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신뢰 기반한 사적 투자가 일반인 대상 공개 투자로 변신

‘권력형 비리’인가, ‘금융사기’인가. 지난해 대규모 원금 손실을 일으킨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이어 2020년을 뒤덮은 사모펀드 사태, 라임자산운용의 1조6500억원대의 환매 중단, 옵티머스자산운용의 5000억원대 환매 중단 사태는 왜 벌어졌을까. 국민의힘은 사모펀드 사태를 ‘권력형 비리’로 규정했고, 더불어민주당은 권력형 비리가 아닌 ‘금융사기’라 주장한다. 사모펀드 사태가 정치권의 이슈로 빨려들어가면서 이 사건의 본질은 오히려 더 미궁에 빠진 형국이다. 사모펀드 사태 논의에서 빠진 두 가지를 정리했다.

라임펀드 사기사건 우리은행 피해자들이 지난 11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고객을 속인 펀드 판매계약은 원천무효임을 주장하며 금감원의 전액배상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 이상훈 기자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으로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을 배분한다.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를 모아 운용하는 펀드 ‘공모펀드(Public Offering Fund)’와 다른 개념이다. 다시 말해 사모펀드는 비공개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해 투자하는 펀드다. 투자자들이 펀드를 운용하는 사람들을 몰라서는 이뤄질 수 없다. 철저히 사적 계약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투자여서다.

그럼 어떻게 일반투자자가 이 같은 ‘비공개’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 됐을까. 2015년 사모펀드를 사실상 공모펀드처럼 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규제 완화 바람을 일으켰고, 당시 7~8% 수익이 나던 사모펀드에 일반투자자도 참여하게 해달라는 금융투자업계의 요구가 이어졌다. 당시 정부는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통해 금융산업과 벤처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모펀드는 사전등록제에서 사후보고제로 바뀌었고, 전문사모집합투자업은 등록만으로 가능해졌다. 그 결과 2015년 19곳에 불과하던 사모 전문 운용사는 지난해 말 217곳으로 늘어난다.

5억→1억→3억, 그리고 ‘은행 판매’

가장 큰 변화는 최소투자 금액 기준이 ‘일반투자자 1억원’으로 바뀐 것이었다. 당시 금융위원회가 투자 기준을 5억원으로 하겠다고 국회에 보고했지만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가 이어진다. ‘5억원은 너무 세다’는 것이다. 사실상 새누리당이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이후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모펀드 최소투자 금액을 5억원이 아닌 1억원으로 결정한다. 그러나 지난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 피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를 살펴보면 1억원대 투자자는 전체의 65.8%나 됐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처음 정부의 구상대로 5억원으로 했다면 피해자가 훨씬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DLF 사태가 심각해지자 지난해 말 금융위는 사모펀드 규제개선 방안을 내놓는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3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며 ‘1억원’ 기준을 상향한 것이다. 그러나 왜 ‘3억원’일까. 당시 발표를 하면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말했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것을 어떻게 할지와 1억원 기준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장 고민했습니다.” 사실상 이 말은 두 가지가 사모펀드 사태의 문제 핵심이라는 것을 고백한 것과 다름없다. 비공개 펀드로 서로의 신뢰를 기반으로 해서 판매해야 하는 펀드를 ‘1억원을 가진 일반투자자’들에게 ‘은행’에서 판매하면서 이 모든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금융위, 사모펀드답게 육성할 의지 부족

그런데 왜 다시 ‘5억원’이 아니라 ‘3억원’으로 결정했을까.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5억원으로 올리면 금융위가 정책 실패를 노골적으로 인정하는 결과이니 1억원에서 올려 반만 닫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피해자들의 대다수는 은행에서 PB(프라이빗 뱅커)들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제안에 사모펀드와 공모펀드를 구분하지도 못한 채 가입했다. 빈기범 명지대 교수는 “사모펀드 사태는 신용이 거의 없는 운영사들이 자본시장법 틀 내에 들어오면서 규제에 의한 신용의 옷이 덧입혀진 것이 근본 문제”라며 “신용이 0이었던 자들이 규제 때문에 5가 됐고, 퍼블릭 마켓의 중요한 창구인 은행에서 판매되면서 은행의 신용까지 덧입혀져 10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아는 금융위는 지난해 말 사모펀드 규제개선 방안을 내놓으며 은행에서의 사모펀드 판매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은행을 안전한 상품을 파는 곳으로 인식하는데 계속 고난도금융상품에 해당하는 사모펀드와 신탁을 은행에서 판매하면 다시 사모펀드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은행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수수료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40조원 규모인 주계연계신탁(ELT) 시장을 잃을까 우려했다. 결국 당국은 고난도금융상품 대책 최종안을 발표하면서 은행권의 건의를 수용했다. 사모펀드 사태에서 판매사들의 책임만 너무 과하게 묻는다며 볼멘소리 하는 은행들도 수수료 수익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2015년 사모펀드 규제 완화 이후 사모펀드 환매 연기·중단이 발생한 것은 361건에 이른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환매 연기된 펀드는 1건도 없었지만 2018년 10건에서 2019년 187건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8월까지 164건이 환매 연기됐다. 2015년 규제 완화 이후 만들어진 부실한 사모펀드들이 만기가 돌아오면서 환매 연기·중단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사모펀드를 사모답게 육성할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 빈 교수는 “사모펀드는 제도권 바깥으로 보내서 원래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신용이 없으면 투자자금을 모을 수 없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여전히 사모펀드를 통한 ‘모험자본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를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모펀드 설립 요건도 여전히 10억원인데다 운용사 CEO, 전문인력의 요건을 강화할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임아영 경제부 기자 laykn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