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형 가짜뉴스 주무대는 ‘단톡방’

일상과 정보를 공유하는 카톡에서 도는 글 끊임없이 탄생

미세먼지 정보, 건강정보, 풍경사진, 웃긴 이야기, 통신비 절약 팁, 누군가의 손자 자랑. 경남 출신으로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안명희씨(60·가명)의 초등학교 친구들로 이뤄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는 하루에도 온갖 이야기가 올라온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성추행 사건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측이 꾸민 음모라거나, 최순실씨의 태블릿 PC에 든 박근혜 전 대통령 연설문은 모 청와대 비서관이 종북세력과 짜고 빼돌린 것이라는 등의 내용도 온갖 이야기에 포함된다.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이런 이야기가 낯선 일은 아니다. 단톡방은 언제나 ‘퍼온 글’로 넘실댔다. 안씨는 “유독 이런 걸 잘 올리는 사람이 있다. 무시하기도 하지만 충격적인 내용을 받으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반응하면서 열변을 토하는 사람이 2~3명은 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의 대선캠프인 더문캠은 지난 9일 ‘가짜뉴스대책단’을 출범시켰다. 24페이지 분량의 ‘사례집’도 공개했다. 안씨가 단톡방에서 본 글들도 사례집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허위정보를 담은 ‘카톡에서 도는 글’은 지난 미국 대선으로 ‘가짜뉴스’의 시대가 오기 전부터 일상적 풍경이었다. ‘한국형 가짜뉴스’에 대해 미국 사회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이유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가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당한 신연희 강남구청장. 사진은 2015년 12월 17일 서울무역전시관을 둘러보는 모습이다. / 정지윤기자

여선웅 강남구의원 카톡

가짜뉴스 전부터 일상적 풍경

‘가짜뉴스’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엔딩 더 패드(Ending the Fed)와 더 폴리티컬 인사이더(The Political Insider)는 지난 미국 대선으로 화제가 된 대표적인 가짜뉴스 사이트다. 엔딩 더 패드에서 게재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뉴스는 페이스북에서 96만건 공유됐다. 더 폴리티컬 인사이더가 위키리크스를 인용해 내보낸 ‘힐러리가 IS(이슬람국가)에 무기를 팔았다’는 기사도 78만9000건 공유됐다.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가 집계한 결과 미 대선 전 3개월 동안 가짜뉴스 사이트에서 제작한 흥행 상위 20개 뉴스의 공유·댓글·반응 수는 총 871만건으로, USA투데이 등 미국 주요 언론사 19곳의 많이 읽힌 상위 20개 뉴스의 반응(736만건)보다 많았다. 이들 가짜뉴스 사이트는 광고수익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국의 가짜뉴스는 이런 식으로 영향력을 비교할 수 없다. 애초에 뉴스의 형태로 유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형 가짜뉴스’는 ‘받은 글’, ‘퍼온 글’, ‘유명인 어록’ 등의 제목을 단 경우가 많다. 누가 생산하는지 불분명하다. 이모티콘도 섞여 있고, 누가 봐도 기사체가 아닌 연예인 루머 등을 다룬 정보지의 뒷담화 형태다. 애초에 한국인들의 뉴스 소비는 사회관계망보다는 포털사이트와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촛불 국면에서 “BBC나 NYT 등 세계 유력 언론이 탄핵과정이 비민주적이었다”고 비판했다는 블로그 형태의 가짜뉴스가 돌았으나 온라인 상에서 빠르게 반박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친밀한 사이의 모임에 툭 던져진 ‘정보’이기 이전에 ‘정서’를 두드리는 화법은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안씨는 “문재인 엘시티 비리 연루설이 단톡방에 올라왔다가 뉴스에서 찾아볼 수도 없었고 아니라고 해서 잠잠해졌다. 그러나 또 다른 일이 있으면 다른 소식이 올라온다”고 전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이 ‘이 기사는 논쟁 중’으로 표기하는 등의 노력을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다. 박이대승 불평등과 시민성 연구소 소장은 “개념적으로 뉴스보다는 전통적인 괴담의 형태에 가깝다. 집단의 결속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유되는 소재로 작동한다”며 “핵심은 정보의 내용이 사실인지 묻지 않는 친밀한 공동체의 속성 자체”라고 진단했다. 단톡방을 유지하고, 상시적으로 일상과 정보를 공유하는 문화 자체가 ‘카톡에서 도는 글’이 끊임없이 탄생하는 토양이라는 것이다.

‘단톡방 문화’가 토양이지만 씨앗은 따로 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자유한국당)의 ‘카톡 루머’ 유포는 ‘한국형 가짜뉴스’의 특징을 보여준다. 구청장이 개입한 사실과 100명 넘는 인원이 모여 있는 단톡방의 존재가 단적이다. 중앙선관위는 신 구청장이 문 후보 낙선을 목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비방 및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22일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신 구청장은 “문재인을 지지하면 대한민국이 망하고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 “놈현·문죄인의 엄청난 비자금”이라는 내용이 담긴 글을 약 150명이 있는 카카오톡 창 등을 통해 공유한 사실이 여선웅 강남구의원(민주당)의 폭로로 드러났다. 강남구청은 “강남구청장은 58만 구민의 기초자치단체장으로서 많은 지역구민들과 다양한 소통창구로 수많은 단체 카톡방이 자의 반 타의 반 연결되어 있다”며 “수많은 카톡 메시지를 미처 읽어 보지도 못하고 받은 그대로 무심코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명했으나 여 의원은 추가 자료를 공개했다. 단톡방 멤버가 신 구청장에게 “신연희님 감사합니다. 보수 전 밴드 전파했습니다”라고 답하고, 신 구청장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사주풀이를 공유하며 단톡방 멤버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신 구청장이 해당 글을 공유한 단톡방은 몇 개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선미 의원(민주당)은 2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연희 구청장이 문재인 전 대표 비방글을 올린 카톡방 멤버에 대권주자로 나선 김진태 의원과 이인제 의원, 조경태 의원도 있다. 서석구 변호사와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등도 그 카톡방 멤버였다”며 선관위에 엄정한 대응을 촉구했다. 보수정치권이 의도적 ‘공작정치’로서 단톡방의 게시글들을 생산하고 선출직 공직자마저 가담해 퍼나르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미국 대선판에 등장한 ‘가짜뉴스’보다는 2012년 ‘국정원 댓글부대’건과 더 유사하다. ‘보수 조직’이나 팬클럽, 당원 모임을 동원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무대가 단톡방이 됐을 뿐이다.

정치세력의 헛소문 유포 엄단해야

‘한국형 가짜뉴스’의 대응법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정치세력이 여론전에 직접 개입하고 헛소문을 조직적으로 유포하는 일을 엄단하는 일이다. 신 구청장은 구청 공무원들을 동원해 서울시 정책과 박원순 시장을 비방하는 ‘댓글부대’를 운영한 혐의로 고발됐으나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기소하지 않았다. 일부 직원들이 기사 내용을 바로잡기 위한 개인적 의견표명이었고, 특정 정당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위한 선거운동이 아니었다는 이유에서다. 여 의원은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검찰의 강남구청 댓글부대 불기소 건은 아쉬운 결정이었다”며 “또다시 구청장이 여론에 개입하는 문제가 발생했는데 검찰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가짜뉴스’ 자체를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대선의 핵심 변수로 여겨도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더문캠 ‘가짜뉴스대책단’은 사례집에서 ‘전두환 표창’을 가짜뉴스로 지목했지만, 문 전 대표가 군복무 시절 표창을 받은 것 자체는 사실로 드러났다. 문 전 대표가 직접 TV에서 밝힌 내용이었다. 안희정 지사의 박수현 대변인은 “후보는 표창받았다고 말하고 캠프는 이를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아이러니”라고 했다. 불리한 내용의 소문을 차근차근 검증하거나 해명하기보다는 ‘가짜뉴스’로 몰아붙이고 보는 전략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역설적으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시민의 모임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보도를 ‘가짜뉴스’로 몰아붙이는 형국이다.

미국에서도 가짜뉴스가 정말 트럼프의 당선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는 논란거리다. 김낙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트럼프 당선의 원인을 분석할 때 각자가 관심사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언론계는 가짜뉴스, 여성계는 여성혐오, 노동계는 중서부 벨트 노동자들의 소외 등을 언급하지만 트럼프 당선은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힐러리의 지지율 악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 FBI의 이메일 재수사인데, 이를 전달한 ‘진짜뉴스’ 역시 트럼프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 김 교수는 "주류 언론이 효과가 있으니 가짜뉴스가 주류 언론 흉내를 내는 것"이라며 "주류 언론이 자신들의 과오는 덮고 '피자게이트' 등 황당한 소재에 빠진 가짜뉴스에만 한탄한다"고 말했다.

단톡방은 ‘루머’의 유통경로이나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들이밀어 빠르게 반박하는 조건을 형성하기도 했다. 대선 전 악의적 소문은 언제나 있었으나 신연희 구청장처럼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글을 전파하는지가 명확해졌다. SNS로만 관심사를 소비하는 ‘파편화된 개인’이 미국형 가짜뉴스의 토대라면, 한국형 가짜뉴스는 여전히 강력한 ‘공동체 정서’에 기대고 있다. 불분명했던 생산자와 유통자를 잡을 단서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