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장애아 엄마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2) 「장애학교 주변을 떠도는 엄마들」-섭식지원은 전적으로 엄마의 몫

학교에 손발이 다 묶여 사는 현실에서 경제활동은 사실상 불가능

시리즈 목차

1 시각중복장애인 효정이 엄마 복순씨

2 장애학교 주변을 떠도는 엄마들
3 내가 외로운 법정 싸움을 하는 이유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현실은 그러나 장애인 특수학교 건립계획만으로도 마을 주민들이 갈라질 정도로 큰 갈등을 빚는다. 장애인들도 당연히 누려야 할 교육 받을 권리와 행복추구권이 집값 하락이라는 논리 속에 번번이 무시된다. 장애아의 부모들은 비장애인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들을 획득하기 위해 투사가 돼야만 한다. <주간경향>은 세 차례에 걸쳐 장애아를 돌보는 엄마들과 주변의 사연을 통해 오늘날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되짚어 보려 한다. 2회는 장애인 특수학교의 식사지원 거부로 매일 아이 점심밥을 먹이려고 학교 주변을 맴도는 엄마들의 이야기다.

“싹싹싹.” 서울 북부의 한 특수지체장애인학교의 적막한 교실에서 가위질 소리가 들린다. 수현이(11·뇌병변장애)의 엄마는 양식장 작업장에서나 쓸 법한 삼중날 가위로 식판 위 밥과 반찬들을 사정없이 자른다. “싹싹싹.” 사지를 뒤틀면서도 엄마가 주는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아이의 시선은 쉴새없이 움직이는 가위를 향해 있다. 3분여를 식판 위 반찬들과 씨름하던 엄마는 가위 잡은 손을 바꾼다. 또다시 “싹싹싹.” 식판 위에 가지런히 올라와 있던 반찬들이 밥알보다 작은 조각으로 흩어졌다. 엄마는 ‘그래 이 정도면 먹을 수 있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입에 숟가락을 넣는다. 아이는 열심히 엄마가 준 음식을 씹어 삼킨다. 반은 입밖으로 흘러나오고 반은 목구멍으로 들어간다. 엄마는 무표정하게 또다시 아이의 입에 숟가락을 집어넣는다. 장애아에게 음식은 맛을 느끼는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이다. 입으로 먹을 줄 알아야 아이가 살아가니까 엄마들은 필사적으로 아이를 먹이고 또 먹인다.

청각장애아들을 위한 특수학교로 운영됐던 광주인화학교 전경. 성폭력사건으로 2012년 폐교됐다.(기사 속 학교와는 무관함)

엄마가 와야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아이들

씹는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일부 아이들은 바닥에 깔린 매트가 식탁이다. 수민이(15·뇌성마비중복장애) 엄마는 아이를 교실 창가 옆에 마련된 매트 위에 거의 눕히다시피 안아 미음을 입 안으로 흘려보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아이는 삼키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사지를 버둥거린다. 엄마의 몸에 힘이 들어간다. 아이를 더 꼭 붙들고 유동식을 떠서 입 안에 빠르게 집어넣는다. 교실은 가위질 소리와 아이들의 음성 외에는 적막하다. 웃고 떠들면서 식사하는 모습은 교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엄마나 활동보조도우미가 오지 않는 아이는 방치된다. 한 아이는 오늘도 교실 앞에서 벽을 보고 앉아 있다. 온몸을 고정시킨 책상에 앉아 물끄러미 벽 어딘가를 쳐다본다. 점심시간이 시작된 지 10분이 지났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교사는 식사를 하고 있는 아이의 부모에게 몇 차례 말을 걸 뿐 방치된 아이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한 엄마는 “선생님들은 섭식지도를 해주지 않아서 부모나 도우미가 오실 때까지 아이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2월 8일과 29일 두 차례 서울 북부의 한 특수지체장애인학교를 찾았다. 오전 9시30분 등교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띄엄띄엄 학교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체구가 작은 아이들은 유모차형 휠체어를 타고 오기도 하고, 키가 훌쩍 자란 아이들은 몸을 지탱해주는 특수장치 ‘이너’가 부착된 휠체어를 타고 오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들어간 엄마 중 일부는 다시 학교 밖으로 나왔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한참 지나도 학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장애인 활동보조인들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함께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특수장애인학교 주변에는 아이 엄마들이 인공위성처럼 둥둥 떠다닌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직장을 나갈 수도,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선생님이 부르면 5분 이내에 달려갈 수 있는 어딘가에 앉아 있어야 한다. 어떤 엄마들은 무리를 지어 학교 근처 교회 커피숍에 삼삼오오 모여 시간을 때우고, 어떤 엄마들은 학교 1층에 마련된 ‘학부모 대기실’에 앉아 시간을 흘러보낸다. 특수학교에 보내기 위해 먼 지역에서 오는 엄마들은 더더욱 발이 묶인다. 차로 집까지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점심식사시간이 되고, 하교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전공과 학생을 제외한 초·중·고 아이들은 오후 2시30분~3시면 하교한다. 엄마들이 학교 주변을 맴도는 이유는 오로지 아이들 점심밥을 먹이기 위해서다. 운이 좋아 장애인활동보조인을 구한 엄마들은 잠시나마 학교에서 해방될 수 있다.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제 자식처럼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보조인도 있지만 바우처 시간을 좀 더 많이 주거나, 아이의 장애가 경증인 집으로의 이동이 잦아 고정적으로 한 보조인을 오랫동안 고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한 아이의 엄마는 “활동보조인이 갑(甲)이고 장애아 엄마는 을(乙)”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엄마는 “지금은 점심식사 지원만 하면 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는 아이의 대소변을 치우는 것도 엄마의 몫이었다”고 말했다. 학교와 집이 가까워 아이를 교실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오면 ‘OO 어머님, OO이가 소변을 봤네요. 기저귀 좀 갈아주세요’라고 문자가 왔다. “아무리 학생이 지체장애, 중증장애를 갖고 있더라도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의 1순위 책임자는 교사여야 하는데 선생님들은 늘 엄마를 불러서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갈게 했어요.” 때문에 특수장애인학교에 다니는 아이 엄마들 사이에서도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이 있다. ‘자주 불려 가지 않으려면 아이 기저귀는 떼고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5분 이내 달려갈 수 있는 곳에 늘 대기

엄마들이 학교에 묶여 있으면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상시근로는 물론이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도 할 수가 없다. 일부 엄마들은 학부모 대기실이나 근처 커피숍에 앉아 수세미를 떠서 온라인 판매를 하거나 아빠의 경제력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이날 학교 인근 커피숍에서도 다같이 모여 뜨개질을 하는 장애아 엄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커피값은 고작 1500원이다. 학교에 손발이 다 묶여 있는 엄마들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일부 엄마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맞교환해 돌보기도 한다. 직계가족은 장애아이의 활동보조 도우미를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아이를 맞교환해 돌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장애인활동보조 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어 가계에 보탬이 된다. 아이의 장애상태와 경제적 형편에 따라 정부에서 지급하는 바우처 시간은 제각각이다. 월 80시간도 있고 많게는 월 200여시간도 받는다. 뇌병변에 뇌성마비, 근육병까지 있는 수현이 엄마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월 118시간을 받고, 서울시에서 주는 100시간을 별도로 받는다. 학교를 다니면 10시간을 추가로 준다.

엄마들은 오후 12시가 되자 1층 학부모 대기실 또는 구내식당, 인근 커피숍에서 나와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향했다. 감각운동놀이실, 작업훈련실 등 각 교실에 흩어져 있는 아이들을 휠체어에 태워 반으로 이동한 뒤 담임교사 또는 보조교사가 배식한 식판에 담긴 음식을 잘게 잘라 먹였다. 이것이 이들의 일상이고, 장애아 엄마들의 현실이다. 최근에는 공익요원이 돌아가며 엄마를 보조해 함께 음식을 잘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섭식지원은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다.

인권위 시정권고에도 현실은 여전

엄마들은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해당 학교는 인권위로부터 시정권고를 받고 지난 11월 특수보조원들만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도록 교칙을 개정했다. 현실은 그대로다. 여전히 엄마들은 아이들의 식사를 위해 학교 주변에서 버티고 있어야 한다.

이 학교 관계자는 27일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아이들 밥을 먹이는 것은 교사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섭식지도는 할 수 있지만 섭식지원 즉,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것은 교사가 하는 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일차적으로 교사의 역할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일반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의 역할은 아이들이 밥을 잘 먹나 지도하는 것이지, 밥을 먹여주는 게 아니다”라며 “보조와 공익이 도와준다고 해도 어떻게 교사가 한 반의 식사를 다 책임질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식사지원을 해줄 수 있는 특수실무보조도 현실적으로 1학급당 1명씩 배치할 수 없고, 35명의 공익요원에게 아이들의 신병처리나 식사지원을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는 가정에서 교육하는 순회교실 13개, 본교 학급 40개가 설치돼 있다. 또 순회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195명이 매일 등교한다. 특수실무보조는 20명 상주한다. 관계자는 “각 가정마다 정부가 지원해주는 장애인활동보조인 서비스도 크게 보면 우리 세금으로 나가는 국가 예산”이라며 “엄마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보조인을 구해서 아이들 식사부담을 덜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본 특수학교 3분의 2가 섭식지원

“한국 사회는 장애아가 겪는 여러 문제를 놓고 학교와 교사, 부모가 대립하는 모습만 비춰지고 있는 것 같다.”

임용재 일본 군마대학교 교수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중도·중복장애학생 교육권 증진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이같이 꼬집었다. 일본은 장애아의 섭식이나 의료지원서비스 등 문제가 생겼을 때 학부모의 요구에 따라 교사들이 함께 협력해나가며 지역사회 등에 개선을 요구하는 반면, 한국은 협력해서 개선하기보다는 서로 반목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일본 내 장애인 특수교육 및 장애인 교육지원 분야의 권위자다.

임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현재 문제제기되고 있는 교내 섭식지원 문제 및 의료지원 문제는 일본이 1990년대부터 고민하고 개선하려 했던 문제”라고 말했다. 군마현의 경우 28개 특수학교가 있고 그 중 3곳에 지체장애학교가 설치돼 있다. 그는 “특수학교 안에서 섭식지원이나 의료적 케어가 필요한 아이들로 인해 부모가 무한정 대기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라고 주장했다. 15명의 아이들 섭식·의료지원을 위해 15명의 엄마가 대기하기보다는 이들의 섭식지원을 해줄 수 있는 새로운 인력을 배치하고, 나머지 15명의 엄마들은 직장을 구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 전체에도 이익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가가 나서서 장애인 관련 모델사업을 할 것을 제안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협력사업 형태로 장애인 시범학교를 만들어 섭식지원이나 의료적 케어가 필요한 아이들이 엄마 없이 학교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일본은 지역별로 모델사업을 산발적으로 해왔고, 시행착오를 거쳐 2003년부터는 전국 특수학교의 3분의 2에서 자체적으로 섭식·의료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적 정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교사가 섭식·의료지원을 하다 사고가 나더라도 무한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국가인권위의 시정권고를 받은 특수학교 소속 교사도 장애학생의 가래흡인 지원을 해왔지만 가래흡인기의 캐뉼라(몸 속에 삽입하는 튜브)가 빠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가래흡인 지원을 회피하게 됐다. 그는 “아무리 호의적으로 아이들에게 의료지원을 하는 교사라도 항상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