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들, 콘텐츠 확보에 ‘사활’

국내 양대 기업, 플랫폼과 콘텐츠 결합 강화… 양 날개로 글로벌 진출 모색

국내 양대 IT기업들이 플랫폼과 콘텐츠의 양 날개로 글로벌 진출에 나선다. 카카오는 국내 1위 음원 플랫폼인 멜론을 보유한 카카오엠을 9월까지 흡수합병하고 별도의 콘텐츠·영상 제작 전문회사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국내 1위 웹툰 플랫폼을 보유한 네이버 역시 최근 웹툰 지식재산권(IP)을 이용한 콘텐츠 기획·개발 법인을 올해 안에 설립한다. 글로벌 IT업계에서도 플랫폼과 콘텐츠의 융합이 강해지고 있다.

어린이 모델들이 6월 11일 서울 용산 LG유플러스 본사에서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들이 담긴 어린이용 스마트폰 ‘카카오리틀프렌즈폰’을 소개하고 있다. 실시간 위치 조회, 유해 앱 사전 차단 기능을 제공한다./연합뉴스

카카오 “국내 최대 엔터회사 세운다”

카카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카카오와 카카오엠의 합병 이후 생길 새로운 콘텐츠 전문 자회사다. 먼저 카카오엠은 이병헌의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 공유 소속사인 숲엔터테인먼트, 김태리가 속한 제이와이드컴퍼니 등 3개 배우 매니지먼트사와 전략적 지분투자 혹은 전략적 파트너십 등 협업체계를 구축했다.

카카오엠의 이제욱 대표는 6월 27일 이를 발표하면서 “배우·제작·광고 등을 아우르는 밸류체인 완성으로 수익을 극대화해 빠른 시간 내 케이(K) 콘텐츠 1위 사업자로 도약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자사가 보유한 아이유·에이핑크 등의 가수에 한류스타 배우를 더해 영상산업 전 분야에 걸쳐 압도적 경쟁력을 갖췄 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카카오엠은 9월 1일 이후 카카오로 합병된다. 멜론과 카카오톡을 결합해 데이터·콘텐츠·플랫폼의 유기적 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포석이다. 조수용 대표는 이를 “플랫폼은 플랫폼대로, 콘텐츠는 콘텐츠대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카카오엠에서 흡수되는 것은 멜론뿐이다. 카카오는 카카오엠의 콘텐츠 제작 및 유통 역량이 음악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해 음악과 영상 사업을 아우르는 콘텐츠 사업을 위한 별도 법인을 출범시키기로 했다. 콘텐츠 전문 자회사의 빠른 성장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와 인수·합병에 나설 계획도 밝혔다. 카카오 관계자는 “카카오엠의 연예 매니지먼트, 음원 유통, 영상 제작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역량을 하나로 모아 지금의 카카오엠을 넘어서는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카카오의 콘텐츠 전문 자회사는 카카오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가 된다. 카카오 여민수 대표는 “중요 어젠다는 글로벌”이라면서 “카카오재팬이 웹툰과 웹소설로 일본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신설되는 콘텐츠 법인은 음악과 영상 분야의 글로벌 시장에서 굵직한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가 콘텐츠 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면 먼저 킬러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인기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플랫폼을 글로벌로 확장했듯이 해외 이용자들을 붙잡을 만한 콘텐츠를 내세워 플랫폼의 해외 진출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네이버도 웹툰·영화로 글로벌 공략

네이버도 비슷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네이버에서 자회사로 독립한 네이버웹툰은 올해 안에 웹툰 영화화를 전문으로 하는 콘텐트 기획·개발 법인을 설립한다. 법인 대표로 권미경 전 CJ E&M 한국영화사업본부장이 내정됐다. 권 전 본부장은 역대 극장가 흥행 1·3·4위 작품 <명량>(2014) <국제시장>(2014) <베테랑>(2015) 등을 투자총괄하면서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다.

신설 콘텐츠 법인은 ‘IP 브릿지 컴퍼니’를 지향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일반적 영화 제작사와 달리 웹툰 저작권을 갖고 공동제작을 하는 형태로 간다”며 “기존 제작사가 다양한 투자배급사로부터 투자금을 모은 후 웹툰 IP를 획득해 시나리오를 작업한다면 네이버의 신설 법인은 웹툰을 시나리오로 바꾸는 밑단작업에서부터 함께 하는 형태가 된다”고 말했다. 공동투자로 제작사의 초기 부담을 낮추고, IP 사용을 허가했을 경우 원작이 훼손되는 일을 막아 원작자의 창작·기획 의도에 더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 IP 브릿지 컴퍼니의 장점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인기 웹툰을 토대로 한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네이버웹툰의 영상사업 진출도 탄력을 받았다. <신과함께-죄와 벌>은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네이버웹툰이 공동제작 형태로 참여한 첫 영화 <여중생A>도 지난 6월 20일 개봉 이후 저예산 영화임에도 호평을 받고 있다. 원작은 평범한 여중생(김환희 분)이 가상 게임세계에서 사귄 친구(수호 분)를 실제로 만나며 펼쳐지는 성장담을 다룬 웹툰인데 연재 당시 만점 가까운 네티즌 평점(9.9)을 받았다. 네이버웹툰 측은 이처럼 검증된 웹툰을 선별해 다양한 규모와 장르의 영화를 선보일 계획이다.

영상 콘텐츠도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 계열사 스노우와 네이버웹툰이 공동출자한 동영상 콘텐츠 제작법인 플레이리스트는 지난 4월 영화사업부 세미콜론 스튜디오를 출범했다. 웹드라마 등 온라인 기반의 웹 콘텐츠 IP 개발과 동영상 콘텐츠 제작 실험을 하는 사업부다.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진출도 지원한다. 네이버는 지난 1월 600억원에 이어 지난 25일 추가로 1500억원을 네이버웹툰에 출자했다. 네이버웹툰은 이번 증자로 마련한 현금을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웹툰 시장 공략에 쓸 계획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일본 ‘라인 디지털 프런티어’에 대한 투자로 한·일 양국 웹툰 비즈니스의 교두보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은 지난달 만화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라인 디지털 프런티어를 설립했다. 이 관계자는 또 “500만 이상의 월간 사용자(MAU)를 확보하며 의미있는 성장세를 쌓아가고 있는 미국 웹툰 사업을 더 빠르게 성장시키는 데도 사용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네이버의 플랫폼·콘텐츠 결합은 국내외 IT업계의 전체 흐름과도 일치한다. 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을 비롯한 KT, LG유플러스도 최근 들어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1위 통신사인 AT&T와 HBO·워너브러더스, CNN 등을 보유한 타임워너의 합병도 이런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등 3개사와 손잡고 올해 안으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에는 모바일 동영상 제작 전문 스타트업인 메이크어스에 약 100억원을 투입하고 음악 프로그램 공동제작 등에 나서기로 했다.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와 손잡고 KT가 지배하는 인터넷 TV 시장의 판도를 흔들려 하고 있다.

김윤 SK텔레콤 AI리서치센터장은 6월 27일 열린 구글 AI 위크 강연에서 “SK텔레콤은 네트워크 사업으로 성공한 후 그 위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거듭났다”며 “서비스에서 얻는 데이터를 축적해 새로운 자산과 기술, 신사업을 개척하는 데이터 컴퍼니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신사들이 콘텐츠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 플랫폼 기업들이 선택하는 자연스런 수순이라는 것이다.

<주영재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