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벌거벗은 회계’ 겁내는 LH공사

과거 주공 부실회계시스템 고수…각종사업 손실 은폐의혹

부실한 회계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가 새로운 회계시스템 개발을 아직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상당 기간 LH공사의 정확한 부실 원인 및 규모를 밝혀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LH공사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지적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새 회계시스템 도입을 위한 컨설팅 용역을 최근 발주했다. 하지만 새 회계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컨설팅 용역 결과가 나오면 최종적으로 결정하기로 함에 따라 지금으로서는 새 회계시스템 도입 일정이 사실상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이 10월 19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의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구 토지공사와 구 주택공사가 통합해 설립된 LH공사는 지난해 10월 정식 출범했다. 통합 이전 국토해양부는 회계컨설팅 전문업체인 딜로이트에 LH공사의 회계시스템으로 구 토공시스템과 구 주공시스템 중 어느 것을 채택해야 할지, 아니면 신규 회계시스템을 개발해 사용해야 할지 의뢰했다. 딜로이트는 용역보고서에서 LH공사에 회계시스템을 새로 개발해 사용하도록 권했다. 다만 신규 시스템 개발까지 기존의 구 토공 시스템(e地s)과 구 주공 시스템(통합재무)을 개선해서 사용토록 했다. 이에 따라 LH공사는 토공 시스템에 2억6000만원, 주공 시스템에 6000만원을 투자해 각각의 시스템을 개선시켰다.

하지만 LH공사는 기능이 개선된 토공과 주공의 회계시스템을 30일만 함께 사용하다가 갑자기 주공 회계시스템으로 단일화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LH공사에 대한 감사처분 결과요구서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은 전산정보시스템 통합이 비효율적으로 추진되어 예산이 낭비되고 업무에 장애가 되는 일이 없도록 통합시스템 구축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 조치했다.

LH공사가 주공 회계시스템을 서둘러서 공사의 회계시스템으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LH공사 관계자는 “한동안 양쪽 시스템을 사용하다보니까 자료양식 등이 서로 달라 불편했다”면서 “위에서 하나로 통합하라는 지시도 있었고, 관련 부서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회계감사 오류사례 80% ‘주공사업’
하지만 일각에서는 새 회계시스템이 도입되면 과거 주공이 진행했던 사업과 관련해 모든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회 국토해양위 관계자는 “주공은 지난 10년간 임대주택 건설에 31조원을 투입했으나, 회계장부상 임대주택 자산은 24조원에 불과했다”며 “주공의 임대주택 건설부문의 부실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려 해도 회계시스템이 부실해 원인을 규명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가 회계 관련 자료를 요구하면 LH공사는 전산자료는 뽑을 수 없고, 엑셀 작업을 해서 주겠다고 했다”며 “엑셀 작업은 숫자를 중간에서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LH공사 본사 전경. |경향신문 자료

실제로 전문가들에 따르면 2004년에 도입된 주공의 회계시스템(도입 비용 36억원)은 2008년에 도입한 토공의 회계시스템(도입 비용 82억원)보다 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진단됐다. 이와 관련해 국회 국토해양위 전여옥 의원(한나라당)은 “과거 주공의 회계시스템 부실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도 이처럼 문제가 많은 부실한 회계시스템을 LH공사가 계속 사용하는 것은 옛 재무결과를 왜곡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재무 부실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공의 회계시스템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LH공사 감사실과 외부 회계감사기관인 삼일회계법인이 공동으로 2009년 10월부터 12월까지 재무상태 등에 대한 감사를 통해 발표한 보고서(‘2009년 결산감사 결과 보고’)에 잘 나타나 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회계 오류로 제시된 10개 지적사항 중 8개가 주공이 사업을 담당한 곳이었다.

국토해양위 심재철 의원(한나라당)은 “최근 국책사업으로 재정문제가 심각해졌다고 말하는데, 사업별 구분회계도 안되고 내부 회계시스템도 허술하기 짝이 없으면서 어떻게 국책사업으로 발생하는 부채가 얼마인지 가려낼 수 있었는지 의아스럽다”며 “정확하고 투명한 회계관리를 통해 국민적 신뢰감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법원판결 불구 분양원가 공개 미뤄
주공 회계시스템이 부실하다는 것은 과거에도 지적됐다. 지난 2007년 당시 박세흠 주공 사장은 기자들에게 “주공의 회계시스템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공 회계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실시간 사업별 회계도 어렵고 원가계산도 힘들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주공이 아파트 원가 공개를 하지 않는 이유가 조성원가 체계를 제대로 산출하지 못하는 부실한 회계시스템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법원은 주공에 대해 “분양가 산출은 비공개 대상으로 볼 수 없다”며 원가를 공개하도록 판결했다. 하지만 주공은 여지껏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공측은 “아파트 원가가 공개되면 부당하게 챙긴 이익을 반환하라는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며 파장을 두려워해 공개를 미루고 있다고 비공식적으로 답했다. 하지만 주공의 ‘원가 비공개’ 논리는 군색하다. 서울시 산하 지방공기업인 SH공사는 상암·발산·장지지구 등에서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국회 국토해양위 관계자는 “단순한 사업실적 집계 및 예산 통제 등 기초통계 DB(데이터베이스)조차 도출되지도, 검증되지도 못하는 시스템을 갖고 도대체 어떻게 사업계획을 관리하고, 사업수지를 통제하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LH공사의 부실한 회계시스템이 하루 빨리 새로운 시스템으로 변경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회 국토해양위 김진애 의원(민주당)은 “LH공사 부실의 근본적인 원인은 투명한 사업별 회계 없이 단순 물량 단위로 방만한 사업을 추진한 탓”이라며 “LH공사는 여러 부문에 혼재되어 있는 불분명한 사업별 회계를 독립시켜 공개하고, 정당한 절차와 투명한 방법으로 재무건전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풀리고, 줄이고, 빼고…
회계오류 사례 ‘황당’

2007년 1월 당시 경기 고양시 행신 2지구 전경. | 김영민 기자

LH공사 감사실과 삼일회계법인이 공동으로 2009년 10월부터 12월까지 재무상태 등에 대한 감사 결과(‘2009년 결산감사 결과보고’)에 따르면 회계 오류로 제시된 10개 지적사항 중 8개가 주공이 사업을 담당한 곳이었다. 주공이 시행한 사업에서 발생한 회계 오류 사례는 다음과 같다.

① 고양행신2지구 원가배부 부적정
서울지역본부는 고양행신2 택지개발지구내 블록별(원가목적물별) 택지비를 면적별로 동일하게 배부해야 하는데도, 용지비 및 조성비를 블록별로 부적정하게 배부함으로써 임대주택에 587억4000만원을 과다계상하고, 분양대지 142억8000만원 및 매출원가 444억 6000만원을 과소계상했다.

②파주운정1지구 공사대불금 및 공사선수금 과다계상
파주사업본부는 파주운정1지구의 분양대지 투입원가 및 분양선수금에 대해 공동사업시행자인 파주시 지분으로 공사대불금 1조5982억4300만원 및 공사선수금 6453억8100만원을 계상했으나, 이 중 4536억5100만원만을 상계처리해 기말(지난해 말) 현재 공사대불금 및 공사선수금 1917억3000만원을 과다계상했다.

③부산정관지구 초등학교 용지 수익인식 누락
부산지역본부는 부산 정관초등학교 용지에 대한 분양대금이 ‘2009년에 완납되었으나 이에 대한 수익인식을 누락하여 매출액 및 매출원가 442억900만원을 과소계상했다.

④군산미룡지구 일반상업용지 수익인식 누락
군산미룡지구 일반상업용지에 대한 수익인식이 누락되어 매출액 3억4200만원, 매출원가 1억5400만원을 과소계상했다.

⑤ 인천송현 등 6개 지구 재개발미청산계정 정산 누락
인천지역본부는 인천송현3, 인천유신, 인천화수, 인천송현, 인천수문통, 부천송내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을 1993년부터 2004년까지 기 준공하였음에도 2009년 12월 말 현재 재개발미청산계정 136억5500만원이 남아있어 미정산 사유의 조속한 파악 및 정산이 필요하다.

⑥ 인천삼산1지구 사회복지시설용지 수익인식 누락
인천지역본부는 2006년 2월 대지 준공한 인천삼산1지구 사회복지시설용지를 2008년 11월에 계약하고 12월에 대지 사용승낙을 했음에도 잔금을 완납하지 않았다는 사유로 인도기준 수익인식을 누락하여 매출액 17억6400만원, 매출원가 16억3900만원을 과소계상했다.

⑦ 인천루원시티 재공품 대체 부적정
인천지역본부는 인천루원시티 도시재생사업 중 2007년 11월 인천광역시와 ‘인천가정오거리 도시재생사업구역 내 서곶로 및 접속부 램프구간 손실보상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2009년까지 881억8800만원의 선수금을 수령하여 보상금을 집행했다. 협약서상 도로보상은 수탁보상사업으로 관리하여야 함에도 대불사업으로 회계처리가 이루어져 공사대불금 1517억9400만원을 (공사선수금 차감 후) 과다계상하고 대지건설계정 867억8900만원, 차기건설계정 650억300만원을 과소계상했다.

⑧ 기금 장기차입금 상환 누락
인천·대전충남·부산울산지역본부는 인천수문통, 인천십정1, 대전용운2, 부산용호1지구의 공공분양주택 분양계약자가 국민주택기금을 대환 및 상환 완료하였음에도 관련 기금 장기차입금의 상환을 누락하여 3억9100만원의 기금 장기차입금 상환이 필요하다. 부산용호1지구는 2007년 회계처리 누락으로 인해 차입금시스템의 기금 원장 잔액과 일반회계시스템의 차입금 잔액이 300만원 상이하므로 회계처리 시정이 필요하다.
반면 토공의 사업에는 2곳이 지적됐으며, 금액으로는 위 8개 사업의 회계 오류보다는 현저히 작은 규모였다. 토공사업의 지적사항은 아래와 같다.

⑨소송금액 지급관련 손해배상충당금 상계 누락
세종시사업본부는 토지보상금과 관련하여 소송이 확정되어 소송금액을 지급하면서 소송원금에 해당하는 금액은 이미 설정되어 있는 손해배상충당금에서 상계해야 하나 이를 누락하여 부채 5200만원을 과다계상했다.

⑩ 평택소사벌지구 내부거래 대체 부적정
정자에서 오리로 매각한 토지 내부거래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평택소사벌C-4지구에 배부되어야 할 용지비 5억6800만원이 평택소사벌C-6지구로 잘못 배부되어 원가배부 수정 회계처리가 필요하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