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약한 자, 그 이름은 부동층

후보 결정 못한 유권자들, 내년 대선에서는 어떤 역할 할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경구 중 “마음이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선거에서 마음이 약한 자의 이름은 부동층(浮動層)이다.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정하지 않은 마음 약한 유권자들이지만 이들은 각 정당으로부터 귀빈대접을 받는다. 흔히 하는 말로 ‘부동층 유권자들의 향배가 선거의 최대 변수’이기 때문이다. 다음 국어사전에 따르면 부동층은 ‘선거나 투표 때, 지지하는 대상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 일시적 기분이나 상황 등의 변화에 따라 뜻을 바꾸는 사람들을 하나의 무리로 묶어 이르는 말’이다.

부동층은 여러 가지 용어와 혼용돼 사용된다. 부동층과 가장 유사한 용어로는 스윙 보터(Swing Voter)가 있다. 이밖에도 유동층·무당파·중도 등이 있다. 이들 용어를 엄밀하게 구분하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가장 포괄적인 의미로 부동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부동층에 대해 “특정 정당의 고정적인 지지층이 아니거나 고정적 지지성향이 약한 유권자”라고 보았다. 류재성 계명대 교수는 ‘부동층은 누구인가’라는 논문에서 2012년 총선 및 대선과 2014년 지방선거를 비교분석한 결과 ‘젊은층, 고학력자, 선거에 관심이 낮은 중도 성향의 무당파 유권자 중에서 부동층의 비율이 높았다’고 주장했다. 류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일반적으로 부동층은 선거 캠페인이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이나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를 말한다”며 “2012년 총선에서는 34%였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지역구 획정과 공천 일정이 늦어지면서 부동층이 이전 총선의 34%보다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4월 13일 서울의 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연합뉴스

새누리 지지층 이탈이 총선 결과물로
4·13 총선에서 부동층은 과연 어떤 양상으로 나타났을까.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에서 부동층의 선택이 ‘새누리당 참패, 더불어민주당 1당 도약, 국민의당 성공’이라는 결과를 낳은 주요 요인이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어떤 부류의 부동층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분석이 약간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부동층 중 무당파에 주목했다. 정치적이지만 자기 의사를 드러내지 않는 유권자층을 말한다. 엄 대표는 “이들은 특정 정당의 지지를 밝히지는 않지만 투표를 통해 한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적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은 유권자”라고 설명했다. 엄 대표는 “이들 무당층이 선거 막판에는 보통 15%까지 줄어드는데, 이번 총선의 여론조사에서 보면 20~30%에 달했다”고 말했다.

‘40대 여성의 회군’도 여소야대 일조
<정치 여론조사의 기술> 역자인 박병석씨는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20대 총선 평가와 향후 전망’이라는 좌담회에서 스윙 보터의 모형을 제시했다. 박씨는 양당구도에서 3당구도로 바뀌면서 스윙 보터의 모습 또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세 원을 겹치게 만든 벤다이어그램에서 각 두 원 사이의 교집합과 세 원 사이의 교집합을 스윙 보터로 본 것이다. 박씨가 만든 20대 총선 벤다이어그램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의 교집합이 가장 크다. 박씨는 이 교집합의 특성을 ‘호남 출신-고연령-자영업-반새누리’라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야당 지지층으로 새누리당은 차마 찍을 수 없고, 더민주를 찍을까, 국민의당을 찍을까 고민하는 스윙 보터의 유형을 특징화한 것이다. 이런 형의 스윙 보터를 잡기 위해 더민주에서 주로 펼친 전략이 ‘사표 방지론’과 ‘야권 단일화’였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반면 국민의당 쪽에서는 이들 유형의 스윙 보터를 잡기 위해 ‘친노 심판론’을 내세웠다.

국민의당에서는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을 놓고 고민하는 스윙 보터도 놓칠 수 없는 유권자다. 박씨는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사이에 교집합으로 표현되는 이들 스윙 보터의 특성을 ‘비호남-고연령-자영업- 반더민주’라고 규정했다. 이들 스윙 보터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국민의당에서는 양당체제 하의 ‘국민 무시’라는 어젠다를 내세웠다. 박씨는 “새누리당에서는 핵심 지지층만 강화시키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했을 것이고, 이들 스윙 보터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기보다는 무시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부동층의 움직임 중 이번 총선 결과를 만든 중요한 동력은 여당인 새누리당 지지층의 이탈이다. 공천문제로 계파 간 갈등이 고조되고 옥새 파동이 일어나면서 예전에는 새누리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것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지지층이 많은 대구의 이번 총선 투표율은 54.8%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경북은 56.7%였으나 전국 평균에도 못 미쳤다. 수도권에 사는 이 지역 출신들의 투표율도 이전 선거보다 낮았을 것으로 유추된다. <정치의 귀환>의 저자인 유창오씨는 “이 정당과 저 정당을 왔다갔다 하는 부동층의 이동보다 각 당의 지지층이 투표를 하거나 하지 않는 측면이 이번 총선의 결과를 만든 주요 요인”이라면서 “대선과는 달리 투표율이 58.0%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특정 계층에서 투표를 하거나 하지 않은 것이 투표 결과를 크게 좌지우지했다”고 말했다.

류재성 계명대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 부동층을 중도 성향의 무당파로 규정했다. 류 교수는 “무당파는 나름 정치에 관심이 있고 보수든 진보든 이념도 갖고 있지만, 지지 정당이 없는 예민한 정치성향의 부류”라면서 “이번 총선에서 무당파의 구성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류 교수가 말한 변화는 진보 계층의 무당파는 나름대로 지지 정당을 찾아 많이 줄어들었고, 보수는 무당파가 많이 늘었는데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4월 10일 서울 한 지역에서 열린 새누리당 후보 지원유세를 유권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새누리당 지지층의 이탈이라는 대전제와는 비슷하지만 선거 결과의 축이 어느 부류의 부동층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다. 리서치 뷰의 안일원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부동층의 특징을 ‘40대 여성의 선택’으로 보았다. 안 대표는 “40대 여성들이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2012년 19대 총선 전까지는 야권 성향을 띠었지만 19대 총선에서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동 이후 여당 성향으로 돌아섰고, 2012년 대선에서도 어수선한 문재인 캠프보다 박근혜 캠프를 선호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이들 40대 여성층이 이번 총선에서 대거 새누리당의 지지에서 이탈했다”면서 ‘40대 여성의 회군’이라고 표현했다.

부동층의 움직임 중 20대 유권자층의 야당 지지에 주목하는 분석도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20대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나왔다. 이들 역시 부동층으로 분류된다. 19대 총선에서 20대 36.2%, 30대 43.3%, 40대 54.1%였던 세대별 투표율은 20대 총선에서는 방송 3사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49.4%, 30대 49.5%, 40대 53.4%로 추산됐다. 20대의 경우 13.2%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야당에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다. 20대의 투표율이 30~40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있다. 엄경영 대표는 “30~40대가 정치 성향이 강하고 비판적인 세대인 반면 20대는 정치 성향이 약한 세대인데, 이번 총선에서는 20대의 투표율이 30~40대와 비슷하게 추산되는 것을 보면 가히 혁명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20대 부동층 더 많이 투표하게 될 것’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후보-정당 교차투표(분할투표) 현상 역시 부동층의 움직임과 크게 관련이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지역구 후보로 새누리당이나 더민주를 찍은 유권자는 정당을 선택하는 두 번째 투표에서는 국민의당을 대거 선택했다. 때문에 정당투표에서 국민의당이 더민주(25.54%)를 꺾고 26.74%의 득표율을 올렸다. 새누리당은 33.50%의 득표율에 그쳐 국민의당이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표를 대거 잠식한 것으로 분석됐다. 유창오씨는 “이번 총선의 독특한 특징인 교차투표 역시 어느 한 당을 확고하게 지지하지 않고 왔다갔다 하는 부동층이 많았다는 것을 드러내준다”고 말했다. 엄경영 대표는 “지역구 후보는 더민주를 찍고 정당은 국민의당을 선택한 유권자들이 많았다”면서 “이들이 사실상 부동층의 주축”이라고 분석했다. 윤희웅 센터장은 “이번 총선에서는 부동층이 이전 총선과 다르게 범위가 넒어졌다”면서 “이전 총선에서는 부동층이 소극적이었던 반면, 이번 총선에서는 교차투표 등을 통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이런 측면이 지역주의 약화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고 덧붙였다.

부동층은 내년 대선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류재성 교수는 “내년 대선의 결과는 결국 각 당이 어떻게 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총선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새누리당이 지금과 같은 계파갈등 상황이라면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엄경영 대표 역시 “대선에서는 투표를 포기했던 50대 이상의 유권자들도 투표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하지만 중간층이 야권으로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 대표는 “민심은 선거 때마다 확확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서 바뀐다”면서 “민심이 거대한 물줄기로 바뀌어 나오기 때문에 큰 물줄기가 내년 대선에서도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일원 대표는 “대선의 투표율이 80%에 육박하는 만큼 이번 총선에 대거 참여한 20대 부동층이 더 많이 투표하게 될 것”이라면서 “때문에 정권심판론과 야당심판론 중 정권심판론이 더 부동층의 마음을 끌어들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희웅 센터장은 “부동층이 내년 대선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는 단언하기 어렵다”면서 “하지만 소극적이었던 부동층이 이번 총선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을 감안할 때 자신이 선호하는 정책을 내건 정당을 적극적으로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