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은 집값을 올릴까 내릴까

사상 초유의 0%대 기준금리 시대… 국내 부동산시장 혼란

“예측이 어렵다.”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이후 주식시장은 물론 성장률 등 경제 전반에 대한 전망을 물으면 전문가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적 여파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상기해 예상하는 시각도 있지만, 지금은 사상 초유의 0%대 기준금리 시대다. ‘가보지 않은 길’ 앞에 부동산시장을 포함한 한국경제가 놓여 있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아파트.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세계경제 침체 우려에다 사상초유의 0%대 기준금리 시대를 맞아 향후 부동산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국내 부동산시장은 혼란에 빠진 분위기다. 10년 만에 코스피지수 1500선이 무너지며 하루 만에 시가총액 수십조원이 증발했다. 미국 뉴욕과 유럽 주요국 증시는 경기부양책에도 폭락하는 등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것과 같은 혼란은 아니지만, 2015년 이후 각종 정부 규제에도 집값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던 견고한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시가격 상승 따른 세금 부담 증가

회원수 약 100만 명에 이르는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최근 코로나19가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논쟁은 코로나19로 세계경제가 위기 국면에 진입한 만큼 금융시장의 공포감이 부동산으로도 전이될 것이라는 하락론과 경기가 안 좋아지면 정부가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으로 돈 풀기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더 몰릴 것이라는 상승론이다. 대개의 게시물이 ‘집값은 결국 우상향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던 몇 주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현장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오는 6월까지 조정대상지역에서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매도할 때 양도소득세 중과를 배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지난달까지만 해도 다주택자는 계속 버티기에 들어간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경제위기가 가시화되자 보유주택 줄이기를 고민하고 있다.

관건은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 부동산전문위원은 “팬데믹에 따른 불확실성의 강도와 지속 기간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달라진다”며 “금융시장에 이어 실물경제에까지 충격을 주는 복합위기 상황이 되면 부동산시장도 당분간 약보합세, 눈치 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4월을 변곡점으로 예상한다. 전 세계적으로 4월 이내에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면 경제위기를 잘 수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시장도 매매거래 위축 정도에 그칠 뿐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4월 이후에도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주식·채권 등 금융시장의 충격은 대개 6개월 후 실물경제에 타격을 준다”며 “부동산 투자심리 위축뿐 아니라 경제의 펀더멘탈(기초체력)과 소득 등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여서 그때는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써도 효력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3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증시 현황판 앞을 지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34.89포인트(2.19%) 오른 1,626.09로 개장했지만 다시 하락세로 전환하며 장중 1580선 아래로 떨어졌다. / 연합뉴스

코로나19로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부동산시장에서는 상가와 오피스텔 등 상업용 부동산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직격탄을 맞아 매출 급감으로 월 임대료를 내지 못 하는 일이 대거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대출을 받아 상가에 투자한 임대인(건물주)에게 타격을 주게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 잔액은 120조6000억원으로 연평균 14.8% 늘고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임대소득을 목적으로 하는 부동산임대업이 연평균 20.4% 증가한 탓이다. 송인호 부장은 “임차인(세입자)이 2~3개월 임대료를 못 내면 상업용 부동산시장이 부실화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3월 16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렸다. 그동안 금리 조정폭은 0.25%포인트가 일반적이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기존 1.25%에서 0.75%로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코로나19 장기화 땐 부동산도 타격

통상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를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호재로 받아들인다. 금리가 낮아진다는 것은 자금 조달 시 그만큼 이자 부담이 줄어 투자 여건이 좋아진다는 의미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안전자산 선호 분위기가 강해지는데,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한 부동산으로 유동성 쏠림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금리 인하를 보유 주택을 더 늘릴 수 있는 기회로 보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 주택가격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논리다. 현금 여유자산이 있으면 서울 강남 고가 아파트 등에 투자하고, 은행 대출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비규제지역에서 갭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에도 당장 집값이 급등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금융시장 붕괴 이후 시차를 두고 고용 및 가계소득 등 실물경제가 침체하면 구매력 저하로 주택 수요가 위축돼 부동산시장도 가격 하락 압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미 저금리 상황인데다 서울 등 주요 지역은 대출규제 등으로 묶여 있는 것도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박원갑 수석전문위원은 “주택시장이 실수요 중심으로 바뀌고 집값 하락 심리가 팽배할 때는 ‘금리 인하=집값 상승’이라는 등식이 잘 성립되지 않는다”며 “이때는 오히려 실물경제 침체 걱정을 하며 ‘오죽 경기가 안 좋으면 금리까지 낮출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집값은 소득이 뒷받침된 것이 아니라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투기수요를 부추겨 만든 거품이 많은 상태”라며 “일본이 제로금리에도 부동산시장이 침체하지 않았나. 그 나라의 소득 수준과 지나치게 괴리된 집값은 지속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세계경제가 단기간에 회복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며 “코로나19가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기준금리를 아무리 떨어뜨려도 집값 급등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 진정 이후 집값이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홍춘욱 ERA리서치 대표는 “코로나19로 올해 상반기에 움직이지 못했던 주택 수요가 하반기에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희 경제부 기자 mong2@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