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어둠을 여는 ‘붉은 닭’의 의미

우정사업본부가 2017년 새해를 맞아 연하우표를 발행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더욱 풍요롭고 빛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긴 ‘닭그림’ 2종이다. 매년 연말에 발행되는 연하우표는 12간지 중 다음 해에 해당하는 동물을 담는 게 보통이다. 별도로 연도를 표기하지 않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2개의 세트로 구성된 우표 중 하나는 떠오르는 태양과 닭의 힘찬 발걸음을 통해 새해의 희망과 기쁨을 묘사했다. 웃음 띤 얼굴과 다채로운 색상으로 매무새를 뽑낸 깃털, 그리고 꼿꼿한 볏도 희망과 기쁨에 어울리는 소품이다. 눈 속에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닭의 모습을 디자인한 또 다른 우표는 정유년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우리 모두의 기대와 자신감을 담았다고 한다. 굳세고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신비로운 회색의 몸체 위에 내려앉은 눈꽃은 마치 볏처럼 빛난다. 새벽을 여는 듯한 느낌을 준다.

2017년 정유년은 닭의 해다. 우리 조상은 닭을 상서로운 서조(瑞鳥)로 여겼다. 새벽을 여는 새로 여겼다. 여명을 알리는 닭울음 소리가 날 무렵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은 달구리다. 달구리는 ‘닭울이’가 변한 것이다. 한자로는 계명시(鷄鳴時)라고 한다. 새벽의 닭울음소리를 계명청(鷄鳴聽)이라고 한다. 계명은 곧 개벽으로 환치된다. 새벽은 한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침 정유년을 앞두고 우리나라 정국은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누군가는 작금의 사태를 “6·25전쟁 이후 최대의 혼란기”라고 말한다. 혼돈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들이 날뛰고 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은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전횡한 이들의 민낯을 보면서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2017년 정유년을 맞아 발행한 연하우표. / 우정사업본부

작용과 반작용은 만물의 법칙 중 하나다.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 듣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아니 기다리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수백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국민이 보다 안전하게 살고 권력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고통받지 않는 새로운 세상에 살고 싶어하는 열망의 표현이다.

어둠은 언젠가는 걷히게 돼 있다.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국민들은 다가올 정유년에 보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내년이 ‘붉은 닭’의 해이기 때문이다. 붉음은 밝음과 의미가 통한다. 그래서 ‘붉은 닭의 해’를 ‘밝은 닭의 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밝음’을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총명함’이 될 것이다. 총명의 원래 의미는 귀와 눈이 밝다는 것이다.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으며 재주가 있는 이를 총명한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총명의 속뜻은 보다 포괄적이다. ‘귀가 밝다’는 낯선 소리에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또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것에 공감하는 마음을 뜻한다. 눈이 밝다는 의미는 주변의 상황이나 시대의 흐름을 세심하게 살펴 읽어내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내를 헤아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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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어지럽고 어려울수록 밝은 귀와 눈이 요구된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대통령의 탄핵, 탄핵심판 결과에 의해 당겨질 수 있는 대통령 선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가 초래한 정계개편과 또 이들 정국상황과 맞물려 돌아가는 개헌논의 등 정국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나라를 책임진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세상을 여는 총명을 상징하는 ‘붉은 닭’의 의미를 되새겨본다면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연하우표에 담고 싶어한 희망과 기쁨, 그리고 기대와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