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 움직이는 곳은 어딜까?

300여명 금융위 중 금융정책과가 핵심… 엘리트 코스의 출발은 주무서기관

한국 금융을 이끄는 곳은 어디일까? 한국은행부터 5대 금융지주, 초대형 투자은행(IB)까지 굵직한 기관이 많지만 2008년 현재의 형태로 출범한 금융위원회를 우선 꼽을 수 있다. 금융위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옛 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정책기능과 옛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의 금융정책기능을 통합해 2008년 3월 정식 출범했다. 정책기능과 집행기능을 분리한다는 취지로 금융위원장이 겸직하던 금융감독원장도 별도로 선임되기 시작했다. 300여명에 이르는 금융위 조직에서도 최고 핵심으로 꼽히는 부서가 금융정책과(금정과)다. 웬만한 과장(서기관 또는 부이사관)보다도 부서 ‘2인자’인 주무서기관이 ‘엘리트 코스’의 출발로 꼽힐 정도다. ‘예전에는 사무관이 시중은행 월간 통화량까지 정할’ 정도인 금정과는 금융위 내에서는 부처 수장 못지않게 누가 과장이 되는지 관심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5월 22일 오전 서울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청년 전·월세 지원 프로그램 출시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힘 빠졌지만 여전히 한국금융 좌지우지

금정과의 핵심 업무는 가계부채 관리다. 지난해와 올해 많이 안정화되기는 했지만 가계부채는 여전히 한국 경제의 뇌관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7.7%였다. 글로벌 금융컨설팅 기관인 ‘컨티눔 이코노믹스’는 한국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위험그룹 기준으로 분류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계부채 증가율 5%대’를 달성하려고 한다. 금정과는 매달 가계대출 동향을 조사해 발표하고 금융위원장 등이 주재하는 ‘가계부채 관리 점검 회의’도 1~2개월에 한 번씩 열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회사 인가·관리, 금융그룹 감독, 일자리 정책,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등도 금정과의 주요 업무다. 금정과장을 지낸 금융위 한 고위 관계자는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경제관계장관회의 등 정부 부처 간 회의 때 금정과가 금융정책 종합부터 관련 부서 자료 제공까지 맡는다”고 말했다. 예컨대 최근 일본의 무역 보복조치 후 금정과는 국내 금융 현황과 필요시 대책을 총괄해 관계부처에 전달하고 청와대에도 보고했다.

또 다른 금정과 출신 관계자도 “현재는 큰 금융 이슈가 없지만 금융에서 사고가 터지거나 문제가 생기면 장관(금융위원장)이 제일 먼저 찾는 게 금정과장, 금정국장”이라면서 “다른 과는 몰라도 금정과 사무관이 다른 부서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면 안 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금정과의 힘은 예전이 더 막강했다. 한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1998~2008년 재정경제부 시절에는 금정과 사무관이 퇴직한 선배들이 주로 가는 금융위 산하기관장 인사까지 좌지우지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금정과에서 근무했던 한 금융위 간부는 “금정과 업무가 예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도 주요 금융정책을 설계하는 만큼 핵심 중 핵심인 부서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역대 금정과장은 누구?

2008년 3월부터 올 7월까지 전·현직 금정과장은 박영춘 SK 수펙스추구협의회 부사장(55·행정고시 31회), 이병래 한국예탁결제원 사장(55·32회), 도규상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53·34회), 김태현 금융위 사무처장(53·35회),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국장(49·36회), 권대영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51·38회), 이형주 금융위 부이사관(47·39회), 신진창 금융위 금융그룹감독혁신단장 내정자(49·40회), 손주형 현 과장(49·42회) 등 9명이다.

김태현 사무처장은 역대 금융 관료 중 유일하게 금정과 주무서기관, 금정과장, 금정국장 등 3개 핵심 보직을 역임했다. 역대 금융위 금정국장이나 부위원장(차관), 장관 중에서도 3개 보직을 모두 거친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정권과 무관하게 오랫동안 최고의 금융 전문가로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금정과장 재임기간도 2년3개월(2011년 1월~2013년 4월)로 가장 길었다.

행정고시 한 기수 차이인 권대영 단장과 이형주 부이사관은 모두 금정과 주무서기관 출신 금정과장이었다. 두 사람이 향후 금정국장을 한다면 김 사무처장에 이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두 번째, 세 번째 인물이 된다. 재임기간도 각각 1년11개월(2014년 8월~2016년 7월)과 1년8개월(2016년 7월~2018년 3월)로 김 사무처장 다음으로 길었다.

도규상 비서관은 금정국장을 지낸 후(2009년 9월~2011년 1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지난해 12월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세훈 국장은 박근혜 정부 초대 금정과장(2013년 4월~2014년 8월)을 지냈다가 올 7월부터 금정과장을 지휘하는 금정국장을 맡고 있다.

금정과 경험은 직업공무원이 일반적으로 목표로 하는 차관 승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역대 금융위 부위원장 8명 중 민간 출신인 이창용(59)·정찬우(56) 전 부위원장, 금정국장을 지낸 손병두 현 부위원장(55·33회)을 제외하면 모두 재경부 시절 금정과장을 지냈다(권혁세, 신제윤, 추경호, 정은보, 김용범).

장관급인 위원장은 약간 다르다. 역대 위원장 6명 중 민간 출신인 전광우 1대 위원장(70), 진동수 2대 위원장(70·17회), 최종구 6대 위원장(62·25회)은 금정과나 금정국 경험이 없다. 국내 금융정책을 다루다 보면 금융사고나 건전성 관리 실패의 책임을 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장관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는 게 금융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최근 사의를 표영한 최 위원장은 국제금융 전문가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 내정됐으나 김석동 전 위원장(66·23회)을 이명박 정부에 이어 금융위원장에 앉히려던 청와대 계획이 틀어지면서 그해 7월부터 지금까지 금융위원장을 맡고 있다.

총선 출마설이 끊이지 않는 최 위원장 후임으로는 은성수 한국수출입은행장(58·27회), 김용범 전 부위원장(57·30회),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66),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59·27회) 등이 거론된다. 한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금정과 주무서기관만 하더라도 개인이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10여년간 사무관을 하면서 쌓은 업무능력과 평판을 고려해 윗선이 ‘선택’하는 자리”라면서 “옛 재경부나 금융위 주요 보직 인사들이 ‘모피아’라고 비판받는 점은 감수해야겠지만 금융 전문가로서의 전문성만큼은 인정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희곤 경제부 기자 hul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