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후위기 대응 변곡점 다가온다

미국 탄소중립 공약 내건 바이든 당선… 앞으로의 변화와 한국의 과제는

“6번째 대멸종이 찾아오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이 같은 과학자들의 경고를 한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과연 수백년 뒤의 세대는 21세기를 어떻게 정의할까?

독일 석탄화력발전소 지역의 대기가 쿨링타워에서 나오는 수증기로 덮여 있다. / 그린피스 사진제공

나는 21세기 전반을 ‘탄소중독의 시대’, 후반을 ‘탄소중립의 시대’라고 정의하겠다. 중독이란, 독성을 가진 물질이 몸속에 침투해 이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즉 이번 세기 전반은 인류 문명이 값싼 비용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화석연료를 마구 캐내 남용한 시기다. 탄소중독 경제에 몰입해 탄소를 수십년간 배출한 결과, 지구는 이상기후라는 혹독한 질병을 얻게 됐다.

세계는 뒤늦게나마 탄소중독 경제의 패악을 조금씩 깨닫고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유엔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은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탄소 배출을 절반 수준으로 감축할 것, 그리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 사회를 달성할 것’이라는 처방전을 찾기에 이르렀다.

탄소 배출 절감은 모든 국가의 단결과 협력, 연대가 절실하다. 이 때문에 나는 이달 초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봤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가 아닌 조 바이든 후보의 당선 여부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아주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요 경제 대국들의 탄소중립 선언

바이든은 대선 공약을 통해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협정에 복귀하는 것은 물론, 외교력과 무역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전 세계의 기후위기 대응을 이끌겠다고 공언해 왔다. 또 2조달러(약 2200조원)를 친환경 산업에 투자하고, 2035년까지 전력생산 부문의 탈탄소화를 달성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린피스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석탄화력발전소인 도이벤 화력발전소의 80미터짜리 굴뚝에 현수막을 달았다. / 그린피스 사진제공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이제 세계경제는 전례 없는 변곡점에 들어서게 됐다. 이미 지난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유럽연합에 이어 올해 9월엔 중국이 2060년 탄소중립을, 뒤이어 일본과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다. 여기에 미국까지 더하면, 전 세계 경제 규모의 3분의 2가 넘는 국가가 탄소중립을 지향하게 된다. 이 국가들이 내뿜는 온실가스는 세계 배출량의 절반이 넘는다. 그만큼 이들의 탄소중립 선언이 갖는 의미가 크고 무겁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변화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질까?

첫째, 모든 경제 질서가 탄소중립 경제라는 큰 개념 아래 재편될 것이다. 그 중심에는 탄소국경세가 있다. 유럽연합은 이미 2023년 도입을 목표로 탄소국경세의 시행을 예고했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유럽연합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제조된 제품에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당선인이 이끄는 미국 역시 탄소국경세 도입이 유력하다. 바이든 대선 공약집은 기후, 환경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탄소조정세나 수입 쿼터를 부과하는 방안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이 기후위기 대응을 산업성장 기회와 함께 도덕적 책무로까지 여긴다는 점, 또 당선인 인수위에서 네가지 정책 우선순위 중 하나로 기후위기를 포함했다는 점은 내년 1월 출범할 미국 행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바이든 지지자들이 11월 7일 아침 워싱턴에서 2020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했다며 축하행사를 열고 있다. / 그린피스 사진제공

둘째, 탄소중립 경제로의 전환기에 한국은 세계 일류 선도국가가 될 수도, 이류, 삼류 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다. 유명한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2028년쯤에는 화석연료 기반 산업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이에 따른 좌초자산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의 금융 싱크탱크 ‘카본트래커’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예상 좌초자산이 1060억달러(약 117조원)로 조사대상 34개국 가운데 1위라고 밝혔다. 그러나 물론 기회도 있다. 한국은 강력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이다. 풍력발전과 같은 재생에너지 설비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탄탄한 중공업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전기차 전환을 위한 완성차 및 배터리 개발·생산 역량도 세계 일류수준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촘촘히 연결할 스마트그리드망 역시 월등한 정보통신 기술을 갖춘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다. 즉 우리 사회가 탄소중립 경제로 얼마나 빠르게 나아가느냐에 따라 지금의 변곡점이 기회가 될 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셋째, 탄소중립 경제·사회 전환에 있어 ‘속도 조절’이란 말이 사라질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취임 첫날 파리협약에 재가입한 뒤, 취임 100일째가 되는 날 곧바로 전 세계 정상들과 함께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정상회담을 열겠다고 공언했다. 임기 내 전 세계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하고, 한국을 포함한 G20 국가들의 해외 고탄소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지원을 중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국이 기후위기 대응에 서두를 수밖에 없게 되는 이유다.

한국은 올해 그린뉴딜과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산화탄소 배출 전 세계 7위 국가이며, 이웃 나라 중국·일본과 나란히 해외 석탄 투자 톱3이라는 불명예를 짊어지고 있다. 이제는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하고 행동에 나설 차례다. 가장 먼저 연말에 유엔에 제출할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부터 대폭 상향해야 한다.

한국도 이제 행동에 나설 때

더 이상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냐 없냐가 논쟁의 주제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해지고 있다. 그보다는 어떻게 이 난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산업계와 노동계 등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정부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 경제로의 전환은 전쟁 같은 치열한 실천과 과감한 도전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나라도 전쟁이 발발했을 때 패배할지, 승리할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는가만을 고민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기후대전에서 전 세계 연합군이 승리하기를 기원한다.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참정권 캠페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