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진검승부는 지금부터

민주당 ‘조국 정국’ 여파로 타격… 여야, 추석 이후 대등한 형국

추석 이후 정치권은 새로운 분위기를 맞았다. 한 여론조사기관의 관계자는 “그동안 한 건도 없었다가 갑자기 10건 정도의 지역 여론조사 문의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업계에서는 정당보다 더 빨리 변화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우위의 정국이 일시적으로 타격을 받는 조짐을 보이면서 여론조사 문의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추석 이후에도 조국 법무부 장관의 거취가 계속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9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 인사말에 뒤돌아 앉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이 같은 조짐은 정치권에서도 감지됐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민주당이 우위에 서 있었다면 추석 이후 자유한국당과 대등하게 경쟁을 벌여야 하는 형국이 됐다”면서 “이제부터가 사실상 총선의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한 지역구 의원 측은 이 같은 상황을 “바람(風)의 방향이 꺾였다”고 말했다. 유리하던 지역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의원 측은 “그동안의 민주당 지지율을 프리미엄으로 안고 있었으나, 조국 정국과는 별개로 지역구에서 인물 경쟁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말했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지역구 의원실에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 서명 열기가 예상보다 뜨겁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구·경북(TK) 지역의 한 의원은 “지역에서는 서명하겠다고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면서 “지금부터 한국당이 잘 대처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의원 측은 “대통령과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 서명을 받고 있는데 길 가던 사람들이 서명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 측은 “두 부류가 있는데, 둘 다 찬성하는 쪽과 조국 퇴진은 찬성하지만 대통령까지 언급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쪽이 있다”면서 “이런 상황을 보면 중도층도 조국 퇴진에는 공감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검찰개혁 ‘문재인 대 윤석열?’

추석 직후 한국당 지도부의 입장도 전향적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감지됐다. 황 대표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야권연대 빅텐트’를 언급한 데다 ‘연대에서 대표될 생각 없다’고 언급한 것도 내부에서는 ‘획기적인’ 발언으로 여겨졌다.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패스트트랙 수사’에 대해 “내게 모든 책임이 있다” “수사는 내가 받겠다”고 언급했다. ‘조국 정국’에서 한국당이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추석 이후 ‘총선 정국’은 민주당과 한국당이 원점 상태에서 출발하는 셈이 됐다. 동일선상에서 출발하지만 펀더멘털(기초)은 여전히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의견이 많다.

민주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의 거취와 관련해 큰 변수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달 동안 지지층이 탄탄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게다가 의원들의 결속력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9월 19일 연구원 직원에게 보낸 ‘원팀’ 강조가 상징적인 메시지가 될 정도다. 당 내부에서 아직까지는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조국 지지 움직임에 반대하는 단체행동의 조짐이 없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 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여당의 조직력과 핵심 지지층의 결집력은 앞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총선은 전적으로 ‘조국 대전’에 달렸다는 예견이 나올 만하다. 민주당에서는 9월 23일 검찰의 조국 장관 자택 11시간 압수수색을 계기로 분위기가 반전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의원 측은 “11시간 압수수색 후 의원들 내부에서는 검찰이 ‘해도 너무한다’는 여론이 비등해 그동안 지켜만 보던 의원들도 이 참에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검찰의 무리한 압수수색이 전환점이 돼 검찰개혁에 대한 여권의 의지가 더욱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 의원 측은 최근 일련의 여론조사 흐름을 근거로 들었다.

정경심 교수 영장 발부 여부가 분수령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검찰의 조 장관 가족 수사에 대한 국민 인식을 9월 24일 조사한 결과, ‘과도하다’(49.1%)가 ‘적절하다’(42.7%)는 의견보다 오차범위 내에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또한 tbs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9월 23일부터 사흘간 여론조사한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전 주보다 3.3%포인트 오른 48.5%였다. 부정평가는 2.7%포인트 내린 49.3%로 나타났다. 이런 흐름에 대해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9월 26일 의원총회에서 “완전히 민심이 돌아섰다고 말할 순 없지만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 의지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9월 17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 개혁·사법적폐 청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검찰개혁에 대한 민주당의 의지가 강해지면서 ‘조국 장관 대(對)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결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대 윤석열 총장’의 대결로 보는 측면도 있다. 민변 출신인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검찰개혁을 놓고 사실상 대통령과 윤 총장이 대결을 하고 있다”면서 “여당은 조국 장관이 검찰개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정국의 영향에 대해 이종걸 의원은 “총선은 총선대로 여당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고, 검찰개혁은 검찰개혁”이라며 “총선 역시 국민들이 검찰개혁에 대한 평가를 내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다른 한편에서는 조국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교수의 구속영장이 발부될지 여부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의원은 “지금 조국 장관을 물러나라고 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부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발부되면 상황은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때가 되면 청와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의원은 “조국 장관 문제와 검찰개혁을 따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의원들 내부에서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가 더욱 강해졌지만 그것을 조국 장관을 지키는 것과 연관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조국 장관 부인의 구속 여부가 당내 온건파 의원과 다수 의원의 생각이 갈라지는 지점으로 볼 수 있다. 온건파 의원과 달리, 이종걸 의원은 “부인의 구속 여부와 관련 없이 조국 장관이 계속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소 숨통이 트인 한국당은 ‘조국 정국’을 주시하고 있다. 한 의원 측은 “조국 장관만 비판하다가 막상 조국 장관이 물러나거나 검찰 수사가 미진했다는 상황으로 바뀔 경우 한국당이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카드는 하나도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좋아지면서 다선 의원들은 불출마 쪽이 아니라 출마 쪽으로 선회했다. 특히 대선주자급이었던 홍준표 전 대표와 김무성 의원, 이인제·김태호 전 의원 등이 한국당이 유리한 텃밭에서 출마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인적 청산은커녕 다시 친박·비박의 공천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한 의원 측은 “새천년 이전에 정치에 입문한 이들은 당을 위해 불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 의원 측은 “민주당은 물갈이 공천을 하겠다는데, 한국당은 거꾸로 물갈이 대상 의원이 출마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기초가 탄탄한 반면, 한국당은 허술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한국당은 지도부의 리더십, 보수대통합 문제가 조기에 해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다소 흔들렸던 당 지도부의 리더십이나 지난 탄핵 당시 책임론을 둘러싼 친박·비박 간 갈등 때문에 인적 청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수대통합 역시 바른미래당의 내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귀국, 우리공화당의 노선을 볼 때 성사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고 있다. 조경태 한국당 최고위원은 “분위기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나 앞으로의 정국은 한국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면서 “11월에는 보수통합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통합이 되지 않더라도 연대까지는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거대 양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원점에서 출발하게 됐지만 승부는 앞으로 보수야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보수가 중도보수로 외연을 확장하고 인적 쇄신과 재창당으로 이어간다면 승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민주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20∼30대와 중도층의 선택에

관건은 20∼30대와 중도층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조국 정국’ 국면에서 나타난 여당 강성 지지층과 중도층의 괴리현상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 “전력은 여당이 야당보다 우세하지만 환경은 앞으로 여당에 불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20∼30대와 중도층의 여권 이탈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엄 소장은 “일부 20∼30대가 ‘조국 정국’으로 ‘반(反) 한국당 세대의 연대’에서 이탈했지만 부인 구속 여부와 장관 중도하차 여부가 내년 4월 총선까지 승패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갤럽 조사와 리얼미터의 정기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무려 10%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20∼30대와 중도층의 한국당 지지율 차이가 두 여론조사의 차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같은 9월 셋째 주의 여론조사를 비교하면 갤럽에서 19∼20대의 한국당 지지율은 10%였지만, 리얼미터(tbs 의뢰)에서는 24.9%였다. 30대의 한국당 지지율은 갤럽에서는 8%, 리얼미터에서 31.3%였다. 중도층의 한국당 지지율은 갤럽에서는 15%였고, 리얼미터에서는 32.0%였다. 엄 소장은 “전화면접원 조사(갤럽)와 ARS(자동응답) 조사(리얼미터)의 차이로 볼 수 있다”면서 “ARS 조사에서 다소 화가 난 20∼30대와 중도층이 본심과 다르게 민주당 대신 한국당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20∼30대와 중도층이 총선에서는 민주당을 찍을 가능성이 ARS 여론조사 결과보다 더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엄 소장은 “유권자 비중과 투표율을 감안하면 총선에서 한국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50대 미만에서 최소 25%의 득표율을 얻어야 하지만 지금 보수야당의 상태로는 그 정도의 득표율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