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나라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얘기가 나오면 어느 한국인도 말을 잇지 못한다. 여태 과학 분야에서 한 차례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한국으로서 노벨상 수상자 20명을 배출한 일본에 대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어떠했을까.
일본의 한 학자가 재미있는 연구를 했다.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14세기 말부터 15세기 초까지의 과학기술로는 무엇이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했다. 그의 연구를 토대로 <과학사 기술 사전>에 게재된 ‘세계를 뒤흔든 15세기의 과학기술 업적’이 작성됐다. 여기에는 조선의 21건, 중국의 4건, 아라비아·유럽 등 다른 나라의 19건이 게재돼 있다. 세상에서 가장 젊은 글자인 한글, 세계 최초의 측우기, 아직도 100% 구현이 불가능한 기계식 자명시계인 자격루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밖에도 해시계인 앙부일구,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간의·소간의·적도, 거리측정 수레인 기리고거(記里鼓車) 등이 오늘날 과학기술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지목됐다.
우정사업본부가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장영실, 허준, 이태규 등을 소재로 한 한국 과학자 시리즈 우표 210만장(3종 70만장)을 4월 21일 발행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뿐만 아니다. 노벨상의 선정 기준인 기초과학 분야도 세계에서 최고였다. 세종시대의 학자인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에서 일식, 월식 계산법을 제시했다. 지구가 둥글고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전제가 되지 않는다면 일식과 월식을 계산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게 1543년이다.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1632년에 이를 입증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이와 비교하면 조선의 기초과학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일식과 월식의 계산은 정확한 달력을 만드는 기초가 됐다.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칠정산외편>에 적시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과 단 1초 차이가 난다. 이를 토대로 1444년에 만들어진 달력이 ‘칠정력’이다. 당시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아라비아, 그리고 조선뿐이었다.
세종 시대에 이같이 높은 과학기술 수준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정부의 지원이다. 한 예를 들자면 오늘날 국립기상천문대 역할을 한 서운관(書雲觀) 소속 관리의 대우는 조선 최고였다. 봉록도 가장 높고, 진급도 가장 빨랐다. 관장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정인지 영의정이 맡았다. 전국의 과학인재가 서운관으로 몰려든 이유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과학자 어느 누구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은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탓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정부에 원인을 돌릴 수는 없다, 정부의 지원 못지않게 기초과학과 과학자를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다. 사회 분위기가 곧 우리나라 과학수준의 성장과 기초과학 발전, 사회풍토 개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우정사업본부가 나섰다. 4월 과학의 달을 맞이하여 한국을 빛낸 명예로운 과학기술인을 소재로 ‘한국의 과학(두 번째 묶음)’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과학기술인을 기리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선정해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국립과천과학관 내 위치)에 헌정한 총 31인의 과학기술인 중 장영실(기계기술), 허준(의학), 이태규(이론화학) 등 3인을 소재로 우표를 만들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에도 이론물리학자 이휘소, 나비박사 석주명, 전기공학자 한만춘 등 3인을 ‘한국 과학자 우표’로 소개했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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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이채양명주’ 의제로 올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