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예비군 거부’ 전과 52범도 만든다

병역 거부와 달리 반복해서 처벌 받아… 위헌성에 대한 논의 급물살

양심에 따른 예비군 거부자인 신모씨는 전과 52범이다. 2003년 8월 현역병으로 입영해 2005년 8월 전역한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여호와의 증인 신앙을 갖게 됐다. 예비군 훈련이 종교·양심에 맞지 않는다고 결정하고 2006년부터 훈련을 거부했다. 곧바로 향토예비군설치법(향군법) 위반으로 기소돼 법정에 서기 시작했다. 처벌 받은 훈련 거부에 대해 재통지가 나오고, 새로운 훈련도 계속 있어 처벌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렇게 받은 재판이 52차례다.

국제앰네스티 회원들이 지난 5월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인권상황을 담은 보고서 ‘감옥이 되어버린 삶 :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서성일 기자

병역 거부에 비해 사회적 관심 덜 받아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시작한 10월 14일 미 국무부는 ‘2014년 국제 종교자유 연례 보고서’를 배포했다. 국무부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종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헌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약 600명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구금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7월 한국 대법원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에 대해 징역 18개월을 선고한 하급심을 확정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대법원은 지난 8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다녀간 직후에 유죄 판결을 또 내놓았다.

헌법재판소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처벌하는 것이 위헌인지에 대한 세 번째 결정을 앞두고 막바지 토론이 한창이다. 헌법재판관들 사이에서는 예비군 거부 처벌의 위헌성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지난 두 차례 헌법재판에서는 향군법이 병역법의 부록처럼 다뤄졌지만, 이번에는 전과 52범을 만들어내는 향군법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것으로 안다. 일부 재판관이 열의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양심에 따른 예비군 거부가 입영 거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거듭해서 처벌된다는 것. 2000년대부터 사회적으로 논란이 시작된 병역 거부의 경우, 최근에는 징집이 면제되는 징역 1년6개월이 ‘정찰제’처럼 선고된다. 이 기간을 복역하면 병역법에 따라 예비군 편성에서 제외된다. 과거에는 향군법뿐 아니라 병역법도 거듭 처벌했다. 징집 거부로 징역을 살게 하고, 다시 영장을 보내 다시 징역을 살게 하고, 마지막에는 군대로 끌고 가 항명죄로 처벌했다.

대표적으로 충남대 의대생이던 정모씨는 1969년 병역기피죄로 10월을 복역하고, 1974년 병역 거부로 다시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1977년 출소하는 날 병무청 직원이 징집영장을 집행해 부대로 데려갔고, 항명죄로 다시 4년을 복역시켰다. 집총 거부의 법정 최고형이 징역 2년이었지만 누범이라며 형량을 올렸다. 당연히 의과대학도 마치지 못했고, 현재는 충남 금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최근 병역 거부자는 1년6개월 징역을 받으면서 예비군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금 예비군 거부자들은 병역까지 마친 이후에 집총과 군사훈련을 거부하게 된 경우다. 예비군은 현역 또는 상근예비역 복무를 마친 사람이 대상이며, 기간은 전역일로부터 8년째 되는 해 12월 31일까지다. 연차에 따라 동원 미참가 훈련과 향방 예비군 훈련으로 나뉜다. 불참하면 보충훈련 이후 고발된다.
시민사회도 예비군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처벌에 두 번째 합헌을 결정하고, 예비군 거부를 처벌하는 향군법은 처음으로 다뤄 합헌을 결정했다. 향군법에는 관심이 적었다. 법조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병역 거부는 2년 가까운 징역이 걸린 문제이므로 양심을 논할 수 있지만, 주로 벌금인 예비군 거부에 양심을 논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몇 시간 예비군 때문에 전과를 감수하는 일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반드시 처벌하자는 쪽에서는 예비군부터 무너지는 것을 우려의 눈으로 경계하고 있다. 예비군조차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면 본격적인 전투를 벌이는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법조계 관계자들도 “본질적인 면에서 보면 병역법과 향군법에 대한 합헌 이유는 다르지 않다. 한반도의 현실이라는, 애매하고 추상적인 내용밖에 없다”고 말한다.

유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은 규약 위반”
결국 병역법과 향군법을 나누는 현실적인 선은 거듭처벌이고, 이중처벌 불가라는 대원칙에 대한 판단이 우선과제다. 대법원은 이중처벌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인다. 대법원은 2007년 판결에서 “훈련소집 통지에 응하지 않을 때마다 각각의 죄가 성립하고, 그렇게 성립한 수 개의 죄의 관계는 실체적 경합관계에 있다”고 선고했다. 형법 교과서에 등장하는 용어인데, 쉽게 말해 크게 묶어서 하나로 처벌하는 종류의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대법원은 군사정권 시절 병역법에 대한 거듭처벌도 인정해 왔다.

거듭처벌 문제를 정리하고 나면 병역법과 비슷하게 양심에 대한 논점으로 접어든다. 이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매우 안 좋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는 2006년부터 “한국의 양심적 병역 거부 처벌이 규약 18조 위반”이라고 밝히고 있다. 18조는 양심과 종교에 자유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처벌된 388건에 대해 같은 결정을 내렸고, 현재 1000건이 넘게 걸려 있다. 순서대로 규약위반 결정이 나올 예정이고, 정부와 법원에도 부담이다.

이에 더해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지난해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징역형 선고는 자의적 구금에 해당하므로 규약 제9조 위반이라고 했다. 대법원 판결까지 거친 한국의 구금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거칠게 말하자면 대법원 판결이 반인권적인 엉터리 절차라는 것이다. 유엔 자의적 구금 워킹그룹(Working Group on Arbitrary Detention)도 병역의무에 대한 거듭처벌은 자의적 구금이라고 밝히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국제사회에서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외국에 나가면 얼굴도 들기 어려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6월 3일 현재 지구상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로 수감된 사람은 723명이다. 아르메니아인 31명, 에리트리아인 15명, 투르크메니스탄인 8명, 한국인 669명이다. 이 보고서 직후 아르메니아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수감자를 석방했다. 그래서 같은 해 11월 13일에는 에리트리아 3명, 투르크메니스탄 8명, 나고르노카라바흐 1명, 싱가포르 18명, 한국 599명이 됐다.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도 지난해 사면을 실시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예비군 거부를 처벌하는 관련법에 대한 지난 7월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을 앞두고 시민단체 회원들이 죄수복 차림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 연합뉴스

“소수자 권리 보장해주는 것이 인권”
우리나라에만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가 넘쳐가는 게 아닌데도 수감자가 이렇게 많은 것은 대체복무가 없기 때문이다. 병역은 물론이고 예비군조차 대체가 불가능해 전과 52범이 등장한다. 독일의 경우 1949년 서독 기본법에서부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1956년부터는 대체복무 근거를 마련했다. 현재 징병에 의한 군복무와 대체복무 기간은 9개월로 같다. 마찬가지 징병제 국가인 대만도 2000년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했다. 상비역의 복무기간은 1년10개월이며, 종교적 이유에 의한 대체복무는 그보다 50%가 길다. 러시아는 복무기간 12개월, 대체복무 24개월이다. 이스라엘은 양심적 병역 거부가 원칙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1970년대부터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일시적으로 입영을 연기할 수 있고, 매년 연기를 갱신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병역 거부가 인정된다.
대체복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변하고 있다. 2011년 헌재의 합헌 선고 이후만 보면, 2012년 신학용 의원실 조사에서는 찬성 43.5%·반대 54.1%, 2013년 한국갤럽조사에서는 찬성 68%·반대 26%였다. 2014년 병무청 조사에서는 찬성 38.7%·반대 58.3%였다.

병역 거부로 감옥에서 지냈던 임재성씨는 “병역 거부와 같이 오랜 기간 사회적 차별 속에 살았던 소수자 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국민 과반수의 찬성이 자연스레 나올 사안이었다면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1만8000명이 침묵 속에 감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는 10%의 동의도 얻지 못하는 것이 소수자이고, 그럼에도 이들에게도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인권”이라고 최근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 토론회에서 밝혔다. 이들에게 선고된 총 형량은 5만년에 달하고 있다.

소수자의 고통을 중단시키는 길은 다수결에서 자유로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결단밖에 없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한 것이 의회가 아니라 연방대법원인 이유다. 전수안 전 대법관도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거나 현행 병역법(과 향군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대체복무제를 도입케 하는 직접적이고 고유한 방법이고, 헌재가 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대법원이 먼저 무죄 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대체복무제의 즉시 도입을 촉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같은 자리에서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유럽 인권재판소를 모델로 아시아 인권재판소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재판소를 서울에 만들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이 기구가 창립되면 유럽 인권재판소가 오래전부터 거듭해서 밝혀온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즉, 헌재로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과 예비군 거부를 인정하지 못하고는 아시아 인권재판소를 주도하기 힘들다. 병역법과 향군법을 용인하는 이상 아시아에서는 유럽인들보다 낮은 인권을 누려야 한다는, 인권의 보편성을 무시한 입장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임재성씨는 2005년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호소했다. “저는 무죄 판결을 간절하게 요구합니다. 사실 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저 개인은 무죄를 선고 받아도 다시 군 입대영장이 나올 것이고, 신념을 지키고자 입대를 거부하면 또다시 병역법 위반으로 구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무죄 판결을 원하는 이유는 병역 거부자에게 공존의 가능성을 인정해주는 판결이 개인을 넘어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대법원에서까지 유죄를 받았고, 출소 후 유엔을 찾았다. 조만간 있을 헌재의 결정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