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사드 냉전’ 한국 발언권 약해졌다

기로에 선 박근혜 정부의 외교력,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악화 불가피

한동안 박근혜 대통령에게 외교는 점수를 따는 과목과도 같았다. 비록 국내에 큰일이 터질 때마다 전용기 앞에서 웃는 낯으로 손을 흔든다는 비판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정국이 혼란해질 때도 좀처럼 30%선 아래로는 떨어지지 않는 굳건한 국정지지율에는 박 대통령의 외교에 대한 평가가 한몫을 했다. 그런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가장 험난한 시험대 앞에 섰다. 겉으로만 봤을 때 당장은 중국, 그리고 그 다음으로 러시아가 외교의 난관에서 마주하게 될 나라들이다. 하지만 그쯤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선을 앞둔 미국과 ‘평화헌법’ 개헌선 이상을 확보한 아베 정권의 일본까지, 다가올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면 남은 임기 동안의 외교문제는 갈수록 풀기 힘든 고차방정식이 될 소지가 크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는 역대 가장 좋은 수준으로 불릴 정도였다. 지난해 9월 박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후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때만 해도 청와대와 정부는 한·중 양국이 새로운 밀월관계를 열어가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대중 외교력을 자랑할 기회는 그리 오래 주어지지 못했다. 올해 초부터 사드의 국내 배치 가능성을 시사하는 한·미 당국의 발표가 잇따르면서 중국도 사드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사드 국내 배치가 결정됐다는 사실이 기습적으로 발표되면서 ‘강렬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라는 입장을 밝힌 중국은 물론 러시아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아직 온탕이라고 생각했던 중국·러시아와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냉탕으로 변해버린 셈이다.

중국과 밀월관계 더 이상 기대 어려워
문제는 한국이 ‘미국·일본 대 중국·러시아’로 나뉘는 대결구도의 한 축을 선택했다는 정도로 그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이 정권 출범 초기부터 스스로 내걸었던 3대 외교전략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모두를 기초부터 뒤흔드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외교·통일정책의 출발점으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서 통일 기반을 구축하려는 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취지와는 달리 현재로서는 실패한 정책의 전형이 되고 말았다. 이전 이명박 정부부터 이어진 대북 강경기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데다, 개성공단 폐쇄와 북한의 연이은 핵개발 움직임으로 남북 사이의 대화국면이 조성될 여지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7월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정부의 대응과 대책을 묻는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남북 간의 적대적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변국, 특히 중국의 움직임이 어느 나라보다도 필요했지만 이젠 기대하기 어려운 양상이다. 올해 2월부터 진행된 개성공단 폐쇄 과정에서도 중국은 남북 간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맡지 않았다. 반면 같은 기간 정부가 주한미군과 사드 배치를 두고 저울질하는 양상이 전해지자 중국은 즉각 시진핑 주석의 ‘2개 불능론’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과 함께 사드 한반도 배치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이 정부가 주도하려던 대북제재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해온 것은 아니었다. 일방적인 대북 압박 방침은 피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대북제재에는 동참하기도 했다. 중국으로서는 정부가 원하는 대북 압박을 강화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사드 배치를 그만둬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결국 중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높여 북한의 무력도발과 핵개발을 저지시키겠다는 정부의 당초 구상은 차질을 빚게 됐다. 남북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이어 동북아시아와 유라시아대륙 전체로 연결되는 국제공조 및 협력을 표방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현실적으로 벽에 부딪힌 것이다. 대북 대화국면 조성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반대급부로 대북 압박을 시도하는 전략은 중국의 공조 이탈로 반쪽짜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비해 북한은 오히려 미국과 일본에 맞서는 중국의 대결구도에 필요한 참여자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사드가 불러온 동북아의 신냉전 역풍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 한반도 배치가 자국의 군사적 상황에 위협이 된다는 공통의 인식으로 2월의 독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별도 양자회담을 갖기도 했다. 당시 논의된 주제가 사드 배치 문제와 함께 대북제재 수준에 관한 논의였음을 감안하면 중국과 러시아에 북한이 결집한 새로운 냉전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벽에 부딪혀
사드 국내 배치가 북핵 위협을 방어하는 주요 방책이라는 정부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원론적이고 일차적으로 볼 때 사드 배치는 주한미군의 자체적 방어 필요에 따른 조치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당사국인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는 데 미온적으로 나온 반면, 한국 정부는 결국 사드 배치에 따른 외교·경제적 부담을 모두 끌어안고 가게 된 셈이다. 국내의 정치적 반발은 물론 주변국의 외교적 반발까지 고려했을 정부가 이렇게 부담이 큰 조치를 단시일 안에 내린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정부가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더 이상 정부가 바라는 수준의 강력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대북제재 및 압박 공조가 깨질 수 있음에도 사드 배치를 강행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민생부분과 관련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북한과 교역을 지속, 방조한 것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북제재의 강화가 북한의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정부의 관측이 현실에서는 들어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러시아·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고 교수는 북한과 가까운 중국 동북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인들이 “제재 전에는 북한으로 들어가는 트럭이 하루 최대 300대 정도였고, 지금도 하루 130대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며 “생필품과 관련된 교역은 지금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독자적인 대북제재 조치에는 들어가지 않고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조치만 취하고 있다는 점 역시 한·중 간의 시각차가 드러나는 부분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석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자제재로는 중국이 참여한다고 해도 북한에 치명적이지는 않다”며 “결국 다자제재보다 강한 ‘플러스 알파’ 조치가 필요한데, 유엔 제재는 인도주의 분야는 제외하는 등 ‘마이너스 알파’의 형태”라고 말했다. 즉 현재의 상황대로 대북제재를 이어가더라도 북한의 군사행동을 저지시키는 것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진전된 협력도 기대하기 어려워진 만큼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 고 교수의 분석이다.

북한과의 관계가 강경 일변도로 전환된 상황에서 사드 배치라는 초강수까지 둔 만큼 중국과 당장 외교관계를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박 대통령은 7월 15일부터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리는 제11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참석을 위해 출국했지만 같은 회의에 참석하는 중국 리커창 국무원 총리와의 정상회담 일정은 잡혀 있지 않다. 외교부 관계자는 “일단 중국으로서는 남중국해 영유권에 관한 판결 문제에 더 큰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한·중 간의 사드 관련 논의는 소강된 냉각기를 거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은 “생각보다 정부가 서두르지 않는 것은 (대중관계에서)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나 마찰이 즉각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며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중국과 대화할 기회는 오겠지만 그것이 꼭 관계개선으로 이어지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운신의 폭 좁아져 ‘을’의 위치 우려
냉전시대의 대결구도를 벗어나 동북아 평화체제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현 정부의 외교전략이 다시 미국과 일본과의 긴밀한 관계를 지향하는 쪽으로 선회했다고 해서 그 방향이 적절한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사드 배치가 미국의 이해관계와 깊이 얽혀 있는 문제이지만 정작 미국이 올해 대선 이후 한반도 정책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형편이다. 11월에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군사·안보 분야의 신고립주의가 미국의 새로운 기조로 자리잡을 수 있다. 주한미군의 국내 주둔비용을 포함한 다방면의 문제가 새롭게 거론되면 자칫 사드 배치 발표 당시의 양국 간의 합의는 효력이 없어질 수도 있다.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돼도 무역과 외교 등 한·미관계의 기본적 방향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임은 미국 민주당의 최근 정책 최종안을 봐도 예상할 수 있다.

한·일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아베 정권이 7월 10일 시행된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는 선의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평화헌법’으로 불리게 해준 일본 자위대의 ‘전수방위’ 조항 등이 개정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아베 총리의 임기인 2018년 9월까지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한·일 양국 모두에서 국가주의적 여론이 득세할 소지도 높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보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반면에,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과 그에 상응하는 관계를 지속해가리라고 보기 힘든 외교적 불안정성이 더 커진 상황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드 배치를 계기로 한국의 외교적 발언권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미·일 대 중·러’의 대결구도가 굳어지면 운신의 폭이 좁아진 한국은 상대편인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같은 진영인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을’의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협력이 봉쇄됨에 따라 북한의 핵문제를 비롯한 대북제재 논의에서도 한국 정부는 주도권을 잃고 최악의 경우 중국·러시아와의 무역 부진 등으로 경제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사드 배치 결정과 지역, 시기 등이 한번에 발표되지 않은 사실이 여러 상황을 의심하게 한다”며 “그 중에서도 이번 결정에 미국의 압력이 강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막다른 처지에 몰렸지만 그래도 중국과 러시아와의 대화 범위를 넓히려는 외교적 노력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유환 교수는 “군사·안보 위주의 끝장게임을 지속하기보다는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을 찾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