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제로페이는 문턱 없는 오픈 플랫폼

제로페이 운영 향후 어떻게… 4대 원칙에 동의하는 사업자는 누구나 참여 가능

제로페이는 민간의 영역에 정부가 부당하게 침범한 것일까. 민간 사업자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서 다양한 서비스와 혁신이 나올 수 있는데 정부가 들어가 생태계를 훼손하는 것일까. 헌법은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대기업과 경쟁할 때 과도한 시장원리를 적용할 경우, 약자인 이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 첫줄 세 번째)와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 첫 번째)이 3월 5일 ‘제로페이’ 모범단지인 서울 관악구 신원시장을 방문해 한 상가에서 제로페이를 이용해 물건을 사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구재이 세무사는 “과거 신용카드에 대한 정부 지원이 세수 증대와 소비 진작과 같은 정책적 목표에 있었다면 제로페이를 도입한 것은 소상공인이 어려우니 부담을 낮추자는 정책적 목표에서 시작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기업만이 시장 참여자가 아니고, 자영업자도 시장 참여자라는 점에서 정부의 지원을 시장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연내 제로페이 전담 운영법인 출범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도 “마치 제로페이가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거짓말에 불과하다”며 “재벌 대기업이 하는 신용카드 사업을 도와주면 친시장 정책이고 중소상인을 돕는 정책은 반시장 정책이냐”고 반문했다. 안 소장은 “신용카드와 지나치게 경쟁할 필요는 없고 평소 작은 돈을 신용카드로 쓰는 게 미안했던 사람들이 제로페이를 쓰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제로페이가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급여나 지역화폐와 연동되면 공동체 경제와 풀뿌리 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제로페이 사용액에 따라 포인트와 마일리지를 주고 이를 지역화폐처럼 동네 가게에서 물품을 사는 용도로 제한하면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도 중소상인들이 정착한 뒤에는 자율에 맡기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정부는 제로페이를 두고 이런 방식의 접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재 정부가 운영하는 ‘제로페이 간편결제 사업추진단’의 역할을 이어받는 제로페이 전담 운영법인을 올 가을쯤 출범시킬 예정이다. 제로페이 운영법인은 전국 단위 제로페이 서비스 확산을 위한 공동 가맹점 유치·관리는 물론 공동 QR 제작·보급, 플랫폼과 콜센터 운영권을 갖는다. 소득공제 간소화 자료를 생성하고, 새로운 결제 모델 발굴, 부가서비스 개발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공동 가맹점 관리를 해야 하는데 민간 결제사업자가 워낙 많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비영리 재단법인을 만들 계획이다”라며 “가능하면 빨리 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영리법인 설립을 두고 ‘운영권을 민간에 이양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처음부터 민·관 협력사업이었고, 지금은 제로페이 사업을 민간 결제사들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로페이가 4대 원칙에 동의하는 사업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로페이 4대 원칙은 ‘소상공인에 대한 수수료 0%대 적용’, ‘간편결제 사업자와 은행 등 누구나 참여가능한 개방형 플랫폼’, ‘새로운 기술과 수단의 구현’, ‘금융권 수준의 IT 보안기술 확보’ 등이다.

이런 원칙 하에서 새롭게 사업 참여자를 모집했고, 그 결과 지난 1월 카카오페이를 비롯해 KT, 이베이코리아, 11번가, KG이니시스, 코스콤 등 총 15개사가 신청했다.

특히 카카오페이의 참여는 제로페이의 이용자 확대에 큰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카카오페이가 가맹점도 많고 소비자에게도 익숙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카카오페이가 준비과정을 거쳐 하반기부터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는 지난해 12월 시작된 시범사업에 불참했던 터라 본사업 참여를 두고 그 배경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시범사업 당시에 우린 이미 오프라인에서 많은 가맹점을 확보하고 있어서 기존의 우리 서비스에 제로페이를 결합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4대 원칙만 따르면 개별기업의 서비스 정책에 정부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본사업 참여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 참여 기대 높아

시장에서는 제로페이에 참여한 네이버페이가 오프라인 결제시장에 빠르게 진입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네이버 관계자는 “네이버페이를 쓰는 이용자들이 오프라인에서도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던 차에 제로페이 덕에 그 기회를 잡았다”며 “네이버페이도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는 목표에서 시작한 만큼 뜻도 맞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KT와는 블록체인과 제로페이를 연결하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정부가 전통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을 비롯한 지자체 상품권 등을 블록체인 기반의 앱에서 사서 제로페이로 결제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환전을 받기 위해 은행 창구를 갈 필요도 없어지고, 가맹점은 현금으로 바로 대금을 받을 수 있다. 상품권 발행 유통비용도 대폭 절감되고 추적관리가 가능해 속칭 ‘상품권 깡’과 같은 부정유통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참여자들이 만족하는 건 아니다. 부가가치통신망사업자(VAN·밴)는 편의점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했지만 수수료율 0.1%가 너무 낮다고 보고 있다. VAN 사업자들은 포스 단말기를 빌려주고 관리하면서 수수료를 받는데, 제로페이 수수료율이 낮다보니 제로페이 결제를 중개하면서 VAN이 가져가는 수수료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 가맹점들이 요구하면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며 “공익적 측면에서 지원할 의향은 있지만 실제 가맹점의 80% 이상은 수수료 자체가 없는 형편이라 적자를 볼 상황”이라고 말했다. VAN은 연간 매출 3억원 이하의 경우 0.2%, 일반 가맹점의 경우 0.3%의 수수료를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정부가 편의성을 개선한 ‘소비자 QR 방식’ 확대를 위해 QR코드 리더기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라 반드시 나쁜 상황인 것만은 아니다. 리더기 시장가격이 2만5000원 정도인데 정부는 VAN 측과 협력해 일정 부분을 부담하고, 나머지 일부를 제로페이 가맹점이 부담하는 식으로 보급할 전망이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