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삼성과 애플 ‘혁신’은 없었다?

‘갤럭시 기어’는 기대 못 미치고 애플은 미디어데이에 ‘하나 더’ 못 내놔

“원래 IT업계에서 기어(gear)는 액세서리라는 뜻이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9월 5일 내놓은 스마트워치 ‘갤럭시 기어’에서 기어가 무슨 뜻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삼성전자 관계자의 답이다. 기자는 지난 3월, 삼성전자가 막 시장에 내놓은 스마트폰 갤럭시S4에 대한 기사를 썼다. 3월 20일, 블룸버그 통신은 무선사업부 이영희 부사장과의 인터뷰를 근거로 “삼성이 스마트워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스마트시계 출시계획 여부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지나가는 말로 ‘나중에 나올 수도 있다’는 정도의 뉘앙스였는데 기자들이 앞서 나간 것”이라며 출시계획을 부인했다. 그로부터 6개월. 삼성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3 행사에 앞선 9월 5일(현지시간) 삼성모바일 언팩 행사를 열고 갤럭시노트3와 갤럭시 기어를 공개했다.

애플 CEO 팀 쿡이 9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AP연합

삼성전자 측은 “‘갤럭시 기어’는 갤럭시기기와 연동해 스마트폰의 활용도를 더욱 높여주는 완벽한 ‘스마트 컴패니언 제품’으로 생활의 편리함을 더할 것”이라고 제품의 용도를 정의하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스펙은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는 전화 기능 ▲‘S 보이스’를 활용한 전화 수·발신과 일정, 알람 세팅, 날씨 확인 음성 제어 ▲메일이나 문자 수신 여부 확인 후 곧바로 스마트폰을 집어들면 해당 메일이나 문자가 뜨는 스마트 릴레이 ▲스트랩 카메라를 활용한 ‘메모그래퍼’를 통한 일상의 기록 등이다. 외지 등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가득 충전하면 25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으며, 자이로스코프 센서 등이 들어 있어 만보기 등 건강 관련 앱을 다운받아 활용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갤럭시 기어는 삼성이 상상한 아이워치?
삼성의 설명과 달리 업계 반응은 냉정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솔직히 소문을 듣고 만든 제품 아니냐”고 말했다. 즉 경쟁업체인 애플의 미디어데이 행사(9월 10일)를 앞두고 만에 하나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아이워치’(iwatch)가 나올 경우에 대비, 삼성이 예상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 구현해 ‘미리 질러본’ 제품이라는 것이다. 이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사용자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지금 내놓은 그 시계는 사야 할 이유가 없고 소비자에게 어떤 메리트를 주기도 힘든 제품일 것”이라고 평했다.

지난 <주간경향>의 갤럭시S4 기사에서 “삼성이 애플보다 먼저 갤럭시워치를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IT평론가 안병도씨는 “삼성이 잘하는 것과 애플이 잘하는 것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의 하드웨어 기술력은 뛰어나기 때문에 단순한 기능을 구현하는 제품은 더 빨리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능으로 무엇을 할 것이고,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사용될까에 대한 생각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게 이번 갤럭시 기어 출시를 보면서 가진 생각이다.”

그리고 5일 후 9월 10일 애플의 미디어데이. 애플이 이날 행사를 앞두고 발송한 초청장엔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일상을 밝혀줄 것입니다’(This should brighten everyone’s day)라고 적혀 있었다. 배경에는 형형색색의 물방울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IT 관련 블로거들이나 매체들은 이게 애플이 내놓을 저가형 아이폰5C를 형상화한 것으로 내다봤다.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사전에 IT블로거들이 예상한 예측 스펙은 거의 대부분 들어맞았다. 애플의 CEO 팀 쿡은 지난 4월 투자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올해 가을에서 내년 초까지 우리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제품들을 세상에 내놓을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드디어 애플이 아이워치와 같은 웨어러블이나 일체형 iTV를 9월 미디어행사에서 공개하는 게 아니냐는 설렘이 있었다.

이날 행사는 과거와 달리 동영상으로 생중계되지 않았다. 대신 사전에 초청장을 받은 IT 언론사 기자들의 트위터 중계를 통해 진행 내용을 알 수 있었다. 행사는 무대에 오른 팀 쿡이 베이징과 도쿄를 특별히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관심은 아이폰5의 후속모델인 5S와 함께 저가폰으로 예상되는 5C의 정체에 모아졌다. “C가 China의 약자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5C는 이제 막 떠오르는 이머징 마켓인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삼성전자가 ‘IFA 2013’ 전시회 개막에 앞서 9월 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템포드롬에서 개최한 ‘삼성 모바일 언팩’ 행사에서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IM 부문장 신종균 사장이 ‘갤럭시 기어’를 선보이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이날 애플 측이 밝힌 아이폰5의 후속모델 5S의 스펙은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문인식모듈을 집어넣어 스마트폰의 개인 보안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애플의 부사장 필 실러는 아이폰5C의 외장케이스에 도입된 다양한 컬러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에 이런 것을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아이폰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다 예상했던 것 아니었나.

이날 무대에 오른 팀 쿡, 엔지니어링 부문 수석 부사장 크레이그 페더리히나 비디오로 출연한 조너선 아이브 산업디자인 부문 부사장 등은 “우리가 정말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여러분께 보여주게 돼서 흥분된다”, “우리가 만들었던 어떤 것보다도 가장 앞서 나간 폰”, “놀라운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등의 표현을 썼다.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즐겨 사용하던 표현이다.

이날 행사를 인터넷으로 중계한 기즈모도의 브라이언 배런 기자는 행사에 앞서 이런 농담을 했다. “아이워치나 애플 HDTV, 애플TV의 업데이트, 그리고 작은 자전거를 타는 곰 중에서 오늘 행사에서 볼 가능성이 높은 걸 고른다면 나는 자전거 타는 곰을 고를 것이다.” 그는 스티브 잡스 사후 지난 수년간 “하나 더(one more thing)”라며 막판에 애플이 개발한 혁신적 기기를 공개하는 반전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행사의 마지막. 팀 쿡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행사를 끝내기 전에, 우리는 다시 음악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무대에 오른 이는 진짜 음악가 엘비스 코스텔로였다. “하나 더”는 없었다.

‘하나 더’ 없는 애플의 미래
팀 쿡 체제에서 기존에 만들어진 제품의 소프트웨어·하드웨어적 개선을 제외한 기기적 혁신은 더 이상 없는 걸까. 안병도씨는 “스티브 잡스 사후 더 이상의 혁신이 없자 애플의 엔지니어들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다른 기업으로 이직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라며 “혁신의 동력이 쇠퇴할 것이라는 염려는 타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애플에서 ‘iTV’라는 이름으로 스마트TV가 나온다고 하자 소니나 삼성 등 기존 가전업체들이 바짝 긴장해 스마트TV를 양산했지만, 막상 제품이 안 나오자 업계의 긴장이 식은 것이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시 말해 애플발 ‘혁신’이 없으면서 동시에 업계 전체의 혁신 속도도 둔화되었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미래 팀 쿡>의 저자 김대원씨는 “아이폰의 경우 3G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리 주목하지 않았지만 3Gs가 나오고서야 시장의 관심이 가파르게 올라갔다”며 “애플 자체의 발전 속도에 비춰보면 똑같은 스텝을 밟고 있지만 사람들의 기대치가 너무 올라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저 경험을 강조하는 애플 특성상 ‘완성품’ 단계로 무르익지 않은 한 시장에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혁신 기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도 그렇고, 디지털 기기의 생애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워치’든 ‘아이TV’든 애플이 내놓는 새로운 기기는 내년이나 후년 정도면 시장에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