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남부권 신공항’ 서둘러 없던 일로

새누리당, 부산 민심 악화되자 총선 공약서 제외

2월 16일 국회 기자실. 새누리당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국회 기자실에 들어섰다. 이 의장은 “정책위의 공약 검토 회의 결과 총선공약개발본부 산하 국토균형발전팀에서 검토했던 신공항 관련 공약은 중앙당에서 제시하지 않기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을 또 뒤집어버릴 뻔했던 새누리당의 ‘남부권 신공항 건설’ 공약이 4월 총선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되는 순간이었다. 이 의장은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상의했느냐’는 물음에 “동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2월 9일 박 비대위원장의 발언에서 비롯됐던 신공항 논란이 일주일 만에 봉합됐다. 이번 논란은 영남권에서 신공항의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깨닫게 하는 해프닝으로 남게 됐다.

16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사단은 지역언론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일어났다. 박 비대위원장은 남부권 신공항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남부권 신공항은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인데 못 지켜 굉장히 죄송하다”며 “이번 선거에서 약속을 드리고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남부권’ 명칭에 부산여론 화들짝
부산이 화들짝 놀란 것은 ‘남부권’이라는 명칭 때문이었다. 남부권이라고 하면 부산·대구를 비롯, 호남과 충청 이남을 아우르는 의미다. 이들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공항을 이용할 수 있는 거리라면 부산 가덕도는 제외될 수 있다. 기존 신공항에는 ‘동남권’이 붙어 있었다.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이 사용하는 공항이라는 의미다. 그러면 부산도 무난하다.

부산 여론이 악화되자 박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명칭에 있어 특정지역을 얘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부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유기준 부산시당위원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밝혔다. 황영철 대변인은 “앞으로는 남부권 동남권 등을 붙이지 않고 그냥 신공항이라 부르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악화된 부산 민심은 쉽게 진화되지 않았다. 부산 시민단체와 부산시는 “아예 총선 공약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미적대던 부산 의원들도 당 지도부를 찾아 총선 공약 제외를 요구했다.

박 비대위원장의 언급으로 촉발되긴 했지만 남부권 신공항 건설은 지난해 중순부터 대구·경북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이 준비해온 총선 이슈였다. 지난해 7월 대구 지역구 의원들은 김범일 대구시장과 서울시내에서 비공식 간담회를 갖고 영남권 신공항을 남부권 신공항으로 바꾸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대구지역 일간지인 매일신문이 보도했다. 특히 유승민 대구시당위원장은 간담회 직후 “밀양에 신공항을 유치하면 광주, 대전, 전남, 전북까지 2000만명이 넘는 수요가 예상된다”며 “영남권 신공항이 아닌 남부권 신공항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략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간담회에는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참석했다.

대구·경북지역 3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남부권 신공항 범시·도민 재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새누리당에 총선 공약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해 3월 24일,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가 부산 가덕도에서 현장실사를 하고 있다. 다음날에는 경남 밀양을 실사했다. 두 곳 모두 경제성이 없다는 최종 판단을 받았다. | 연합뉴스

부산 인근에 신공항을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는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까지 거슬러간다. 부산시는 20여년 전인 1990년대 초부터 신공항을 꿈꿔 왔다. 군사공항을 겸한 김해공항은 애초에 확장에 한계가 있는 공항이었다. 또 김해공항은 부산의 강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기도 했다. 때문에 신항만 개발과 발맞춰 신공항을 만들자는 구상이 오래 전부터 나왔다.

초기 구상은 동남권보다는 호남도 같이 아우르는 남부권이 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이던 2003년 1월 부산상공회의소를 방문해 “전문가들에게 시켜 (남부권 신공항의) 적당한 위치를 찾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부산지역 인사들이 “영·호남 등 남부권의 항공 수요 증가에 대처하고 대륙횡단 철도의 기·종점 역할 및 국토균형 발전을 위해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 건설이 필요하다”고 건의한 데 대한 화답이었다.
　

신공항 건설은 20여년전부터 구상
노 당선자는 “해양부 장관 시절 부산시와 함께 ‘바다에 뜨는 공항’ 건설을 검토해 현재 부산시와 해양부에서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 수준까지 못되면 매립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므로 바다와 육지에서 적당한 위치를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2000년 중반 참여정부의 국토균형발전론과 맞물려 영호남이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이 부각됐다. 일각에서는 영호남 7개 시·도를 묶은 ‘섬진강특별자치도’를 만들자는 주장도 나왔다. 남부권 신공항은 탄력을 받는 듯했다.

부산발전연구원은 ‘남부권 신국제공항 건설 타당성 검토’(2001년), ‘남부권 신국제공항 건설의 추진방향’(2003년) 등의 보고서를 잇달아 쏟아냈다. ‘국가균형발전과 남부권 신공항건설’(2006년·미래한국재단) 등 당시 대부분의 보고서는 ‘남부권 신공항’에 주목했다.

참여정부에서 남부권 신공항을 결론내지 못하면서 기류가 바뀐다. 대구·경북으로 정권교체가 유력해진 2007년에는 남부권 신공항 대신 동남권 신공항이 부각된다. 호남 인구로는 수요를 맞추기 힘든 데다 새로운 권력인 대구를 끌어들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신공항 백지화가 발표된 다음날인 지난해 3월 31일, ‘가덕도 신공항 유치 범시민 비상대책위원회’가 부산시청 앞에서 신공항 백지화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때부터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 대한 경남의 대응전략’(2007년 경남발전연구원) 등 ‘동남권 신공항’ 보고서가 쏟아졌다. ‘국토균형발전과 동남권 신공항 개발’(2007년 부산발전연구원), ‘동남권 신공항 개발의 타당성 및 입지조사 연구’(2009년 국토해양부) 등도 뒤이어 나왔다.

부산으로서는 영남권을 끌어들이면 공항 건설의 꿈이 한층 쉽게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다. 내륙인 대구·경북은 별다른 입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대구·경북은 영천을 내세웠다. 경북 내륙에서 남해에 접한 가덕도는 너무 멀다는 이유였다. 또 10조원 이상 투입되는 인프라를 부산·경남에 헌납할 이유가 없었다.
　

논란 언제라도 불거질 ‘뜨거운 감자’
부산과 대구의 지루한 싸움이 시작됐다. 2009년 국토해양부는 가덕도와 밀양, 영천 등을 1차 후보지로 압축했다. 최종 후보지는 가덕도와 밀양이 선정됐다.

하지만 정부는 동남권 신공항이 경제성이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린다. 두 후보지 모두 100점 만점에 커트라인인 50점도 받지 못했다. 밀양은 27개 산봉우리를 깎아야 했다. 가덕도는 평균 수심 19m인 바다를 매립해야 했다. 수요예측에서도 두 공항은 100점 만점에 40점을 넘지 못했다.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적자공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과 대구는 이 같은 정부의 경제성 평가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천공항처럼 신공항이 얻을 외국인 환승수요를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급속한 성장을 하면서 환승객 수요가 급증하는 점을 고려하면 신공항의 경제성은 더욱 높아진다.

실제 영남권 항공수요는 정부 예측치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제선 항공여객은 전년 대비 6.5% 증가했지만 김해공항은 전년보다 14.5%나 늘어났다. 국토부는 지난해 김해공항 수요가 627만명이 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제로는 875만명이 사용했다.

서둘러 덮긴 했지만 신공항 논란은 언제고 불거질 수 있다. 이주영 의장은 “중앙당 차원에서는 공약으로 내놓지 않겠지만 지역 차원에서 시·도당이나 개별 의원이 자율적으로 얘기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당이나 대구시당이 지역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대구는 신공항을 경남 밀양에, 부산은 가덕도에 건설하겠다고 약속하면 지역 대결의 골은 더 깊어지게 된다.

부산시는 신공항 건설보다는 김해공항 가덕 이전으로 전략을 바꾼 상태다. 역내에 있는 공항이전 문제인 만큼 다른 지역은 간섭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대구·경북 정치권에서 제기한 문제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김해공항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신공항 건설 요구가 있을 테니까 당분간은 김해공항 활성화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