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크릴잡이 남획을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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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조업 반대 캠페인, 크릴 시장 급성장 어업규모 갈수록 커져

여명이 트던 3월 23일 새벽. 남극 그리니치섬 인근에 있던 그린피스의 ‘아틱 선라이즈호’가 조업선 한 척을 발견했다. 우크라이나 선적의 크릴조업선 ‘모르 소드루체스토호’였다. 이 지역은 남극해 펭귄과 고래의 서식지 인근으로 환경운동가들이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요구하는 곳이다. 그린피스의 활동가들은 고무보트를 이용해 재빨리 이 배로 다가갔다. 이들은 배 측면에 붙어서 ‘남극을 보호하자’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선체에 생존캡슐을 부착했다. 이제 2명의 활동가들은 이 캡슐 안에서 최대 일주일가량 머무르며 모르 소드루체스토호의 조업을 방해할 예정이다.

남극 반도 샬럿 만에 있는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인 ‘아틱 선라이즈’호의 모습이다. / 그린피스

남극 반도 샬럿 만에 있는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인 ‘아틱 선라이즈’호의 모습이다. / 그린피스

그린피스가 27년 만에 남극을 다시 찾았다. 남극크릴 보호를 위해서다. 그린피스의 ‘아틱 선라이즈호’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남극에 머무르며 크릴조업 반대 캠페인을 벌인다. 그린피스는 1991년을 끝으로 남극을 떠났다. 당시 그린피스는 남극대륙에서 이뤄지는 무분별한 광물자원 채굴을 막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는데, 남극조약의정서가 체결되자 철수했다. 그린피스는 무려 5년간 남극에 머물렀다.

남극크릴 줄어들면 온난화도 빨라져

그린피스가 남극크릴 보호에 나서는 것은 남극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생물이기 때문이다. 크릴은 새우를 닮은 갑각류로 무리를 지어 해류를 따라 떠다닌다. 전세계 바다에 약 80종의 크릴이 분포하는데, 남극해에는 남극크릴(Euphasia superba) 한 종이 산다. 남극크릴은 황제펭귄, 수염고래, 남극물개, 알바트로스 등 남극생물들의 먹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오징어인 남극하트지느러미오징어, 지구상 가장 큰 동물인 대왕고래도 크릴새우를 좋아한다. 레오파드바다표범은 이런 펭귄을 먹잇감으로 한다.

남극크릴은 최근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했다. 가장 큰 위협은 지구온난화다. 크릴이 생존하려면 낮은 온도의 해수와 해빙이 필요하다. 기온이 상승하면 크릴의 먹이인 식물성 플랑크톤의 개체수가 줄어든다. 해빙이 녹으면 크릴과 크릴이 먹는 플랑크톤의 서식지도 사라진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 남극크릴은 금세기 안에 최대 절반 이상이 서식지를 잃을 수 있다는 보고도 나와 있다. 이 말은 크릴을 먹고사는 펭귄, 바다표범, 고래도 서식지를 잃고 개체수가 급감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남극크릴이 줄어들면 지구온난화는 더 빨라진다. 크릴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심해로 내보내는 등 탄소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영국 남극 자연환경연구소(British Antarctic Survey)에 따르면 크릴이 흡수 저장하는 탄소의 양이 매년 2300만톤에 달하는데 이는 영국의 전체 가정집이 1년 동안 배출하는 온실가스량과 맞먹는 규모이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셈이다.

남극해의 먹이사슬. 만약 크릴이 사라지면 남극해 먹이사슬이 무너지게 되고 크릴을 먹고 사는 다양한 남극 동물 또한 사라질 수 있다. / 그린피스

남극해의 먹이사슬. 만약 크릴이 사라지면 남극해 먹이사슬이 무너지게 되고 크릴을 먹고 사는 다양한 남극 동물 또한 사라질 수 있다. / 그린피스

기후변화보다 더 위협적인 것이 남획이다. 1961년 남극에서 시작된 크릴어업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릴은 오메가3 지방산 및 대사산물을 함유한 건강보조제로 쓰인다. 낚시미끼, 양식장 먹이, 반려동물 사료로도 쓰인다. 어유가 몸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크릴오일 시장은 급팽창하고 있다. 2021년까지 크릴오일 시장은 2015년(2억 달러)의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과 일본의 웰빙 트렌드가 바뀌면서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가장 빨리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실험적으로만 어업을 했던 중국은 2015년부터 본격 상업조업을 하고 있다. 리우셴리 중국 농업발전집단 대표는 “중국은 크릴어업과 관련해 남극해에 투자를 늘릴 것”이라며 “남극해는 모든 인류의 보물창고다. 중국도 그곳에서 보물을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노르웨이도 남극해 크릴어업 허가를 추가로 늘렸다. 한국도 크릴어업국 중 하나다. 그린피스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인성호, 세종호, 광자호 등이 남극크릴 조업을 했거나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속도라면 남극크릴이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것이 그린피스의 우려다. 이미 1970년대 이후 크릴의 개체 수가 80% 정도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보고서도 나와 있다.

김혜린 그린피스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캐나다 뉴펀들랜드 앞바다는 젖지 않고 대구만 밟고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대구가 많았지만 남획으로 지금은 씨가 말랐다”며 “남획은 기후변화와 달리 인류가 당장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릴조업 중단 캠페인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남극해에서 크릴잡이가 허용되는 것은 남극대륙에 적용되는 ‘남극조약의정서’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극해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의 관리를 받는다. 환경단체들은 남극해 크릴잡이를 중단시키는 방법으로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그 구역에서는 상업적 크릴어업 활동을 일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업국들의 반대로 해양보호구역 지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전세계 바다의 5%에 불과하다. 유엔은 2020년까지 전세계 바다의 1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설정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2030년까지 30%는 지정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남극해 지도. 보호구역 지정이 합의됐거나 제안된 구역 / 그린피스

남극해 지도. 보호구역 지정이 합의됐거나 제안된 구역 / 그린피스

한국도 어획량 세 번째로 많은 나라

이런 흐름을 따라 CCAMLR은 2016년 10월 남극 로스해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규모의 해양보호구역이었다. 회원국들은 여세를 몰아 남극해 동남극, 웨델해, 남극반도 주변도 추가적으로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지난해 10월 열린 CCAMLR에서 동남극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는 데 실패했다. 25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를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극크릴 조업국가들이 반대했다.

오는 10월 열리는 CCAMLR에서는 웨델해를 보호하자는 유럽연합안과 남극반도 서부를 보호하자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안이 상정된다. 그린피스가 활동가들을 남극에 급파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극을 이슈화시켜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그린피스는 CCAMLR 회원국인 한국에도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남극에서 40여년간 크릴어업을 한 한국은 전세계 크릴 어획량이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박샘은 그린피스 활동가는 “남극 웨델해는 한국 면적의 18배로 만약 지정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보호구역이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역사적인 결정에 한국이 찬성여론을 주도한다면 명분적으로나 외교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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