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사태, 글로벌 위기 부르나

페소화 가치 폭락 IMF에 300억 달러 구제금융 요청

긴축발작(taper tantrum)이 아르헨티나를 삼키는 것일까. 아르헨티나가 페소화 가치 폭락을 이기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300억 달러(32조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원인은 미국의 금리인상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일주일 동안 세 차례나 금리를 인상하며 40%까지 끌어올렸지만 달러 유출을 막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현지시간으로 지난 8일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협상을 시작했다. 한 남성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환전소 앞을 지나가는 모습./AP연합뉴스

시장에서는 아르헨티나 사태를 긴축발작의 전주곡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비슷한 상황에 빠진 브라질, 터키, 인도 등도 마음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인 S&P는 터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BB→BB?)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신흥국을 중심으로한 6월 글로벌 위기설까지 나온다.

미국 금리인상 여파 긴축발작 사태

긴축발작이란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자 신흥국에 풀렸던 돈들이 회수되면서 신흥국의 통화가치와 주가, 채권값이 대폭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2013년 5월 벤 버냉키 당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를 언급한 뒤 신흥국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자 생겨난 용어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5월 3일 아르헨티나의 환율은 1달러에 22.376페소까지 상승했다. 역대 환율 최고치였다. 페소화는 한 달 만에 가치가 8.2% 떨어졌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환율 방어를 위해 돈을 퍼부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의 10%를 소진한 뒤 손을 들었다. 대신 금리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 27.5%였던 금리는 40%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상황은 진정되지 않았다. 국가부도 우려가 나오자 외국인들의 이탈은 더 빨라졌다.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신흥국들은 환율 폭락 도미노에 빠졌다. 지난 3월 말 대비 러시아 루블화는 8.9%, 브라질 헤알화는 6.9%가 폭락했다. 아시아 통화도 1.5% 떨어졌다.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신흥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상승하고 있다. 터키는 지난해 말 대비 31bp(1bp는 0.01%포인트)가, 브라질은 21bp가 상승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14bp, 러시아도 10bp가 올랐다. CDS 프리미엄 상승세는 최근 들어 가팔라졌다. 신흥 21개국 평균 CDS 프리미엄은 5월 3일 기준 전주 대비 7bp 올랐다. CDS 프리미엄이 오르지 않은 나라는 4·27 판문점 선언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해소시킨 한국 정도밖에 없다. 한국은 지난해 말 대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4bp 떨어졌다. CDS 프리미엄이란 외국에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에 대한 부도보험료다. 국가위험도가 상승하면 보험료가 올라가고, 하락하면 보험료도 내려간다.

신흥국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채권의 가산금리는 올라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신흥국 채권의 가산금리는 3월 말 대비 27bp 상승했다. 올 초 대비하면 41bp가 올랐다. 가산금리가 올라가면 자금을 조달할 때 부담이 더 커진다.

아르헨티나와 터키의 경우 높은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면서 중앙은행 물가관리 능력에 대해 의구심이 커졌고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터키 중앙은행은 정책금리(차입금리)를 75bp 인상했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 10.2%에서 3월 10.9%로 오히려 올라갔다. 두 나라는 경상적자국(GDP 대비 5% 내외)이어서 외환방어에 취약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브라질·터키·인도 등도 비슷한 상황

러시아와 브라질은 정치불안까지 겹치면서 외국인들이 떠나고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비호했다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경대응하면서 추가제재 우려가 커졌다. 브라질은 룰라 전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차기 대선의 향방이 불확실해지고 연금개혁 투표가 연기되면서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떨어졌다.

동아시아국가들도 영향권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올 들어 외국인 주식투자액이 순유출로 전환됐다. 올 들어 대만은 5월 2일까지 62억 달러가 순유출됐다. 지난해 연간 순유입액(63억 달러)에 육박하는 액수다. 같은 기간 태국은 27억 달러, 인도네시아는 26억 달러가 순유출됐다. 2016년 10억 달러, 지난해 90억 달러가 순유입됐던 한국도 26억 달러 순유출로 돌아섰다. 최근 들어 코스피가 힘을 못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는 베트남만 순유입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4월 16일 이후 글로벌 투자자들이 신흥국 시장에서 55억 달러를 회수했다”며 “이는 2013년 긴축발작 때보다 더 빠른 속도”라고 밝혔다.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선 유가도 변수로 떠오른다. 미국이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선언하면서 유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석유수입국들은 경상수지 걱정을 안할 수 없다. 신흥국 대부분은 원유수입국이다.

그동안 신흥국은 ‘이지머니(Easy Money)’를 즐겼다. 기록적인 저금리 속에 마음껏 돈을 빌려 썼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자료를 보면 2006년 16조 달러이던 신흥시장의 부채는 2016년 55조 달러로 3배 이상 늘어났다. 파티는 끝났다. 지난 3월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6월에도 인상할 것이 확실시된다. 시장에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미 3%를 찍었다. 미국의 단기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신흥국 투자자금은 올해에만 430억 달러(약 46조원)가 빠져나갈 것으로 IIF는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금리인상을 주저했던 한국은행의 고민은 더 깊어지게 됐다. 외환보유액이 넉넉하고, 남북 화해기조로 코리아디스카운트까지 약화돼 대외적인 환경도 좋다지만 자칫 실기하다가 경제 펀더멘털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 연준이 다음달에도 기준금리를 올리면 기준금리가 최고 연 2.0%까지 올라가 한은(연 1.5%)과의 금리차는 0.5%포인트까지 벌어진다. 하지만 국내 일자리 상황이 나쁘고, 물가는 낮고, 경기는 위축됐고, 가계부채는 많은 상황에서 한은이 시원하게 금리를 올리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김상훈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선진국에 가까운 신흥국이어서 아르헨티나, 터키 등과 같은 선상에서 보기 힘든 점이 있다”며 “아직까지는 큰 폭의 자본유출이 감지되지 않는 만큼 한은이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할 때 한 차례 정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까 예상하는 견해가 많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