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국회는 미투 폭로 청정지대인가

남성 위주의 폐쇄적·수직적 문화… 내부에서 일어난 권력형 성범죄는 침묵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9일 서울 서부지검 앞에 섰다. 비서의 ‘미투(#Metoo)’ 폭로가 있은 지 닷새 만이다. 청사 앞에 선 그는 카메라를 향해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저로 인해 상처를 입었을 국민, 도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제 아내와 아이들, 가족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국민 여러분이 저에게 주셨던 많은 사랑과 격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거듭 밝혔다.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9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검에 자진출석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안 전 지사의 성폭력 폭로가 나온 직후 여의도를 중심으로 ‘드디어 올 게 왔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성추행 폭로 이후 문화·예술계로 확산된 ‘미투’가 정치권에도 퍼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폭로, 현 국회의원 보좌관 성추행 폭로 이후 이렇다 할 폭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청정지대이기 때문일까. 당연히 아니다.

“국회는 조폭조직과 같기 때문”

국회는 현재 미투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제도개선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의원들은 앞다투어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젠더폭력대책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은 세계 여성의 날(3.8)을 맞아 당원들과 함께 ‘#WITH YOU 당신과 함께’ 팻말을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부에서 자행돼 왔던 성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현직 의원의 보좌진인 ㄱ씨는 현 상황을 두고 “국회는 조폭조직과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설령 조직 내 윗선이 잘못을 했더라도 보좌진은 문제제기를 해서도 안 되고, 외부에 문제제기를 할 경우 조직을 저버린 ‘배신자’로 취급된다는 설명이다. ㄱ씨는 “의원이 ‘보스’에 해당하고, 보좌관들이 ‘오른팔’ ‘왼팔’을 맡으면서 설령 부정한 일이 있더라도 의원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감추기에 급급하거나, 모르는 척 외면한다”고 했다.

의원실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여성을 일종의 ‘소모품’이나 ‘꽃’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ㄱ씨는 “어떤 의원실에 예쁜 비서가 들어왔다고 하면 금세 소문이 나고 몇 달 있으면 ‘내가 OO랑 잤는데 말이야…’ 식의 ‘무용담(?)이 돈다”면서 “정작 그 여성 앞에서는 정중한 척, 예의바른 척 행동하면서 온갖 성희롱·성추문이 일어난다”고 했다. 현재 국회를 떠나 사기업에서 근무 중인 ㄴ씨는 “의원님이 수행비서도 아닌 여비서를 자꾸 업무에 대동하는 일이 있었다”면서 “몇 달 뒤 그 비서가 그만뒀는데 의원실 사람들은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그 의원님은 요즘 밤잠을 못 주무셨을 것”이라고 했다.

페이스 북 국회 내 익명게시판 역할을 하고 있는 ‘여의도 옆 대나무숲’ 관리자들은 국회의 폐쇄적이고 철저히 수직적인 구조를 문제로 지적했다. 한 관리자는 “모든 문제는 국회라는 특수하고도 폐쇄적인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밝혔다. 그는 “의원은 보좌관의 인사권을, 보좌관은 비서관·비서·인턴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일반적일 것”이라며 “A의원실에서 문제가 생겨 B의원실로 이직하려고 해도 A의원실의 인사권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의원실 내에서 성폭력·성추행 등의 범죄가 발생해도 피해자가 피해사실에 대해 항의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가해자보다 하위직급인 피해자가 의원실을 떠나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의원 말 한마디에 해고되는 현실

보좌진은 형식적으로는 국회사무처 소속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인사권은 의원이 쥐고 있다. 보좌진들이 최대한 논란거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이 ‘인사권’에 있다. 민주평화당 소속의 한 비서관은 “보좌진은 의원의 손·발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의원과 합이 맞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의원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해고돼야 하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인맥과 평판 관리 역시 ‘미투’가 나오지 않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국회 여성정책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보라 민주당 비서관은 8일 열린 ‘성평등한 국회, 더 좋은 민주주의’ 토론회에서 “특채의 근거는 평판이다. 평판에서 낙오되면 이 세계에서 낙오된다”며 “이를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보좌진은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비서관은 “비서나 인턴비서 등 낮은 직급들은 보좌관이 술자리에 부르면 달려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급을 위해서라도 높은 직급에게 잘 보여야 하고, 당장 같은 방 보좌관은 아니라도 여러 사람을 만나 친분을 쌓다보면 총선 이후 의원실 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대나무숲의 또 다른 관리자는 “대부분의 국회의원 보좌진들(인턴~7·9급)은 일반적인 회사생활을 하기 어려워하거나, 생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며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정치권을 떠나는 것은 이쪽 분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선언과도 같은데 신고가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이들과 함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또 다른 관리자는 “성범죄는 기본적으로 권력범죄”라며 “위계와 권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결국 300명의 의원과 의원실에 속한 2700명의 조직원들이 있지만 미투가 정치권에서 급속도로 확산되지 않는 이유는 정치권이 깨끗해서가 아니라 폐쇄적이고 의원 중심적 조직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성폭력은 성욕을 주체하지 못 해서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여성의원을 보좌하는 남성 보좌진이 의원을 성추행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다 아래 직급만 건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강력한 위계질서 아래서는 남녀 성별조차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여성의원이 남성 보좌진에게 가하는 성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19대 국회에서 당시 여당 여성의원이 남성 보좌진과 기자들의 허벅지를 쓰다듬어 논란이 됐었지만 언론 보도라든지 공론화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국회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는 생물학적 성의 문제가 아니라 아랫사람에게는 ‘그렇게 해도 된다’는 국회의 고질적 분위기가 문제인 것입니다.”

대나무숲에 올라온 성희롱 꼬집는 글

물론 남성 위주로 짜여진 국회 조직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실제 국회 구성원의 성비만 살펴봐도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한다. 국회 인적자원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2월 현재 전체 보좌진 2632명 가운데 여성은 840명(31.9%)에 불과하다. 이 중 대다수가 9급 비서관 또는 인턴비서로 근무한다. 급수가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4급 보좌진 중 여성은 39명(6.7%), 5급은 114명(19.5%)에 불과하다. 반면 남성 4·5급은 각각 543명(93.3%), 472명(80.5%)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고위급으로 갈수록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구조에서 성폭력은 빈번할 수밖에 없다. 실제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 가운데 보좌진들의 성희롱을 꼬집는 글은 상당수를 차지한다. ‘수행인지 보좌관이신지 모르겠지만 지하 엘리베이터에서 지키고 있는 방호과 여직원들 터치 좀 하지 마세요’, ‘8층 남자화장실에서 몰카 얘기하며 국회에도 있는 거 아니냐며 깔깔대며 웃었던 남자분들… 바로 옆에 여자화장실에서도 다 들려요. 이제 일하면서도 화장실 못 가겠네요’, ‘보좌관님 사무실 직원 얼평, 몸평 심하네요. 특히 여자직원들 상대로 별별 소리 다 하시는데 그것도 성희롱인 건 아세요?’ 등의 익명글들이 올라와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 당 지도부가 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해 6·13지방선거 출마를 앞둔 여성 예비후보들을 격려했다. / 자유한국당 제공

하지만 가해자를 고발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국회 미투를 처음 시작한 민주당 비서관 ㄷ씨는 “나 다음에 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국회 내 권력관계를 지적하고 싶었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폭로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 5일 국회 소통마당 ‘국민제안’ 게시판에 ‘[# me too]용기를 내보려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2012년부터 3년간 벌어진 4급 보좌관으로부터의 성폭력을 고백했다. 가해자는 이후 채이배 의원실에서 근무하다 이번 폭로를 계기로 면직처리됐다.

성폭력 문제가 정치권으로 들어와 단순히 정쟁(政爭)의 도구로 악용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폭력 피해사실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어느 당 소속 의원실인지가 쟁점이 되는 현상이 부담돼 폭로를 꺼리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2월 26일 “우리 당 국회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공작설을 주장했다. 이후 안희정 전 지사, 정봉주 전 의원 등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자 지난 6일 “미투 운동을 좀 더 가열차게 해서 좌파들이 좀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홍 대표는 검사 출신이자 제1야당의 대표다.

이보라 비서관은 “미투 운동을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야당 등에서) 피해가 없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진보진영에서 밝혀지는 건 그나마 믿고 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같이 여기에 응답해야 한다”고 했다. ㄷ비서관도 “(폭로) 글에 일부러 가해자 이름이나 같이 일했던 의원실은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어느 정당, 어느 의원실에서 일어난 문제인지 여부보다 왜 국회에서 미투가 활발할 수 없는지를 봐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어 “내 경우 의원과 동료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폭로가 가능했다”고 했다.

제도개선과 의식전환 필요

미투 운동이 정치권에서 활발히 벌어지고, 이후 이 같은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는 제도개선과 의식 전환이 동시에 필요하다. 폭로조차 못하는 국회 내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채용 등 인사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의원실 보좌진 중 몇 명이라도 국회사무처의 추천을 받는 식으로 바꾸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여성할당제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지난 7일 토론회에서 “10차 개헌에 남녀 동수 대표성에 대한 조항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도 “4·5급 보좌진 채용 시에 여성 비율을 두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국 의회는 최근 의원과 직원 간의 성관계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의원이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가한 것으로 드러나면 사안에 따라서는 의원직을 잃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의회 행동지침을 마련했다.

한편 의원실 보좌관 성추행 파문 이후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는 지난 6일 또 다른 폭로글도 올라왔다.

‘(전략)… 얼마 전 의원님께서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며 가해자를 비난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기사를 본 날 저는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는 의원님 마지막으로 뵈었던 날이 떠오를 때마다 힘든데, 의원님은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도 없으신가 봅니다. 제가 딸 같다며 며느리 삼고 싶으시다던 의원님, 의원님은 따님분들 앞에서도 제 앞에서 그랬듯 바지를 내리시는지요. 의원님의 더러운 성욕 때문에 저희 부모님은 딸에게 더러운 말을 하는 의원님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어야만 했고…(후략).’ 현재까지 해당 게시글 당사자는 가해자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18·19대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ㄹ씨는 “안희정 전 지사를 보고 다들 충격이라고 하지만 겉으로는 선한 얼굴을 하고 여직원에게 온갖 추악한 짓을 했던 의원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초선이나 비례의원은 좀 덜할지 모르겠지만 여의도 바닥에 수십 년을 바친 사람들 중에 ‘미투’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별로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익명성 보장하는 ‘여의도 옆 대나무숲’

현재 미투 운동이 정치권으로 확산되면서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페이지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은 2016년 12월 12일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국회사무처 직원, 국회의원 보좌진, 정당 사무처 관계자 등 국회에 재직하는 모든 직원들의 이야기를 익명을 전제로 게재하는 곳이다. 대나무숲은 익명성 보장을 통해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속 이야기나 불만부터 조직적인 부정행위까지 국회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목적으로 운영된다. 운영자의 신분 역시 비밀이다. 운영진은 다만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20대 국회의원 중 어느 분의 의원실에 소속되어 있는 일개 보좌진일 뿐이며, 정세균 국회의장, 우윤근 국회사무총장(당시 총장) 측근도 아니며, 국회사무처 직원도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대나무숲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방법은 게시 요청자가 구글 독스를 통해 직원 인증을 한 후 해당 글을 보내면 운영자가 페이스북에 게시한다. 직원 인증방식은 국회 직원만 알 수 있는 특정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초기에는 페이스북 계정으로 로그인한 뒤 투고하는 시스템이었지만, 투고자의 정보가 관리자에게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지금의 방식으로 변경했다.

대나무숲은 인턴 처우문제부터 성폭력문제까지 국회 내에 만연한 부조리 공론화 유도에 목적이 있지만, 신상정보 확인이 어려워 실질적인 고소·고발은 어렵다. 이는 역으로 해석하면 투고자의 신분이 철저히 보장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운영자는 <주간경향>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투고자에 대한 고발조치가 이뤄지려면 구글 서버를 압수수색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페이지에는 날선 폭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종 연애담부터 이별 후폭풍, 선배에 대한 감사인사, 국정감사를 앞두고 서로를 격려하는 응원글 등 국회 내 직원들의 ‘말랑한’ 이야기도 다양하게 담겨 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