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누가 그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등록금 벌려다 냉동창고에서 사망한 대학생, 이마트-하청업체 간 보상문제로 장례절차 중단

지난 7월 2일 경기도 고양시 탄현 이마트에서 냉동기 수리작업을 하던 중 사망한 고 황승원씨(23·서울시립대)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황씨를 포함한 작업인부 4명의 죽음에 대한 보상문제 때문이다. 황씨는 이마트에서 숨졌지만, 황씨가 일하던 직장은 오륜이엔지라는 작은 냉동기 수리업체다. 이마트가 트레인 코리아에 하청 준 일을, 트레인 코리아가 오륜이엔지에 재하청을 줬던 것이다. 숨진 나머지 3명은 오륜이엔지 사장 박기순씨(59)와 직원 남세현씨(37), 트레인 코리아 직원 방홍근씨(34)다. 이번 사고의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 불분명해짐에 따라 장례 절차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수술 자국이 난 아들의 시신을 보고 황씨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7월 2일 오전 인부 4명이 질식사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이마트 탄현점에서 경찰과 이마트 관계자가 사고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검 결과 나와야 책임소재 가려
검찰은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지난 7월 4일 부검을 지시했다. 일산경찰서 김진상씨는 “부검 결과는 통상 한 달 정도 걸린다.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진 이후에도 책임 소재를 법적으로 물으려면 하청을 준 기업과 하청업체 간 서류상 계약들을 모두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산소 호흡기 하나라도 현장에 있었다면 이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민정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여성국장의 말이다. 시민단체들은 안전관리 측면에서 이마트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마트 작업현장이 완전한 밀폐공간이 아니었지만, 법적 조건을 만족하는 법적 ‘밀폐공간’이 맞고, 이에 따라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6일 이마트 본사 앞에서는 노동건강연대, 등록금넷 등 시민단체가 모여 이마트 탄현점 노동자 사망에 대한 근본적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유가족들은 시신을 입관시켰음에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황씨의 이모부 정응호씨(51)는 “처제가 하루에 2시간씩 오열을 터뜨리는데, 너무 힘듭니다. 나도 심장이 좋지 않아요. 남은 사람들은 빨리 생업으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소. 이마트에서 보상문제를 적극 해결해준 뒤에 차후에 결과가 나오면 외주업체와 합의를 보면 좋겠는데…. 이마트 측에선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고 부검 결과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답답합니다”라고 말했다.

신세계 홍보실 관계자는 “노동부에서 나와서 확인했을 때, 밀폐공간이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도의적 책임은 통감한다”고 밝혔다. 우선적으로 이마트가 보상문제를 해결해줬으면 좋겠다는 유가족들의 입장에 대해선 “유가족들의 그런 입장은 홍보실에서는 처음 듣는 얘기다. 사내에서는 어떻게 얘기됐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돈이 없어 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황씨는 반지하 월세방에서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지내면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던 황씨는 중학생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도피생활을 하게 돼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아버지와 따로 살게 된 이후부터는 대학생 사촌형에게 주말마다 영어·수학을 지도받으면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009년에는 자신이 원하는 서울시립대 경제학부에 입학했다. 황씨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한 학기 등록금을 냈지만, 다음 학기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의경을 지원해 군복무를 시작했다. 지난 5월 제대한 황씨는 가을학기 복학을 앞두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규모 냉동기 수리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사고 당시 토요일은 황씨가 의경 복무 때 함께 했던 동료들을 제대 후 처음으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같은 소대 후임이었던 강성훈씨(24)는 황씨에게 전화했다. 황씨의 여동생은 황씨가 직장에서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강씨는 여동생한테 몇 차례 되물었다.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습니다. 승원이가 평소 돈 때문에 친구를 안 사귀었다고 들었는데, 조문객 중 승원이가 알고 지냈던 친구들이 저희밖에 없으니 더 가슴이 아파요.”

전화로 황씨의 죽음을 접한 이는 한 명 더 있었다. 그의 아버지다. 사업 실패로 도피해 있는 아버지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통화로 알게 됐다. 이모부 정응호씨는 “얘기를 듣곤 오겠다고 고집했어요. 저는 이를 말릴 수밖에 없었죠”라며 당시 통화를 회상했다.

황씨의 소식에 서울시립대 학생들도 지난 7월 5일부터 분향소에서 조문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종민 총학생회장은 “황씨가 학생식당에서 2000원, 2500원짜리 일반 식사를 하지 않고, 돈을 아끼려고 항상 1500원짜리 ‘라밥’(라면과 밥)을 먹었다고 듣고 가슴이 아팠다. 주위에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이나 하는 학우가 한두 명이 아니다.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서 (돈 때문에) 몸을 버릴까 고민했던 여학생도 기억난다. 학기 초 등록금 투쟁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책감도 든다”고 말했다. 김 학생회장은 또 “이 사건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오직 부모님만이 본인 잘못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모두의 문제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회에 대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분향소에서 조문한 서울시립대 학생 김두영씨는 “황씨의 사연이 가슴 아픈 까닭은 그의 삶이 우리 모습과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힘들게 고생하고 공부해 대학에 갔더니 학비를 구하지 못해 의경에 지원했다. 복무를 마치고 전역해서는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죽었다. 황씨가 사회적 모순이 모두 압축된 삶을 살다 죽은 것 같다’는 댓글을 인터넷에서 보고 굉장히 공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조문하는 것)밖에 없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총학생회는 교내에 분향소를 설치했고, 학생들이 쓴 편지와 부조금을 황씨의 어머니한테 전달했다. 이어 앞으로 보상문제가 합의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조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혜련 인턴기자 gerri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