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카이스트 500억대 사업 ‘뒷말 무성’

모바일 하버-온라인 전기차, 예산편성 의혹에 경제성 의문 제기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역점사업으로 연구 중인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자동차의 개념도.

"현재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2년 안에 성공 가능한 프로젝트들을 선정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것이다. (중략) 이 가운데 필자가 선호하는 과제는 ‘온라인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다.
온라인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 프로젝트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며, 대한민국 국가경제 발전의 주축이 될 산업이 될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행하고 있는 <교육정책포럼>(2009.4.6)에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쓴 글이다. ‘온라인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는 ‘서남표식 과학기술 뉴딜 정책’을 보여 줄 수 있는 중요한 과제라고 역설한 것.

정부는 올해 추경예산에서 이 두 사업에 250억원씩 총 500억원을 투입했다. 그동안 과학계에서 연구개발(R&D) 사업에 예산을 투입해 달라는 요구가 많았던 점에 비춰 보면 좋은 현상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번 추경예산에서 신성장동력(과학기술 뉴딜)사업 5개 프로젝트에 1100억원을 배정한 가운데 50%에 가까운 예산이 서 총장의 역점 사업에 배정된 것이다.

지경부 심사 두 번 탈락 프로젝트
그러나 예산 배정 과정부터 사업의 실효성까지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모바일 하버의 경우 지난해 지식경제부에 산업원천기술 과제로 제출했을 때와 현재 교육과학기술부의 사업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모바일 하버는 600×400m 크기의 300만 TEU급(6m 규모의 컨테이너를 몇 개까지 실을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용적 크기) 초대형 부유체였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지식경제부 심사에서 두 번이나 탈락했다. 한국산업기술재단이 펴낸 ‘2009 연구기획 공청회 설문분석’ 자료에 따르면 ▲모바일 하버 개념을 이용한 차세대 고생산성 항만 시스템 ▲크루즈선 안전환경 의장기자재 개발사업 ▲친환경 추진기 캐비테이션 성능 제어 기술개발 ▲선박성능 고도화 핵심기반 구축 및 기술개발 등 9개 연구과제에서 종합 순위 9위의 불명예를 차지했다. 모바일 하버에 대한 의견을 살펴보면 ▲2, 3년 후 사업추진 바람직함 ▲아이디어는 좋으나 수요 관점에서 정말 필요한 기술인지 검토 요망 ▲본 과제는 산업원천기술 과제로 적당한지 재검토가 필요함 ▲수출 또는 국내 수요 충족 관점에서 국가사업으로 적절하지 않아 보임 등 비판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모바일 하버 사업은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올해 2월까지 모바일 하버의 주관부처는 지식경제부였지만 3월부터 교육과학기술부 주관인 중장기 녹색융합원천기술로 변경돼 추경예산에 편성된 것이다. 사업 규모와 성격도 바뀌었다.

5월26일 카이스트 추경사업 설명회에서 모바일하버사업단 곽병만 단장은 “지식경제부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에 신청했지만 탈락한 모바일 하버의 개념과 완전히 다른 신개념이다. 저희 잘못도 있었고 오해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대 공과대학의 모 교수는 “우리나라의 조선해양 분야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시급한 순서를 정해 놓은 것이 있다”면서 “모바일 하버는 기술 논의 대상에 없었던 것인데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고 비판했다.

현재 모바일 하버 사업은 60×30m 크기의 250TEU급 소형부유체로 변경됐다. 한나라당 박영아의원실에서는 "지난 7월17일 KAIST에서 입찰공고한 모바일 하버 설계용역에 따르면, 모바일 하버의 개념을 '하역장치가 설치된 컨테이너 운반선'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면서 "이러한 선박은 이미 개발되어 판매까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모바일하버사업단은 “파도 치는 해상에서 하역과 선적이 가능한 새로운 개념의 해상운송 수단으로서 세계 최초의 기술 개발이다”고 반박했다.

온라인 전기자동차 사업도 논란에 휩싸였다. 온라인 전기자동차는 일반인이 알고 있는 전기자동차가 아니다. 전기자동차의 충전을 도로에서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도로 밑에 선을 깔고, 그 위로 전기자동차가 지나가면서 충전하는 식이다. 온라인 전기자동차 시스템에 맞는 전기자동차 개발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온라인전기자동차사업단 조동호 단장은 “이 시스템을 만들려면 km당 3억5000만원 정도 예상하고 있다”면서 “처음에는 운행 루트가 일정한 버스 위주로 하고 나중에 열차와 지하철에 도입할 예정이다. 11월까지 서울대공원의 코끼리열차를 바꿀 것이고, 내년 5월까지 제주도 중문단지에서 시험운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시스템에 맞는 전기자동차에 대해 조 단장은 “올해는 전기자동차를 개조해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이 시스템에 맞는 전기차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협조하겠다는 업체도 있다”고 덧붙였다.

출연금 형태 지급 사업비 회수 불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여당 의원도 끼어 있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은 “온라인 전기자동차 사업의 경우 1996년 미국 PATH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로, 경제성이 없어 포기한 사업이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4월21일 열린 교육과학기술위원회 회의록에도 잘 나타나 있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은 온라인전기자동차사업단 조동호 단장에게 “단위기술은 이미 개발이 다 되어 있는 것을 연결하는 것만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묻자 조 단장은 “그렇다. 그것도 원천기술이다”고 대답했다. 5월26일 열린 카이스트 추경사업 설명회에서 온라인 전기자동차 사업단 임춘택 부단장도 “방식 자체는 최초가 아니고, 국외 시장에서도 비슷한 케이스를 많이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설명회에서 원천기술 공개 요구 목소리에 대해 온라인전기자동차사업단 관계자들은 “핵심원천기술은 보안상 공개할 수 없다”고 대응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의 한 교수는 “온라인 전기자동차는 경제성도 없고 현실성도 없는 프로젝트다”면서 “상용화를 하기 위해서는 도로에 선을 깔아야 하지만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업성이 없다. 또한 도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에 주는 영향을 해결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전문가들이 타당성을 검토하니 말이 안 됐고, 가장 큰 문제는 이 사업이 시작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검증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자동차 사업이 비판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카이스트 출연금’으로 사업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박영아 의원은 “예산이 카이스트 출연금 형태로 지급돼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더라도 사업비 환수 등 조치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고 비판했다.

최근 민주노동당 권영길의원실에서는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원들이 꼽은 ‘과학기술계 및 출연연구기관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묻는 질문에 40.3%가 과학기술 예산의 올바른 집행을 위한 ‘예산 배분 시스템 마련’을 꼽았다. 그만큼 예산이 불합리한 방식으로 한쪽에 쏠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낸 것이다.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역점사업으로 벌이고 있는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자동차 사업이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운지 반문해야 할 때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