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병역특례 줄이자니 예술이 운다?

병역법 시행령 개정으로 국내 콩쿠르 입상자 제외 방침에 문화계 강력 반발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의 한 장면.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리노 21명 중 11명이 외국인 발레리노일 정도로 남자 무용수가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병역특례 혜택이 축소되면 남자 무용수의 기근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경향신문>

'대통령령이 정하는 예술·체육 분야의 특기를 가진 사람이라 함은 병무청장이 정하는 국제예술경연대회에서 2위 이상으로 입상한 사람, 병무청장이 정하는 국내예술경연대회(국악 등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의 대회에 한한다)에서 1위로 입상한 사람에 한해 공익근무요원으로 추천한다.’(병역법 시행령 제49조)

지난 1월 1일 병역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으로 그동안 병역특례 혜택을 받아온 음악인과 무용인이 반발하고 있다. 과거에는 국내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4주 훈련 뒤 평소 자신이 속해 있던 기관(학교나 예술단체)에서 34개월간 활동할 수 있었다. 병역면제나 다름 없는 혜택이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서는 국내 콩쿠르의 수상을 인정하지 않고, 국제 콩쿠르에서 2위 이상 해야 병역특례 혜택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병역특례 혜택 축소나 다름없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한국무용협회와 한국음악협회는 ‘병역법 재개정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병역법 시행령의 원상 복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의 행동은 자칫 조직 이기주의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절박한 이유가 있다.

남자무용수 기근현상 더욱 심각

파리에서 활동하는 발레리노 김용걸의 공연 모습. 김용걸씨는 동아콩쿠르 우승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국제 콩쿠르 2위 이상 해야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다. <경향신문>

개정안에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분야는 발레와 현대무용이다. 그동안 국내 콩쿠르 1위 입상을 통해 병역특례를 받은 무용수는 매년 12명 내외. 전국무용제, 서울무용제, 동아콩쿠르, 신인무용콩쿠르에서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등 분야별 1위 수상자가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다.

이번 개정안으로 특히 큰 타격을 입는 분야가 발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경우 남성 무용수 21명 중 11명이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에서 ‘수입’한 외국인이다. 남성무용포럼의 김긍수 대표는 “발레 전공이 있는 대학에서 발레리노는 1~2명 정도로 7~8%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매년 배출되는 발레리노는 30명 내외로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라고 토로한다.

게다가 다른 분야에 비해 발레리노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유럽의 발레단에서도 40세가 넘는 발레리노는 자동 해촉되는 경우도 있다. 보통 발레리노는 30대 중반까지만 무대 위에 올라갈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발레단에 입단할 때가 보통 24세기 때문에 발레리노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10년 정도인 셈. 그런데 군대에서 2년을 보내고 몸을 원상태로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까지 합하면 발레리노로 활동하는 시간은 10년도 채 안 된다. 따라서 짧은 기간 발레를 하기 위해 뛰어드는 남자가 드물 수밖에 없는 것. 병역특례 혜택까지 축소되면 발레리노가 되려는 사람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발레리노 김용걸씨나 이원국프로젝트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이원국씨처럼 유명한 발레리노도 유럽의 대표적인 콩쿠르에서 2위 이상 입상하지 못했다. 두 사람도 국내 콩쿠르에서 우승해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다. 만일 개정 병역법 시행령을 따른다면 두 사람은 입대해야 한다. 김긍수 대표는 “남성 무용수의 신체적 조건은 외국 무용수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면서 “유럽이나 미국 등 발레의 본고장에서 열리는 콩쿠르에서 2위 이상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4대 국제 콩쿠르로 꼽히는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 바르나 국제발레 콩쿠르, 로잔 국제발레 콩쿠르, 잭슨 무용콩쿠르에서 한국 발레리노가 입상한 전례는 없다.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활동하는 발레리노가 대부분 병역특례자라는 것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군대를 다녀오면 발레를 계속하기 힘들다는 반증이다.

병무청 “특수성 있다고 특혜는 곤란”
현대무용계 역시 발레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병역특례라는 혜택 덕분에 남자 무용수가 늘어났지만, 혜택이 축소되면 남자 무용수가 줄어들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조남규 서울무용제 총감독은 “현대무용은 국제 콩쿠르의 성격이 모두 제각각이다”면서 “국제 콩쿠르 역시 많지 않기 때문에 남자 무용수에게 힘든 상황이 될 것이 뻔하다”고 토로한다. 또한 국제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1500만~2000만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조 감독은 “이번 조치가 돈이 많은 예술가만 병역특례 혜택을 받으라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냐”면서 “역사성이 있는 국내 콩쿠르를 무시하고 국제 콩쿠르만 인정하겠다는 것은 문화사대주의적인 발상이다”라고 말한다.

음악계 역시 이번 개정안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다. 국내 콩쿠르와 국제 콩쿠르의 수준이 별로 다르지 않은데 유독 국제 콩쿠르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한국음악협회 최규용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수준이 결코 외국 수준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면서 “1000만 원 이상 쓰면서 국제 콩쿠르에 나가야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전한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의 경우 국제 콩쿠르가 많지만, 목관악기의 경우 국제콩쿠르가 별로 없다는 것도 차별의 여지가 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병무청의 입장은 ‘형평성’과 ‘공정성’에 방점을 찍는다. 아무리 예술 분야의 특수성이 있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특혜를 받는 것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병무청 김해규 사무관은 “어떤 분야는 국내 대회를 인정하고, 어떤 분야는 국제 대회만 인정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면서 “목관악기나 발레처럼 손해를 볼 수 있는 분야가 있을 수 있지만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제대회의 범위를 넓히는 등의 방법으로 대안을 마련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무용계가 요구하는 ‘국제대회 2위 이상 수상자 조건을 3위 이상 입상으로 확대’ ‘현대무용의 경우 국제 콩쿠르는 전체 작품 위주기 때문에 개인의 기량을 겨루는 기존 국내 콩쿠르를 인정해줄 것’ ‘무용을 계속할 수 있는 군무대 창설’ 등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김 사무관은 “국제대회 2위 이상 자격은 병역특례제도를 만들었을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법을 개정한 후에야 3위 이상 입상으로 확대할 수 있다”면서 “군무대 창설은 국방부 차원에서 검토해야 하는데, 2006년 국방부의 연구위원회에서 검토해본 결과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술계의 개정안 반대 목소리에 반감을 드러내는 일반인도 있다.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이냐’ ‘음악과 무용만 국내 대회가 인정받으면 다른 분야는 어떻게 하나’ 등의 비판이다. 그동안 국내 콩쿠르의 심사 공정성이 여러 번 도마에 올랐던 것도 비판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무용과 음악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촉망받는 예술인이 군 문제로 좌절하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병역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관련 단체와 별다른 토론이나 의견 교환 없이 국무회의에서 결정한 것이라는 점이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과거 월드컵 4강 주역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 참가자에게 병역특례 혜택을 줄 때 기준이 모호했기에 특혜 논란에 휩싸인 것과 비슷하다. 마치 여론에 밀려 병역특례 혜택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토론 과정 없이 ‘형평성’이라는 단순 잣대로 밀어붙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단체가 ‘공연 중지’라는 극약처방까지 들고 나온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