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몰아서 짓기’ 위험 키운다

한 지역에 여러 개 건설하면 연계사고와 대형사고 가능성 커져

6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5·6호 원자력발전소의 건설 허가안을 승인하는 과정에 다수호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다수호기 문제란 한 지역에 여러 개의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신고리 5·6호기가 완공되면 울산 울주군 일대에 원전 10기가 들어서게 된다. 울주군은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허가로 인해 현재 전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됐다.

고리 원전에서 반경 30㎞ 안 울산시 등에 34만명 넘게 산다.

신고리 5·6호기 완공되면 울주에 10기
다수호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신한울 3·4호기 건설 허가안이 원안위에서 심사 중이다. 이는 한수원 측이 경북 울진에 건설하려고 추진 중인 원전인데, 원안위로부터 건설 허가가 날 경우 울진지역에도 원전 10호기가 들어서게 된다.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올해 1월 원안위에 신한울 3·4호기 건설허가심사서를 제출했다.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은 원전을 지을 경우 원안위로부터 안전성 심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원안위는 한수원이 제출한 건설허가심사서를 바탕으로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안전성을 심사한다.

국제환경운동 시민단체인 그린피스의 활동선인 '레인보우 워리어 3호'에서 바라본 고리 원자력발전소 1,2,3,4호기(왼쪽부터) 모습. / 이상훈 선임기자

신한울 3·4호기는 울진군 북면 덕천리와 고목리 일대에 지어질 예정이다. 가압경수로(증기발생기가 터빈을 작동시키는 방식)이고, 한울 원전과 같은 신형경수로(APR1400)다. 시설용량은 1400메가와트(MW)급이다.

현재 울진군에는 한울 원전 6기가 가동 중이다. 같은 지역에 신한울 원전 1·2호기가 건설 중이다. 여기에 더해 신한울 3·4호기도 건설을 위한 허가 과정에 있다.

울진지역은 약 6년 뒤가 되면 전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원전 호기 기준으로 가장 밀집도가 높은 원전은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 원전 단지다. 이곳에는 원전 8기가 위치해 있다. 현재 기준으로 한울 원전단지의 원전 밀집도는 3위다. 이 지역에는 신한울 1호기와 2호기가 2017~2018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인데, 이것까지 가동이 되면 한울 원전단지에는 총 8기가 들어서게 된다. 이후 고리 1호기가 2022년쯤 해체작업에 들어가고 신한울 3·4호기까지 건설 허가를 받아 건설되면 한울 원전단지에는 총 10기가 들어서게 돼 전 세계에서 가장 원전 호기 수가 많은 단지가 된다. 같은 시기에 고리 원전단지는 총 9기가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신한울 3·4호기는 완공되면 전 세계에서 한 지역당 발전량 규모로서도 세계 최대 규모가 된다. 한울 원전 1~6호기의 설비용량은 총 5900메가와트(MW)다. 여기에 신한울 1~4호기가 가동된다고 가정하면 5600메가와트가 추가된다. 합하면 1만1500메가와트에 달하는 거대 원전 단지가 탄생하는 것이다. 발전용량 규모로 따져도 전 세계 1위의 원전단지가 되는 것이다.

신한울 3·4호기까지 지어지면 폐로에 들어갈 고리 1호기를 제외한다 해도 전국에 31기의 원전이 들어서게 된다. 이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10기가 한울 원전부지에 들어선다. 전 세계에서 한 지역에 원전을 6기 이상 지어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캐나다, 우크라이나, 프랑스, 중국, 인도 6곳뿐이다.

원전 밀집도가 높지만 원전 허가 심사를 할 때 다수호기가 서로 연계돼 발생할 사고에 대한 위험성 평가는 빠져 있다. 원안위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측은 “현재 국내에 다수호기 원전에 중대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한 위험성 예측 모델이 없다”고 밝혔다.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허가 과정에서도 안전성 평가를 하면서 한수원 측은 ‘확률론적 분석(PSA)’이라는 분석도구를 이용해 원전 개별호기에 대한 사고 안전성 평가를 했지만 다수 원전에 동시에 사고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한 확률론적 분석(PSA)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기관 보고서에도 다수호기 사고를 대비한 안전성 평가가 필요하다고 나와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다수호기 리스크 평가 규제지침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보고서’를 보면 현재 국내 원전의 인·허가는 개별 원전의 안전성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개별 원전 안전성 평가’는 부지 내 다른 원전이 안전하게 운전된다는 가정 아래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 평가는 인접지역의 신고리 3·4호기 등이 정상 가동할 때의 사고위험 평가로 한정된다는 말이다. 원자로 손상이나 방사능 누출 같은 중대사고 상황에서 다수의 원전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상황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심사 당시 한수원과 심사 주체인 KINS 측 모두 6월 26일 열린 원안위 회의에서 “대형 재해가 발생해도 원전들이 안전과 관련된 핵심 설비를 공유하지 않고 각 원전별로 사고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가 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KINS의 보고서에는 “전력망이나 송배전설비, 일부 냉각기 등은 원전끼리 공유돼 있다”며 “다수호기 사고 가능성 평가가 적절히 수행됐는지 불분명하다”고 쓰여 있다.

원전 연계 가동중지 사고 4건이나 발생
실제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원안위에 보고된 원전 사고나 고장은 249건이다. 이 가운데 2기 이상의 원전이 연관돼 가동 중지된 사례는 고리, 한울, 한빛 원전에서 총 4건이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북상했을 당시 고리 원전의 송전선로가 고장나 이틀에 걸쳐 고리 3·4호기, 고리 1·2호기의 가동이 차례로 정지된 적도 있다. 또 태풍 매미 북상으로 강풍에 날린 물질이 월성 원전까지 날아간 탓에 월성 2호기도 일부 기기 손상이 돼 가동 중지됐다. 또 2010년 7월에는 송전선로 낙뢰 손상으로 고리 1·2호기가 중단됐다. 2002년 11월에는 한빛 5·6호기가 멈췄다. 2006년 5월엔 해양생물 유입 때문에 한울 1·2호기의 터빈과 발전기 가동이 중단됐다. 원전이 모여 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사고가 동시에 다수의 원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안전과 관련된 핵심 설비를 공유하지 않아 괜찮다”는 정부 당국의 입장이 설득력을 갖기 힘든 이유다. 이제까지 다수호기가 연계된 사고가 대형사고로 이루어지지 않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도, 다수호기가 입지하는 원전이 늘어날 경우 사고가 나면 큰 피해로 이어질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원안위 회의에서는 다수호기에 대한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하루빨리 개발돼야 한다는 데 원안위 위원 및 KINS 측의 의견이 모아졌다. KINS 관계자는 “신고리 5·6호기 건설과정에서 다수호기의 안전성 평가 도구가 없다는 판단 아래 해당 연구를 시작하려고 연구용역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수호기 사고위험 측정도구가 신뢰성을 가지려면 향후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툴 개발뿐 아니라 데이터를 축적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린피스 장다울 캠페이너는 “캐나다의 경우 이미 정부가 다수호기 사고위험에 대한 평가도구를 만들어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한국 정부도 원전 건설 허가 승인만 할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위험 검사도구를 준비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정민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mo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