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우리 싸움은 반미 아닌 생존 투쟁”

미군부대 잔류 결사반대 나선 동두천시 르포…

“미군 2300명이 그 넓은 땅 독차지하는 건 말도 안 돼”

경기 동두천시는 특이한 도시다. 시 전체의 절반이 사실상 미군 땅이다. 미군 공여지가 시 전체면적(95.68㎢)의 42%(40.63㎢)에 달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 60여년 동안 이 땅을 미군에 무상으로 임대해 오고 있다.

미군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부터 이 지역에 주둔해 왔다. 미군의 주력부대인 미 보병 2사단이 진주하면서 동두천은 미군을 상대로 먹고사는 다양한 직업이 생겨났다. 하지만 외부인들이 동두천을 보는 시선은 따가웠다. 시민들은 기지촌이라는 오명을 들어가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정부 2016년 철수 약속 깨고 잔류 결정
“사실 동두천 하면 미군과 양공주, 블랙마켓(미군 물품을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왔습니다. 외부인들은 동두천을 성적으로 문란하고 지저분한 지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 부모들은 딸을 시집보낼 때 동두천에 산다고 하지 않고 인근의 양주나 파주에 산다고 상대편 가족을 속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동두천 시민)

동두천시 보산동에 위치하고 있는 미군부대 ‘캠프 케이시’. | 권순철 기자

미군이 지역경제에 일익을 담당하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미군부대의 존재가 지역의 발전을 가로막는 측면도 적지 않았다. 우선 군사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지역개발이 금지됐다.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수입원인 재산세·주민세·농지세 등 세금을 거둬들이지도 못했다. 경기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60여년간 미군 주둔으로 인해 동두천시가 입은 경제적 피해액은 1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또 2012∼2015년 동안 재산세 손실만 약 322억원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뚜렷한 수입원이 없다 보니 동두천시의 재정자립도는 20% 정도로 전국 최하위권이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시민들이 견뎌온 것은 2016년까지 미군이 완전히 철수한다는 한·미 당국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2002년 3월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협정을 맺고 동두천의 미군을 2016년까지 평택으로 이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동두천시는 미군이 나가는 것을 전제로 미군기지 땅 개발을 위한 조직(공여지개발과)을 신설하는 등 신도시 개발계획에 들떠 있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미군부대인 캠프 케이시(14.15㎢)와 캠프 호비(14.05㎢)를 합치면 무려 28.20㎢에 달한다. 자산가치만 1조2000억원이다. 캠프 케이시는 교통여건이 좋고 대부분 평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개발가치가 더욱 크다. 특히 미군부대 안에 있는 운동장, 기숙사, 체육관 등 각종 시설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대학을 유치하기 위한 좋은 조건도 갖추고 있다.

동두천시는 반환된 땅에 산업단지 조성, 대학 유치, 세계평화공원 조성, 미군기지를 테마로 하는 관광지 설립 등의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기대는 지난 10월 23일 한순간에 무너졌다. 한·미 양국이 이 지역에 주한미군 2사단의 210화력여단(2300여명)을 잔류시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동두천 발전종합계획도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미군 잔류 결정에 대부분의 동두천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시민들은 시장과 시의회, 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동두천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를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정부에 그동안 희생해왔던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책위는 미군부대 앞에서의 시위 등 강도 높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오세창 동두천 시장이 동두천시청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권순철 기자

시청에서 만난 오세창 동두천 시장은 “정부가 사전에 당사자인 동두천시에는 한 마디 통보도 없이 편의대로 미군 잔류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황당하고 배신감을 느낀다”며 “동두천 시민들은 이번 기회에 지난 60여년 동안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받고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두천 시내 곳곳에는 ‘동두천을 무시하고 미군 잔류 결정한 국방부를 규탄한다’, ‘동두천 지원 없는 미군 잔류 절대 반대’ 등 정부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60년간 시민들 희생, 정당한 권리 찾을 것”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가 있는 보산동과 광암동은 오히려 미군부대가 애물단지가 됐다. 캠프 케이시 맞은편에 있는 보산동 상가에는 미군을 위한 외국인 관광특구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은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술과 음료수를 파는 클럽 몇 개와 옷가게 두서너 곳만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한때 이 지역에는 300여개의 상가가 있었고, 주말이면 불야성을 이룰 만큼 미군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미군의 빈 자리를 필리핀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끔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보산동 상가는 지난 2003년 이후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이 지역의 미군을 빼서 이라크에 투입한 게 치명타가 됐다. 과거 2만명이 넘던 미군은 지금은 5000여명으로 줄었다. 미군에 의존해 살아왔던 보산동 상가 주민들은 누구보다 착잡하다. 한 상인은 “지하철이 서울에서 소요산까지 운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있는 미군들도 지하철을 타고 이태원이나 홍대 등으로 쇼핑을 가는 경우가 많다”며 “보산동 상인들은 영세업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캠프 호비의 정문 앞에 있었던 광암동 지역 상권은 아예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에는 미군 가족들이 이 지역에서 집을 얻어 살며 소비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도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미군기지와 인접해 있는 지역 주민들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부대 근처에서는 보안상 이유로 건물도 2층 이상은 지을 수 없었다. 조상의 묘가 미군부대 안에 있지만 성묘조차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다. 광암동의 한 주민은 “미군부대 안에 묘가 있을 경우 부대 안으로 들어가려면 미리 허락을 받아서 들어가야 했다”며 “미군부대 안이 워낙 넓어서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길을 잃어버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동두천 시민들은 모두 “우리의 투쟁은 반미가 아니라 생존권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미군부대 땅을 전부 돌려받을 수 없다면 일부라도 돌려받기를 원했다. 정부 주도로 반환된 땅에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서 새 도시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 시민은 “고작 2300여명을 주둔시키기 위해 그 넓은 땅을 미군이 모두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미군이 계속 주둔한다고 해도 캠프 케이시만이라도 우선 돌려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두천/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