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가라앉는 ‘손경식 리더십’

‘뉴 경총’ 내세웠지만 취임 4개월 만에 안팎서 불신… 좌초 위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79)의 리더십이 취임 4개월여 만에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7월 3일 경총 임시총회에서 자신이 지명한 송영중 전 상임부회장(63)의 해임안이 통과되면서다. 표결 결과 투표권을 행사한 233명 가운데 96.1%인 224명이 송 전 부회장 퇴출에 찬성표를 던졌다. 상임부회장 경질은 경총 설립 4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손 회장은 송 전 부회장의 진퇴를 놓고 경총이 ‘개혁 대 반개혁’으로 쪼개져 있던 한 달간 갈팡질팡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게다가 지난 8일에는 손 회장이 차기 부회장으로 점지했던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마저 부회장직을 고사했다. ‘뉴 경총’을 표방한 손 회장의 도전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지난 7월 3일 오전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임시총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부회장 낙마·회계 문제로 타격

손 회장은 지난 3일 임시총회에서 “우리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도모하고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기존 노사관계 중심에서 경제와 사회 이슈를 포괄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경총의 역할을 정립하겠다”고 밝혔다. 송 전 부회장 해임 논란으로 각계에서 쏟아진 비난을 수습하고 새로운 경총을 출범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불투명한 회계와 계파갈등 등 그간 수면 아래 잠복돼 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드러나면서 경총에 대한 불신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회계문제가 ‘민감한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그간 경총은 일부 사업 수입을 총회에 보고하지 않고 임직원들에게 특별상여금으로 지급해 왔다. 10년 넘게 경총 사무국 직원들이 매년 월 급여의 100∼300%에 해당하는 특별상여금을 받았지만 회원사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경총은 지난 5일 “손 회장의 지시에 따라 회계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특별상여금 현금 지급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단체교섭 관련 지원 등 특별회비로 입금돼 회원사에 보고되지 않은 사업에 대해서도 다음 총회부터 용역사업 계정에 반영해 보고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송 전 부회장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논의과정에서 노동계와 ‘한 배’를 탔다는 이유로 회원사들의 반발에 부닥쳐 해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그가 내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총 임직원들과의 마찰 끝에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송 전 부회장의 전임자로 14년간 자리를 지킨 김영배 전 부회장 시절 만들어진 파벌의 기세가 등등했고 결국 송 전 부회장에 대한 비토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일례로 송 전 부회장은 최저임금 합의를 비난하는 일부 보도와 관련해 해명자료 배포를 일선에 지시했지만 묵살당하는 등 ‘하극상’을 당한 경험을 토로하기도 했다. “앞으로 공정한 경총 사무국 인사체제를 확립하고 회계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고 한 손 회장의 발언도 이런 상황을 의식한 행보다.

그러나 손 회장이 표방하는 ‘뉴 경총’의 미래는 밝지 않다. 우선 손 회장이 후임으로 천거했던 이동근 원장이 부회장직을 거절했다. 손 회장으로서는 대한상의 회장 시절 부회장으로 손발을 맞췄던 이 원장이 자리를 거절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이 원장은 현대경제연구원장에 부임한 지 8개월밖에 안 됐고, 남북경협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현재 직분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래가 불투명한 경총을 이끄는 데 대한 부담감이 컸던 게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손 회장은 7월 12일 산업부 관료 출신인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을 신임 부회장에 선임하는 선에서 사태를 봉합했다.

지난 4월 초 취임해 석 달 만에 불명예 퇴진한 송 전 부회장이 경총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회장의 직무정지조처나 이번 해임안 가결 등에 대해 법적 근거가 부당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송 전 부회장 해임과정에서 사태가 악화되자 20년 넘게 경총에 몸담으며 사무국을 책임졌던 이동응 전 전무가 사의를 표명한 것도 위기요인 중 하나다. 이 전 전무는 송 전 부회장이 오기 전 상임부회장 승진설이 유력했던 인물이다. 이 전 전무는 송 전 부회장과 경총 회계문제 등으로 사사건건 대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 초 회장 임명부터 설왕설래

손 회장은 2005~2013년 대한상의 회장을 역임한 재계의 베테랑이다. 하지만 지난 2월 27일 제7대 경총 회장 취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당초 중소기업중앙회장 출신인 박상희 대구경총 회장의 추대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박 회장 추대는 첫 중소기업 대표 출신 회장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주로 대기업 입장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경총의 변신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회장을 최종 선발하는 전형위원회에 속한 대기업 회원사들의 반대로 박 회장의 취임은 무산됐고 그 대타로 손 회장이 긴급 투입됐다.

손 회장은 불안정한 취임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기조실장 출신인 송 전 부회장을 ‘2인자’로 지명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노동부 출신 관료가 경총 고위임원으로 근무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노사관계의 질적 전환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손 회장은 자신이 임명한 송 전 부회장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막판에는 재계의 눈총과 경총 내부의 반발에 영합해 송 전 부회장을 쫓아내는 데 동조했다. 손 회장이 이번 사태가 끝날 무렵에서야 “내가 결정한 송 부회장이 저렇게 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로 불거진 갈등으로 송 전 부회장에 대한 논란이 일 때도 본인 입장을 제대로 밝힌 적이 없다.

이런 가운데 경총은 오는 7월 15일 창립 48주년 기념일을 맞는다. 검찰은 현재 경총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에 개입했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부적으로도 이번 기회에 과오를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역설적으로 “경총 개혁을 가속화하지 않으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존폐 위기에 놓인) 전경련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송 전 부회장의 주장이 도돌이표가 돼서 돌아온 셈이다. 손 회장이 말년에 잡은 지휘봉을 제대로 휘둘러 경총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구교형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wassup0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