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새누리당의 협동조합 딜레마

대안경제 모델로 정치권 핵심 어젠다로 떠오른 협동조합

야권 주도 속에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새누리당

“격세지감이죠.”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협동조합 열풍에 대해 손낙구 보좌관(민주당 최원식 의원실)이 신기하다며 내놓은 말이다.

손 보좌관은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보좌관으로 있던 지난 2011년 손 대표가 대표 발의한 협동조합기본법을 주도적으로 준비했었다. 당시만 해도 정치권은 협동조합에 대해 무관심 그 자체였다.

“그때 협동조합 운동을 하던 분들이 기본법 제정을 위해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다들 관심이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기본법이 통과되자 그 자체를 기적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지요.”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들에게 아젠다 선점당해
기본법이 통과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상전벽해가 일어났다. 협동조합이 정치권에서 앞다투어 선점하려고 하는 주요 어젠다로 부상한 것이다. 올해 들어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협동조합을 주제로 한 토론회나 포럼 등이 자주 개최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이이재 의원, 유승우 의원, 길정우 의원이 공동으로 협동조합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 의원모임인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도 협동조합을 다룰 예정이다. 경실모는 7월부터 노동을 주제로 모임을 이어갈 예정인데,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고용의 관점에서 협동조합을 다루기로 했다.

지난해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2 협동조합 난장 한마당 및 세계협동조합의 해 기념식’. | 연합뉴스

민주당에서는 김기준 의원, 김현미 의원 등이 중심이 된 ‘협동조합 활성화 포럼’이 지난 5월 발족했다. 이들은 매달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협동조합 관련 법안을 준비 중에 있다. 특히 야권에서는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문재인 의원이나 안철수 의원이 협동조합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문재인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협동조합 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에는 민주당 김성주 의원과 공동으로 협동조합 토론회를 개최했으며, 최근에는 협동조합과 관련해 법안 발의를 검토 중이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협동조합은 두 바퀴 경제의 큰 축”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협동조합을 경제민주화와 혁신경제를 이끌 추진동력으로 언급한 것이다. 안 의원은 6월 13일 민주당 이학영 의원, 정호준 의원과 함께 협동조합과 밀접한 사회적 경제에 관한 토론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민주당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향후 10년 안에 서울시내 협동조합을 8000개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협동조합이 양극화 시대의 대안 경제모델로서 야권의 어젠다로 자리잡은 셈이다.

야권과 달리 새누리당 내에서는 협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소 복잡하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협동조합을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이이재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 의원은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협동조합을 좌파들의 전유물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면서도 “오히려 협동조합이야말로 두레라든지 품앗이라든지 전통사회에 있었던 부분과 맞닿아 있어 우파에서 성공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협동조합기본법에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법안만이 아니라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의 법안도 들어가 있다고 말한다. 협동조합기본법의 탄생에 새누리당의 공과 몫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셈이다.

이 의원은 아예 협동조합을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는 보수의 프레임으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그는 “새마을운동이 산업화 시대에 지역사회 발전에 주력하지 않았느냐”면서 “고도성장시대에 협동조합 모델은 과거 새마을운동처럼 지역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제2의 새마을운동’ 보수 프레임 전환 시도도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 박승옥 대표는 “한국의 새누리당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보수당이 강력하게 펼치고 있는 것이 공동체 정책이고, 그 중심에는 협동조합이 있다”고 말했다. 보수와 진보의 잣대로 협동조합을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2010년 영국 정권교체기에 보수당과 자유민주당 연립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협동조합을 내세운 바 있다. 보수당 연립정부는 공공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지역사회 문제나 주택 및 교육 등의 공공서비스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을 키워나가 민간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이이재 의원은 “협동조합 활성화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진보 쪽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념적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보수든 진보든 누구에게나 똑같은 법적 조건이 갖춰져 있는 만큼 우리가 더 잘 활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협동조합의 보수 영역론을 강조하지만 새누리당의 전반적인 정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한 방편으로서 협동조합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주도권을 야권에 빼앗긴 게 걸린다. 자칫하다가 야권의 어젠다만 키워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일부 당협위원장들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에 대한 위기의식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지역의 당협위원회는 당협위원장 1인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만약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다수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면 1인 중심의 조직이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으로선 삼키자니 쓰고 뱉자니 아까운 협동조합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 6월 12일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의 국회 대정부 질문을 보면 협동조합 열풍에 대한 여권의 경계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김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차기 시장 임기 만료 시한인 2019년까지 8000개 협동조합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며 “협동조합이 다른 목적으로 결성돼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협동조합 활성화 정책으로 수혜를 입은 주민들이 야권 지지세력이 되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해 일찌감치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현행법상 협동조합은 공직선거에 관여할 수 없게 돼 있는데도 새누리당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협동조합 열풍에 내재돼 있는 정치적 파괴력이 간단치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협동조합에 관심이 있거나 협동조합을 만드는 구성원들을 들여다볼 때 새누리당으로서는 현실적인 괴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새누리당의 주요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부유층, 기득권층보다는 서민층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지역에서 기득권 있고, 돈 있고,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 협동조합을 할 필요가 없다”며 “새누리당에서는 협동조합의 취지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야권처럼 치고 나갈 수만은 없는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