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북한정부 직접 권고는 어렵다”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 “인권위 성찰적 메시지가 처벌보다 강한 문화 만들어야”

조영황(趙永晃·65) 인권위원장의 이력은 특이하다. 최종 학력은 부산 금성중학교 졸업이 전부, 1969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한국사회의 ‘입지전적인 인물의 전형’이 됐다. 사법연수원이 없던 시절, 그는 서울대 사법대학원에서 연수를 받고 1971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는 인간을 심판해야 하는 판사라는 직무에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심판’은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신의 영역’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소박과 겸양, 성실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며, 일상의 행복을 파괴하는 힘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그가 평생을 유지한 신념이다. 변호사 시절 내내 소비자보호운동에 참여, 시민의 평범한 생활을 지키는 ‘파수꾼’ 역을 자임했다.

그가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88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공소유지 변호사(검찰이 불기소한 뒤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열리는 재판에서 검사 대신 공소유지를 하는 변호사)를 맡은 후부터다. 특검제가 없던 그 시절, 그는 사실상의 ‘국내 특별검사 1호’로 활동했고 피고인 문귀동의 실형을 이끌어냈다. 조 위원장은 2000년 약 30년간의 변호사 생활을 접고 전남 고흥·보성군의 시군판사로 취임했다. ‘향판’으로 불리는 시군판사는 법원이 없는 곳에서 2000만 원 이하의 민사소송을 취급한다. 판사로 재직하던 당시 그는 판결문을 쓰지 않았다. 시골의 민사재판을 화해와 중재로만 처리한 것이다. 그는 “민사재판의 본질은 서비스이며 판사가 할 일은 중재와 화해 유도”라는 신념을 실천했다. 2004년 4월에 국민고충처리위원회(고충위) 위원장에 임명돼 임기 3년 중 1년을 겨우 채우고 작년 4월 국가인권위 위원장직을 맡았다. 그가 위원장을 맡은 후 인권위는 초등생 일기검사 폐지, 경찰·소방·교정·소년보호직·철도공안직 공무원 채용시 키와 몸무게 제한 폐지 권고, 사형제 폐지 의견 표명, 비정규직 관련 의견 표명 등 굵직한 현안에 ‘과감·진취적인 의견 개진’으로 국민을 놀라게 했다.

요즘 그를 포함한 국가인권위의 고민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견해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있다. 작년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인권NAP)’이라는 ‘대작’을 완성한 후 숨돌릴 틈도 없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인권위의 권고안과 의견 표명이 사안마다 정치공방의 소재가 되고 있는 것도 그가 안고 있는 부담이다. 지난 2월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장 집무실에서 이 민감한 시류의 복판에 서 있는 그를 만났다.

- 인권위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사회 일각의 비판이 만만치 않습니다. 인권위의 의견 표명, 왜 어려운 겁니까.

“남북의 특수관계가 그 결정을 어렵게 합니다. 헌법은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 영토로 간주하지만 북한에 대한민국의 법 효력이 미치지는 않습니다. 인권위법은 그 관할을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 내 외국인에게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북의 특수관계 속에서 인권위법을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고민의 핵심이죠. 북한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권고는 매우 어려운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정부를 상대로 권고안을 내느냐, 아니면 ‘판단 정지’를 통해 인권위의 생각을 드러내느냐, 또 제3의 방법이 있느냐…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북한 인권 현황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정확한 데이터가 존재하느냐에 대한 의문도 제기됩니다.

“명명백백한 실상을 알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통일부 등 정부의 축적된 정보, 탈북자의 증언, 해외 정보 등을 토대로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르면 한 달, 늦어도 두 달 안에 입장이 정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올초 확정된 인권NAP의 포괄적인 인권개선안에 노사문제가 언급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재계는 인권위의 월권이라며 격앙하고 있습니다만.

“2001년 유엔 사회권 규약위원회는 한국에서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데도 임금, 연금혜택, 직업 안정성에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세계 인권정책의 흐름은 자유권 차원의 소극성에서 벗어나 사회권 전체를 조명하는 적극적 인권의 개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후진적 노사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인권위가 당연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라고 봅니다. 인권 NAP는 향후 5년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 재계에서는 경제성장의 유지, 일자리의 창출이야말로 인권의 진정한 토양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권신장과 경제성장이 과연 양자택일적인 것인가요? 서구 선진사회의 경험은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민주주의가 공고히 정착된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인권 NAP는 국제인권기준에 준하여 만들고자 했습니다. 인권의 보편성과 더불어 인권 각 분야의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상호 관련성을 4대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어요. 노동권에 대한 의견 표명이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재계의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 인권위가 사회 모든 분야의 이슈에 관여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평등권과 사회권을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든 사회적 이슈를 ‘인권의 눈’으로 바라보자는 것이 우리 인권위의 제안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사회권은 이미 인권의 핵심적인 영역입니다.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 등 사회권의 주요 분야에 대해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인권위는 인권 각 분야의 ‘불가분성’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광범위한 사회적 이슈에 발언을 하게 됩니다.”

- 인권위의 권고안들이 ‘액션 플랜’이 결여된 아마추어리즘의 소산이라는 ‘악평’이 존재합니다. 국가기관답게 정치(精緻)한 사전 협의와, 설득을 위한 논리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아마추어리즘보다 더 위험한 것이 관료주의입니다. 인권위가 관료주의에 빠지면 끝장입니다. 인권은 본래 미래지향적인 가치 규범을 내포하기 때문에 다소 진보적이고, 전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위는 ‘액션 플랜’을 내놓기는 하지만 집행할 수는 없습니다. 인권위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정부가 선별 수용해서 실행해야죠.

인권위는 올 초 직제개편을 했습니다. 국·과 체제를 인권영역 중심의 본부·팀제로 전환한 것입니다. 인권 현안에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인권위, 인권현장에 더욱 밀착돼 있는 인권위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통합적 접근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리즘으로 폄하하는 것은 인권위의 본령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 인권위의 ‘권고’와 ‘의사표명’은 법률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실효성이 없는 공허한 울림이 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위원회의 권한은 ‘권고’입니다. 사법적 처벌이 아닌 권고가 아주 강력한 ‘성찰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권고에 대한 성찰이 진지하게 이뤄지고, 권고가 처벌보다 더 무게를 갖는 문화가 만들어져야죠. 권고는 공허한 울림이 아니라 국가 기관과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강력한 울림이 될 수 있습니다.”

- 2006년 한해, 인권위는 어떤 과제에 집중해야 합니까.

“그간 인권위가 제기한 인권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한 해가 돼야겠지요. 인권위가 이미 의견 표명을 했거나, 실태 조사 중이거나, 진정이 접수돼 조사 중인 사안이 있습니다. 잘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양극화로 인한 소외계층의 문제에 깊이 천착할 계획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올해의 중대한 책무입니다. 인권위는 지난 3년 간 차별금지법 제정 준비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입법 과정에서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한기홍〈객원기자〉 glutton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