 각지에서 대안학교를 운영해온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지속적으로 법안 제정을 촉구했고, 초당파의원연맹은 이들의 요구에 따라 법률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팽팽했다. 자의든 타의든 학교를 벗어나 국가의 의무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거부한 학생들에게 기존 학생들과 동등한 형태의 의무교육 이행을 인정하는 것이 정당한지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일본 자민당 보수파 의원들과 공산당 의원들은 공교육의 틀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학교 밖 아이들을 수용할 방안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했다. 이탈자를 인정하는 순간 이탈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이러한 반대로 교육기회확보법은 기존의 발의안보다 상당 부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재의 교육기회확보법은 대안학교가 독자적인 커리큘럼을 가지고 공교육과 동등한 형태의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다만 이념적으로나마 대안교육을 법으로 인정했다는 부분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해당 법률 및 부칙에는 프리스쿨 등에서 배우는 아이들의 의사도 존중돼야 한다는 점과 그 배움을 정부가 재정적·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점 등이 명시돼 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