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정치권 들러리 안되려면 청년들이 더 분출해야”

‘100일 청년불복종운동’ 나서는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

송년호 인터뷰를 통해 2011년을 정리하려니 쉽지 않았다. 국외적으로는 유럽발 재정위기로 대표되는 세계 경제의 암운과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반(反)월가 시위, 카다피 체제의 붕괴로 이어진 재스민 혁명의 확산 등에 눈길이 갔다. 국내적으로는 안철수 현상과 서울시장 보궐선거, 희망버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등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치·사회적 요구가 부각된 것에 극적인 의미를 두고 싶었다.

무너지는 것이든 나타나는 것이든 그 현상의 이면에는 주요한 동인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꼽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파와 소통의 수단일 뿐이다. 변화의 촉매가 아니라 주체는 다른 데 있다. 기자는 올 한 해 국내외적 변화의 중요한 동력 가운데 하나를 청춘이라고 부르고 싶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2011년 종합베스트셀러 1위인 것은 놀라움을 넘어 기이하다. 청춘콘서트는 ‘안철수 현상’과 ‘콘서트 열풍’을 낳았고, 청년세대와 공감하는 소셜테이너의 활동은 등록금 투쟁과 희망버스의 불씨가 됐다. 청춘의 분노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가공스런 힘을 보여주었다.

변화의 해에 변화를 이끈 청년세대의 과거·현재·미래 그 자체라고 할 만한 인물을 딱 만났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이다. 대학 4년간 식당 서빙, 전화 리서치 조사, 마트 판매, 전단지 배포, 화장품 테스트 등 안 해본 ‘알바’가 거의 없다. 졸업 후에도 학자금 대출 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전전했다. 서른이 돼서야 1000만원 정도 되는 빚을 간신히 갚았다. 그의 ‘찌질한’ 과거다.

청년유니온은 그가 5명의 동료와 함께 시작한 국내 첫 세대별 노동조합이다. 15~39세의 비정규직과 정규직, 구직자, 실직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10년 3월 설립했지만 지금까지 교섭권이 없는 법외노조로 남아 있다. 네 차례에 걸쳐 30건의 노조설립신고를 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그마저 패소했다. 교섭 상대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청년세대의 ‘꽉 막힌’ 현실이다.

그런데 희한하다. 정부, 기업, 업주, 정당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아니, 최소한 그런 시늉을 하고 있다. 전국 편의점 실태조사, 피자업체 30분 배달제 폐지 캠페인, 커피전문점 주휴수당 지급 소송 등과 같은 청년유니온의 활동이 노동부와 업주를 움직여 속속 목적한 바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행정소송도 비록 패소는 했지만 취업준비생, 구직자, 실업자 등의 노동3권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등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정치권은 아예 목을 매는 지경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물론 한나라당까지 청년 비례대표제를 얘기하며 청년세대에 적극적인 구애를 하고 있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년유니온에 대해 “왜 서울시와 노사협약을 하자고 안 오느냐”며 찾아오면 만날 뜻을 피력했다. 청년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이런 움직임이 그나마 그에게는 ‘희망적인’ 미래라고 할 만하다. 지난 12월 15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청년유니온 사무실에서 그와 마주앉으면서 든 생각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났습니까.
“아뇨. 노동특보를 통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아직 날짜를 못 정했어요. 올해 안에 만나겠다고 공개석상에서 말했다는 얘기 외에는 제가 정확하게 아는 게 없어요.”

김 위원장은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 가운데 주휴수당(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한 개근자에게 보장된 유급휴일에 대한 수당) 문제로 만났던 한 젊은이의 사연을 소개했다. 대학에 다니기가 버거웠던 그는 중간에 그만두고 대형마트에서 빵 판매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돈을 벌어 다른 공부를 해서 더 나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소박한 꿈은 저임금에다 고된 노동으로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만두려는 찰나에 청년유니온이 제기한 주휴수당 기사를 본 거예요. 노동법을 몰랐던 그는 저희와 상담하면서 급기야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막 토하더라고요. 자기는 너무 힘들고 희망마저 찾을 수 없어 한국을 떠나려고 했다는 거예요. 호주 같은 데에 워킹(홀리데이)으로 가서 거기서 꿈을 찾아보겠다고 말이에요. 대한민국 청년이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그 에너지를 겨우 다른 나라에 가서 쓰겠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 젊은이는 청년유니온 덕분에 주휴수당도 받게 됐고, 아주 조금이지만 희망을 되찾았다고 한다. 지금은 노동부가 실업자 및 구직자를 대상으로 교육·훈련비를 지원하는 직업능력개발계좌제로 네일아트를 배우고 있단다.

올해는 특히 청년문제가 많이 분출했는데 가장 극적인 사건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이 아닌가 싶어요.
“저도 그걸 보고 20~30대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투표를 했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그동안은 기성세대가 젊은층의 정치·사회적 무관심을 질타했잖아요. 어떻게 보면 억눌려왔던 걸 분출한 측면이 있는데, 안철수 현상과 이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뜻밖에도 김 위원장은 청년세대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박원순·안철수 현상을 차분하게 바라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긍정적인 것은 (청년세대가)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만 경계해야 할 지점도 있다고 봐요. 안철수 현상이 결국 또 다른 성공신화를 원하는 청년들의 염원일 수 있다는 것이죠. 2007년에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은 우리 경제를 살리겠지 하는 마음이었잖아요. 안철수 현상도 기성정치의 구태와는 다른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라고 하지만 그 역시 이 대통령 뽑을 때처럼 경제, 성장, 성공에 대한 또 다른 심리의 표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렇다면 그건 상당히 위험하고 한계가 있다고 봤어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분출한 청년세대의 에너지가 개인의 성공이나 신화가 아니라 청년문제를 일으키는 구조를 바꾸려는 의지로 모아져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예를 들면 정치권도 이런 현상을 보고 청년을 내세워 청년 담론에 묻어가려고 하죠. 한나라당, 민주통합당, 하물며 통합진보당조차도 청년을 비례대표 1번으로 내세우며 자기네가 개혁적이네, 진보적이네, 그런 생각을 한다면 착각이에요. 정말 그것이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변화의 의지로 가 닿아야지 그냥 애들을 들러리로 내세우겠다고 하는 걸로 가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그렇게 안 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더 많이 분출하고 더 많이 자기 얘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안철수 교수한테 환호하는 걸로 그쳐서는 안 되죠.”

돌아보니 올해 유난히 청년문제와 관련한 인물을 많이 인터뷰한 것 같다. 김여진·김제동·안철수·김진숙·김어준 등이 그런 경우이고, 다른 사람과의 인터뷰에서도 청년문제가 많이 언급됐다. 이런 얘기를 한 뒤 김 위원장에게 물었다.

많은 사람이 젊은층에 공감과 위로, 격려를 보냈던 것은 그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청년세대가 불쌍한 존재로 전락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힘 없는 목소리로) 예, 맞아요. 그래서 씁쓸한 거죠. 청년유니온도 결국 청년세대의 절망을 팔아서 뜬 거죠. 청년들 불쌍합니다, 힘듭니다, 이제 좀 그만 질타하세요, 우리 얘기를 좀 들어주세요…. 어떻게 보면 창립 후 지금까지 2년 가까이 그 얘기만 해온 터라 청년세대를 불쌍하게 규정하는 데 저희도 일조한 셈이죠. 사실 저희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되게 싫어하거든요. 그 말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해도 된다’와 똑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위로가 되니까 그 책이 팔린 것 아니겠어요.”

김 위원장은 대학 시절부터 ‘당사자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거대담론보다 등록금 문제와 같은 당면한 문제에 더 많은 공부와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청년유니온도 그가 천착해온 당사자 운동을 구체화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문제를 고민하면서 느낀 절망과 희망은 어떤 것입니까.
“최근 10대가 자살하고 고등학생이 어머니를 죽인 사건이 이슈잖아요. 오늘 새벽에 신문을 보던 친구가 울더라고요. 아이팟과 곰인형을 같이 묻어달라는 아이의 사연이 너무 가슴 아팠거든요. 그런 뉴스를 보면 우울하죠. 저희 문제이기도 해요. 그런 아이들이 20대가 되고 30대가 되니까요. 그냥 그 엄마가 나쁜 거야라고 넘길 수만은 없는 문제잖아요. 그 엄마는 이 험한 세상에서 험한 꼴 안 당하고 살도록 하고 싶은 욕망을 자식에게 투영한 것일 텐데…. 그게 절망스러워요. 승자독식 구조. 청년은 약자일 수밖에 없고, 당장 바뀔 수 없는 구조잖아요.”

희망적인 것은 어쨌든 정치권이 청년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하면서 내년 총·대선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지난 10·26선거에서 보여준 에너지를 유실시키지 않고 긍정적으로 모아나간다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방법으로든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만들게 하고, 그렇게 해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내년에 온다는 것이죠. 많은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내년이 아니면 언제 또 청년들에게 주목하겠느냐고….”

효과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대규모 집회도 할 계획입니까.
“일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기획을 하고 있어요. ‘100일 청년불복종운동’을 할 거거든요. 1월 1일부터 4월 9일까지가 딱 100일이에요. 에너지의 파고를 높이기 위해 매달 마지막 주에는 ‘청년불복종 콘서트’를 하고요.”

한·미 FTA가 청년유니온이 다루는 청년문제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거죠.
“우선 그 자체가 전 계층에 피해를 주는 문제인 거죠. 특히 공공의 영역을 파괴하는 부분은 청년들의 일자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죠. 안 그래도 낮은 일자리의 질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또 하나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한·미 FTA는 새로운 산업도, 따라서 새로운 일자리도 가로막는 거거든요.”

각 정당에서 논의되고 있는 청년 비례대표제 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슈퍼스타K’ 방식이냐, ‘나는 가수다’ 방식이냐 등 선출 방식에 대한 논의까지 나오고 있는데….(김 위원장은 주인공으로 선발되는 슈스케 방식이 아닌 청중평가단으로서 선택하는 나가수 방식을 선호한다는 입장이다.)
“슈스케를 하기 이전에 최소한 박원순 시장처럼 청년들의 얘기라도 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얘기를 듣고 무엇을 고민하고 바꾸어야 하는가에 대해 정책의 전부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자기들이 생각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거기 동의하는 청년들이 와서 얘기 좀 하라고 해야죠. 가타부타 아무 것도 없이 그냥 자기 당에 줄 서라, 줄 서서 니네가 청년이니까 니네 문제는 니네가 만들어라는 식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순서가 바뀐 거죠.”

김 위원장에게 비례대표 1번을 준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정치를 할 생각은 있습니까.
“참 요즘 인터뷰하면 다들 이런 질문을 직접적으로 하시네요. 아직 조합원들하고 공식적으로 토론된 건 아니라서 조심스럽긴 해요. 개인적인 고민은… 회피할 생각은 없어요. 필요로 한다면,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면 잘해야 되지 않나, 우리가 한나라당보다는 잘하겠지, 뭐 이런 마음…(웃음)이에요.”

내년에는 어떤 활동에 주력할 계획입니까.
“올해까지는 아르바이트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내년에는 축적된 성과를 바탕으로 좀 더 큰 목소리를 낼 생각이에요. 예를 들면 포괄임금산정제(미리 기본임금에 모든 수당을 포함해서 임금을 정하는 제도)는 교묘한 악법이에요. 저희 조합원(민폐밴드)이 노래로도 만들었듯이 그야말로 청년들을 ‘자유이용권 인생’으로 전락시키는 거죠. 이 문제를 갖고 싸워볼 예정이에요. 간호실습생 문제도 심각해요. 또 하나는 청년협동조합을 만드는 거예요.”

신동호가 만난 사람

꼭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글쎄요. 아, 조합원, 후원회원 많이 가입해 주세요.(웃음) 저희 슬로건이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질러라’예요.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대적해서 널리널리 퍼뜨리려고 하는 슬로건이죠. 저희가 언제까지 절망을 팔아야 할 것인가가 고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더 얘기하고 더 드러내야 한다는 것 또한 저희 고민이기도 해요.”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