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민심이 차린 밥상, 야당이 엎을래?

야권 ‘3당3색’ 대권주자 ‘7인7색’ 미묘한 입장 차

3당3색, 7인7색.

야권 3당의 입장과 야권 대선주자 7인의 입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계속 엇갈리고 있다.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국민의당은 국민의당대로, 정의당은 정의당대로 각각의 입장이 달랐다. 여기에다 문재인·안철수·손학규·박원순·김부겸·안희정·이재명 예비 대권주자의 입장 역시 조금씩 달랐다. 특히 이들 대선주자는 자신이 속한 당의 입장과도 달라 미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11월 14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청와대와 단독 영수회담을 취소하기로 하면서 야권은 오랜만에 한 줄에 나란히 설 기회를 마련했다. 이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 당론으로 채택됐다. 이때까지 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고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전권을 이양해야 한다는 게 당론이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보다 한 걸음 늦게 ‘즉각 퇴진’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11월 1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대회에서 추미애 대표(오른쪽부터), 우상호 원내대표, 문재인 전 대표, 김두관 의원, 김부겸 의원 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의 오락가락 행보 논란

민주당은 우상호 원내대표의 전략대로 단계별 퇴진을 외쳐 왔다. 하지만 11월 12일 촛불집회에서 100만명의 인원(경찰 추산 25만명)이 결집하면서 대통령 퇴진 요구의 민심을 받아들였다. 여기에다 추 대표가 영수회담을 할 경우 민주당의 입장을 명확히 정리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서둘러 ‘즉각 퇴진’ 입장을 당론으로 정했다. 이날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늦었지만 대통령 퇴진운동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환영한다”고 썼다.

이날 아침 박원순 서울시장은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당내 최대 세력인 문재인 전 대표가 입장을 확실히 정하지 않고 사실 그동안 입장이 계속 바뀌어 왔다”면서 “이렇게 좌고우면하고 있으니까,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민주당도 마찬가지로 그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데에는 민주당에서 ‘대세 후보’로 평가받는 문 전 대표의 행보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직후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했던 문 전 대표는 ‘갈 지’ 자 행보를 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자회견을 한 11월 15일에야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 즉각 퇴진 대열에 합류했다. 친노 측 한 관계자는 “야권이 하나의 이슈, 하나의 입장이 된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의 중대결심 발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야권에 존재하고 있다. 비노 진영의 한 의원은 “중대결심이라고 해서 아주 큰 결심인 줄 알았다”면서 “앞으로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대결심이 결국 야권의 다른 당과 다른 대권주자들이 미리 도달했던 결론에 불과했다는 비판이었다.

문 전 대표의 지각 도착으로 11월 15일에서야 야3당과 야권 대권주자들은 ‘즉각 퇴진’이라는 대열 앞에 나란히 서게 됐다. ‘즉각 퇴진-과도내각-조기 대선’이라는 퇴진 프로그램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이미 6월 조기 대선설까지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이후에도 조금씩 미묘한 차가 드러나기도 했다. 문 전 대표는 15일 기자회견에서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지역까지 함께 하는 비상기구를 통해 머리를 맞대고 퇴진운동의 전 국민적 확산을 논의하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를 포함한 비상기구를 통해 향후 행동을 모색해나가겠다는 전략을 밝힌 것이다.

국민의당은 민주당 측의 전략과 약간 다르다. 국민의당은 시민단체의 포함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비상기구의 구성에 반대입장을 보였다. 안철수 전 대표 측도 정치지도자들의 모임에 관심을 가질 뿐 시민단체와의 결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한때 정의당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원샷 경선’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원샷 경선은 야권 단일화 운동의 일환으로, 야권의 모든 주자들이 각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모두 경선에 참여해 단일 야권 후보를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시민단체를 아우른 비상기구가 박근혜 퇴진을 이끌어내면 이 비상기구의 힘이 커지고, 야권 단일화에 대한 압박이 고스란히 국민의당을 압박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전 대표에게 지지율에서 밀리는 안철수 전 대표 측으로서는 경계해야 할 시나리오다.

총리 임명에도 야권은 엇박자를 나타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우선 총리부터 국회에서 추천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대통령이 어떤 형식으로든 퇴진할 수 있는 상황에서 황교안 총리 대신 새로운 총리를 우선적으로 야권에서 추천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박 비대위원장은 11월 1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천정배·안철수 의원과 이야기를 해보니 ‘선 총리 임명, 후 탄핵’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입장이 ‘선 총리 임명’임을 강조한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의당과는 달리 실리보다 명분 쪽을 선택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11월 1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당이 총리 추천을 위한 영수회담을 하자고 했으나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물러나기를 거부하는 대통령과 총리 선임을 의논할 수는 없다”면서 “대통령의 사임 거부가 확실한 만큼 19일 집회 이후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기구 구성, 총리 임명에도 차이

정의당 역시 민주당과 거의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러나야 할 친박 지도부와 총리 인선을 협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국회에서의 탄핵에 방점을 찍고 있다.

야권에서는 광장에서의 대통령 퇴진운동과 의회 안에서 대통령 탄핵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의 경우 탄핵 절차에 들어가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야당의 공조도 필수지만 여당 내 비박(비박근혜) 의원들의 동참을 이끌어내야 탄핵소추 정족수인 200명에 이를 수 있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탄핵 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여당 내 일부 세력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개헌이나 정계개편 논의가 촉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대선주자 측 역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면 새누리당은 분당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런 과정에서 정계개편이나 개헌 등의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야권은 국정조사를 통해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와는 다른 루트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다. 17일 국정조사 특위에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도 진행되는 만큼 국정조사 특위에서 성과를 내려면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도 면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포부를 나타냈다.

향후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 그리고 국정조사를 통해 중대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정국은 새로운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야권에서는 어느 때보다 야권 공조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물론 조기 대선을 하게 되면 문재인·안철수 전 대표가 유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고 그런 계산이 드러나는 순간 거센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지금 야권은 오로지 민심의 뜻을 정치에 반영하는 공적 소명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