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배구조 복잡한 롯데 ‘통 큰 순환출자’

이명박정부에서 순환출자 가장 많이 늘린 기업… “증여 목적이 50% 이상 차지”

“롯데는 돈을 어디에서 버는지 잘 모르겠다. 롯데월드에서 버는지, 롯데백화점인지, 롯데마트인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롯데처럼 복잡한 그룹도 없을 것이다.”

대기업 모 인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롯데그룹 소유구조의 특징은 경제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복잡하다. 총수가 있는 대기업 중에서 롯데가 순환출자 구조가 많은 대기업으로 꼽힐 것이라는 분석이 높다. 5월 3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62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2013년 4월 1일 지정된 기업집단을 기준)의 순환출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8년 이후 새롭게 생성된 순환출자는 69개인데, 이 중 롯데가 32개(46%)를 차지했다. 삼성, 현대자동차 등은 0개다. 롯데가 이명박 정부에서 순환출자를 가장 많이 늘린 대기업으로 꼽힌 것이다.

2015년 완공 예정인 제2롯데월드 건설현장 모습. 제2롯데월드는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일대 지하 6층, 지상 123층에 555m 높이로 건설된다. | 연합뉴스

순환출자는 ‘A→B→C→A’ 식으로 되어 있는 지배구조를 말한다. A사가 B사에 출자를 해서 B사의 최대주주가 되고, B사가 C사에 출자를 해서 C사의 최대주주가 되고, 또 C사가 A사에 출자를 하는 형태를 말한다. 단계는 더 늘어나기도 한다. 롯데의 경우 7단계를 거쳐 A사까지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순환출자 방식은 A사의 자본금이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오고, 계열사의 경영권을 적은 지분으로 지배할 수 있게 한다. 재계는 순환출자를 금지할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되고 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대규모 M&A를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는 순환출자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서는 지배구조를 향상하고, 유휴자산 매각 등의 방법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지난 대선과정에서도 순환출자 금지가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는 정책을 발표했고, 문재인 후보는 순환출자 전면 금지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경제정책 방향 중 하나로 ‘대기업집단 계열사 간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정했다. 국회에서 순환출자 금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대기업 집단간 순환출자 금지’
5월 30일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계열회사 간 순환출자가 형성된 대기업집단은 삼성, 현대자동차, 롯데,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등 14개 기업이다.

5월 27일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대규모 기업집단의 순환출자 형성과정과 배경> 리포트를 통해서도 롯데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롯데쇼핑→롯데카드→롯데칠성음료→롯데쇼핑’ ‘롯데쇼핑→롯데캐피탈→롯데카드→롯데칠성음료→롯데삼강→롯데역사→롯데건설→롯데제과→롯데쇼핑’ 등으로 순환출자가 이뤄졌다. 롯데는 롯데쇼핑, 롯데리아, 롯데제과 중심의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롯데의 순환출자 구조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다른 대기업의 경우 지배권 승계나 소유권 강화, 부실계열사 지원 등의 목적으로 순환출자를 한다. 하지만 롯데의 순환출자 이유는 모호하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롯데의 순환출자 사유로 증여, 계열사 지원을 위한 신규 유상증자 참여, 합병 등이라고 밝혔다. 특히 증여를 이유로 순환출자가 늘어난 사례가 50% 이상을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연구소가 순환출자 사유를 밝혀내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합병 및 증여를 이유로 순환출자가 일어나는 경우는 롯데그룹에서만 나타난다”면서 “롯데그룹 소유구조의 특징은 확인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다수의 순환출자가 존재하고, 한 계열회사의 주식을 다수의 계열회사가 가지고 있다. 실질적인 지주회사는 일본 계열사”라고 분석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롯데그룹의 최상위 회사는 호텔롯데인데,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가 19.2%, 다수의 일본계 투자회사(일본 롯데홀딩스의 계열사)가 80.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롯데가 다른 대기업에 비해 기업 현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표도 공정위가 발표했다. 5월 30일 공정위가 발표한 기업집단별 기업공개 현황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2013년 4월 1일 기준으로 삼성의 계열사는 76개인데, 이 중 기업공개가 된 계열사는 17개로 22.4%를 차지했다. 현대자동차는 57개 계열사가 있는데 이 중 10개의 계열사(17.5%), SK는 81개 계열사 중 17개 계열사(21%), LG는 61개 계열사 중 11개 계열사(17.5%)가 기업 공개가 되어 있다. 롯데는 77개 계열사가 있는데 이 중 8개의 계열사(10.4%)만이 기업 공개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룹 총수가 있는 순위 10개 대기업 중 롯데의 계열사 기업 공개 비율이 가장 낮다.

롯데 관계자 “공격적 경영 때문에 늘어”
대기업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공정위 발표를 보면 다른 대기업은 순환출자 구조가 경영에 이익이 안 되는 것으로 판단해 자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롯데만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라며 “롯데가 MB정부에서 특혜를 입은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히는데, 공정위 자료를 통해서도 이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롯데가 다른 기업에 비해 경영을 폐쇄적으로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고 설명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도 “롯데는 워낙 특이한 그룹이다. 공정위나 경제개혁연구소가 조사한 순환출자는 지분율 1% 이상일 경우에 한해 조사해서 발표한 것이다. 만일 그 이하까지 조사하면 롯데의 순환출자는 몇 개가 나올지 감이 안 잡힌다”면서 “다른 대기업과 롯데가 다른 점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순환출자를 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다. 롯데 계열사 대부분이 비상장회사라는 점에서 롯데의 기업정보를 살펴보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순환출자가 늘어난 이유는 공격적인 경영 때문이다. 2009년 수립한 롯데비전 ‘2018 아시아 TOP 10 글로벌 그룹’을 이루기 위해 인수·합병을 많이 했기 때문에 순환출자가 늘어난 것이다”면서 “롯데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일자리 창출이나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순환출자도 필요하다. 순환출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고민 중”이라고 해명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