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3세 미만, 60·70대 사망자 많았다

가습기 살균제 희생자 분석, 고령층과 폐 질환자 등은 피해인정 못 받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누구일까. 대체 몇 명일까.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참사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피해는 특정 지역에서 일시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20여년에 걸쳐 전국에서 발생했다. 피해는 일상과 가까운 곳에서 발생했지만 피해자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1일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11년 9월부터 2016년 8월 31일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본 사람은 4486명이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919명이다. 피해규모는 매일 늘어난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참사 5주기 행사가 열린 8월 31일 하루에만 874명이 접수했다”고 전했다.

<주간경향>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자 919명 가운데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해 성별과 연령, 사용제품 등이 확인된 지난 7월까지의 사망자 875명을 대상으로 피해자들의 특성을 분석했다. 875명의 성씨와 사망 당시 나이, 성별을 담은 ‘참사 달력’은 1192호와 <주간경향> 인터넷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지난달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주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추모식’에 참석한 시민들이 추모 제상에 줄을 지어 헌화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최초의 피해자는 8개월 된 아기
지난 7월까지의 피해 접수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피해자’는 1996년 3월에 태어난 민모양이다. 민양은 생후 8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사망했다. 1994년 유공(현 SK케미칼)이 세계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개발해 시판한 지 2년 만이다. 민양의 사례는 지난 4월부터 접수가 시작된 4차 피해신고 때 접수됐다. 현재 3차 피해신고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따라서 민양의 가족들이 어떤 제품을 썼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습기메이트일 가능성이 크다. 가습기메이트는 CMIT/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를 원료로 한다. 정부의 1~2차 조사에서 접수된 피해 의심사례 중 CMIT/MIT를 원료로 하는 제품을 사용한 사람은 178명, 사망자는 39명이다.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라는 독성물질을 사용해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제품은 2000년 출시됐다.

최초의 옥시 피해자는 2000년 3월 사망한 정여원양(생후 4개월)이다. 정양의 아버지 정일관씨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대안학교 교사로 스티로폼 패널로 만든 사택에서 살아 집이 너무 건조해 가습기와 옥시 제품 살균제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정양은 생후 110여일 만에 급성 폐출혈로 사망했다. 정양은 정부로부터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다. 정씨는 지난 1차 조사 때 전남대병원의 의료기록을 토대로 피해를 신고했으나 ‘폐 섬유화’ 등의 증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4등급 판정(관련성 없음)을 받았다.

국회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SK케미칼 김철 대표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어린아이와 임신부, 노인이 큰 피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는 3세 미만 아동과 60·70대 노인에게 집중돼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한 12개월 미만 영아는 55명이다. 0~2세 피해자들의 수는 총 139명으로 전체의 15.9%에 달한다. 30대 여성 피해자는 58명으로, 영아 피해자 수와 비슷하다. 상당수 임신부 내지 산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많은 피해를 낸 연령대는 60대(159명)와 70대(158명)다. 영유아 및 임신부들의 피해는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이 공론화된 2011년 8월 31일 이후 뚝 떨어졌다. 2011년 이후 0세 이하 피해자는 2명에 불과하다.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은 “병원의 신고와 정부의 역학조사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지만 2011년 시작된 정부 역학조사가 조금 더 일찍 시작됐더라면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룬 책 <빼앗긴 숨>에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자 수는 2006년 전년도의 2배 가까이 상승하며, 서울아산병원 소아과에는 이 무렵 급성 폐질환으로 입원해 사망하는 환자가 발생한다. 2006년에 문제를 발견할 기회가 있었다는 의미다.

반면, 60·70대 사망 피해자들은 최근까지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김천명씨(당시 67세)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지만 2013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돼 2015년 10월 사망했다. 폐 섬유화 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전형적 증상이 발견됐지만, 폐 섬유화가 급성으로 진행된 산모나 영유아 등과 달리 ‘천천히’ 진행됐다는 이유로 4등급 판정을 받았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고령층이나 폐암 등 원래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사망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입증하기 힘들어 정부로부터 쉽게 피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한부 인생 6개월을 선고받은 폐암환자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2개월 만에 사망했다면, 피해를 인정하고 연관성을 조사해 가습기 살균제의 의료적 영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최 소장의 입장이다. 최고령 사망자는 1916년생 안모씨로, 2011년 3월 사망했다. 0개월 사망자는 총 10명으로 조사 진행 및 대기 중이다.

사망 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달은 2011년 5월이다. 30명이 사망했다. 영유아 사망 비중이 높으나 생후 2개월부터 81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임신부들이 급성 폐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른다는 사실만 밝혀졌고 정부의 역학조사가 진행 중인 상태였다. 20년 동안 3월에 106건, 5월에 103건, 10월에 54건 발생했다. 건조한 날씨의 영향으로 보인다. 피해자의 성비는 비슷하다. 여성 427명, 남성 432명으로 집계되며 나머지 16명은 파악되지 않았다.

피해 신고자 90% 이상이 올해, 계속 접수 중
전체 4486건의 피해신고 가운데 올해 1월부터 8월 31일까지의 신고가 전체의 71.4%인 총 3204명이다. 전체 사망신고자 919명 중에서 올해의 사망신고가 75.4%인 693명으로, 올해 들어 신고된 피해가 압도적으로 많다. 검찰 수사가 이 무렵부터 급물살을 타 다시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킨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 875명 중에서도 652명이 4차 피해 신고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판정 방식 철회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가습기 살균제, 대체 얼마나 썼을까?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 동안 시장에서 유통됐다. 드러난 피해자는 4468명이다. 실제로 사용자는 얼마나 될까.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의 조사연구에 의하면, 가습기 살균제 전체 사용자는 1000만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고농도 노출자 및 건강피해 경험자, 즉 잠재적인 피해자가 적게는 29만명에서 많게는 227만명에 이를 것이라 보고 있다. 폐 섬유화 외에도 천식, 폐렴, 기침·가래 등 기관지 이상 역시 ‘피해사례’로 보고되고 있다. 이들 질환 역시 피해로 공식 인정받고 정부의 정밀한 조사가 이뤄져야 정확한 피해 측정이 가능하다.

국회 국정조사특위 소속의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전국의 100개 병상 이상 크기의 종합병원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구입 여부를 조사해 이 가운데 8개 병원에서 1223개를 구입해 사용했음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실은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의 가습기 살균제 판매기록을 요구하고 있다. 이 의원 측은 대형마트들이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 국민적 피해규모를 더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훈 의원실의 발표 이후 가습기 살균제를 가장 많이 쓴 부산 동래 광혜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거나 사망했다며 피해 관련 문의를 해온 사례가 20여건에 달한다. 이렇게 병원이나 어린이집, 요양원, 산후조리원 등의 기관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한 경우 다수의 노출자들은 자신들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지 여부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처럼 접수만 받을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가호호 방문조사하는 전국민 역학조사를 실시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