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민주당’의 첫 국감 막 올랐다

과거 정부의 희혹 규명에 의욕적… ‘적폐청산’의미에 대한 다양한 고민도

“○○부의 적폐는 뭐가 있을까요?”, “뭐가 적폐일까요?”

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방문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10월 12일 문재인 정부 첫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여당인 민주당은 이번 국정감사를 ‘이명박·박근혜 정부 적폐청산 국감’으로 규정했다. 통상 여당은 현 정부의 정책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지만, 현재도 전모가 다 드러나지 않은 박근혜 정부의 실정은 물론 지난 정권 어영부영 덮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의 부패와 불법행위를 규명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민주당은 지난해 정기 국감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정유라씨에 대한 이화여대의 학사특혜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 촛불시위와 탄핵여론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꼭 1년 만에 야당에서 여당 소속으로 바뀐 ‘국감의 달인’들이 화려한 국감 ‘시즌2’를 연출할 수 있을까. 국감을 준비하는 실무진들은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적폐청산’의 의미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고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국정감사 첫날인 10월 12일 밤 늦게까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건물(왼쪽)과 본관 건물에 불이 켜져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야당이었을 때가 더 쉬운 것 같다”

국회 의원회관의 한 민주당 초선의원실은 한 주 내내 오후 10시 넘도록 불이 켜져 있었다. 10월 12일 시작하는 국정감사를 준비하기 위해 추석 연휴도 당일과 전후 딱 3일간만 쉬었다. 흔한 풍경이었다. 이번 국감이 문재인 정부 들어 첫 국정감사이자 민주당으로서는 여당으로서의 첫 국정감사다. 의원실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의 부패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어마어마하다고 하지만 예술과 체육계 분야에 주로 집중돼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이나 자원외교 등 돈이 오고 가는 규모로만 따지면 비교가 안될 것입니다.” 보좌관 ㄱ씨가 설명했다. “찾으셨어요?”, “쉽지는 않습니다만 해내야죠.”, “저쪽(자유한국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그럼 어땠냐?’고 반격하고 나올 것까지 예상해서 살펴봐야지요.” 자원외교와 4대강 비리는 방산비리와 더불어 추미애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요 국감의제로 언급한 분야다. 치열한 공세 중심으로 국감을 준비하는 모습이 야당 시절과 흡사했다. 그래도 고민이 있다. “그런데 ‘적폐’라고 하면 뭔가 딱 이해하기 쉬운 잘못이어야 하는데, 그런 것에 해당하면서도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을 찾아내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면 여당이 돼서 다른 점을 실감하는 의원실 보좌관들도 있었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실 소속 ㄴ씨는 쓴웃음 띤 표정으로 “국정감사는 야당이었을 때가 더 쉬운 것 같다”고 전했다. “저희가 담당하는 부처는 ‘사자방’ 등과 거의 관련이 없고 새 정부와 함께 하는 일들이 많아요. 정책도 대부분 함께 만들었던 것들이고. 그런데 이번 국감이 적폐청산이라고 하니까 여기서도 적페를 찾아야 할 것만 같고 어렵네요.” 또 다른 재선의원실의 ㄷ씨는 “부처의 문제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야당 때처럼 질타만 할 수는 없고, 함께 개선점을 찾아 지적하는 방안으로 대정부 질의를 구성하려 한다”고 야당 시절과는 다른 점을 전했다. 또 다른 중진의원실 관계자 ㄹ씨는 “적폐 찾는 거 정말 어렵다”면사도 “대신 여당이 되니 무언가 바람직한 방안을 요구할 때 좀 더 힘이 실리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적폐보다 더 명확한 언어는 무얼까

‘적폐’가 아닌 사안은 덜 중요한 문제로 인식된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농해수위 소속의 한 의원은 “농업 문제는 워낙 관심에서 먼 대상이기도 하고 ‘적폐’의 틀에 어떻게든 맞춰야 주목을 받을 수 있으니 고민이다”라고 전했다. 어느 상임위 소속이건 ‘적폐를 찾아야 한다’는 점만큼은 절실했다. 어떤 식으로든 전 정권의 문제와 연결을 시켜야 의미 있는 의제로 여겨지는 조건이 마련된 셈이었다. ‘살충제 계란파동 때에는 공장식 축산이 농업적폐로 거론되기도 했다. 농업, 보건복지, 노동 등 사회정책 부처를 다루는 곳에서 이런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해야 했다. “대체 우리 담당 부처에는 뭐가 적폐일까요?”

적폐는 대체 무엇일까.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정감사 이틀 전인 10일 국회 상황실 개소식에서 ‘적폐청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특정 정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힘과 권력을 가진 쪽으로 삐뚤어진 시스템을 바로잡아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자는 것이다.” 정부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기업 불공정거래와 담합의혹, 언론 공정성 침해 등을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적폐로 거론했다. 적폐는 원래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측근의 국정농단과 정경유착 사실이 밝혀지면서 박근혜 정권과 한국당이야말로 ‘적폐세력’으로 몰렸다. 한국당은 당 차원의 ‘정치보복대책 특별위원회’를 꾸리는 등 현재 여당의 ‘적폐청산’이라는 프레임에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며 맞서고 있다. 반면 탈원전 이슈 등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신적폐’라 부르며 ‘적폐’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적폐’가 ‘나쁜 것 일반’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적폐란 말의 뜻이 처음부터 불분명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 때문에 ‘적폐’란 말의 사용에 대해 조심스러운 고민이 여당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최운열 의원은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 규정하는 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고쳐지지 않으면 선진사회로 갈 수 없다”면서도 “‘적폐청산’이라는 용어가 조금 과거 회귀적 어휘이다. 미래지향적 어휘로 대체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의원은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정확한 표현과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 중 어느 것이 효과적일지는 늘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적폐청산’의 성공을 위해 ‘적폐’보다 더 명확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이대승 불평등과 시민성 연구소장(<개념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의 저자)은 ‘적폐’와 ‘갑질’을 한국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잘못 활용되고 있는 언어라고 지적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언어다. “교수의 대학원생에 대한 인권침해 행위, 군 장교의 공관병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가맹본사의 가맹점에 대한 부당계약행위 등이 모두 ‘갑질’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가 아니라 ‘강자’를 의미하는 ‘갑’의 행위라는 점만 지목된다. 갑의 비정상에 대한 공분은 크게 일으키지만 정작 무엇이 문제이고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적폐도 마찬가지다.” 이번 국감의 주된 이슈가 되는 군 기무사의 정치개입, 사법부 전산망 해킹, 시민감시 등은 대표적 ‘적폐’로 거론된다. 본질은 군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고 헌법의 원리마저 침해한 중대한 사안이다. 위헌행위, 불법행위, 군의 정치중립성 의무 위반행위 등이 ‘민폐’, ‘폐단’ 등과 같은 무게감을 지니는 어휘로 전달돼 오히려 사안의 중대성을 떨어뜨리는 셈이다.

박 소장은 “적폐는 그냥 정치적 경쟁자를 공격하기 위한 어휘이므로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적폐라고 공격하는 양상으로 흐르게 된다”며 “위헌, 불법, 정치중립성 위반이라고 해야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막 시작한 국정감사에서 적폐를 찾아 헤매는 대신 정확한 문제점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야 ‘청산’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감이 막 시작됐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h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