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골 맛집]"음악에 젖고 맛에 취해 삽니다"

방송인 황인용의 파주시 '반구정 어부집'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면서도 포근한 발라드를 닮았고 생김새는 시골의 평화로운 정경을 연상시킨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마음 역시 샘물처럼 맑고 깨끗할 것이다. 방송인 황인용. 그는 이런 사람이다. 한마디로 음악 같다고나 할까. 혹자는 그의 시골 아저씨 같은 소박하고 넉살좋은 화법에 숨넘어갈 듯 웃기도 하고 혹자는 그의 방송을 필수과목처럼 빼지 않고 듣다가 할 일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그런 그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 환갑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그는 변함없이 젊다. 운전을 하면서도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가 나오면 '흥얼흥얼' 따라 부른다. 기분이 더 좋아지면 신호대기 시간을 이용해 운전대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기도 한다.

아직도 그에게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몸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는 끊임없는 음악 사랑으로 평창동에 '카메라타'라는 고전음악실을 만들더니 이번에는 고향인 파주에 음악감상카페를 완공했다. "죽을 때까지 음악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 그의 결심이자 소망이다. 음악이 좋아서 그렇겠지만 이는 무엇인가에 한번 빠져들면 평생 그것과 인연을 맺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품 때문인 듯싶다.

음식 사랑에도 이런 성품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요즘 누른밥을 즐겨 먹는다. 특히 아침에는 반드시 누른밥을 먹는다. 아침 밥이 잘 먹히지 않을 뿐 아니라 어릴 때 좋아하던 누른밥의 구수함을 잊지 못해서란다. 아침에 누른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다면서도 시중에서 파는 누룽지는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그의 아내는 일부러 일부러 밥을 눌려야 한다. 요즘 세상에 이것도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아내가 고생한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애처가의 면모도 보인다. 그는 이 누른밥에 멸치나 상추-풋고추-쑥갓-마늘을 반찬으로 먹는다. 어린 시절 먹던 그대로를 지금도 즐기는 것이다. 채소는 그가 직접 재배한 것을 따다 먹는다.

이보다 더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는 것이 이름만 들어도 '환장'하는 '잡어 매운탕'에 얽힌 일화다. 그는 '잡어 매운탕'을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가 "옛날 어릴 때의 추억이 담겨 있어서"다. '추억'이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어린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한다.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에 추억만으로도 이렇게 순수해질 수 있다는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의 고향은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다. 이곳에는 선조 방촌 황희 정승의 반구정은 물론이고 8대조 할아버지의 산소부터 대대로 모셔져 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이 마을에서 살았다. 이 시절 그는 "소나기가 '쏴아'하고 쏟아지다가 그치면 곡식 고르는 고운 채를 들고 논으로 뛰어갔다." 그 채를 논구덩이에 '쑥'집어 넣으면 모래무지-동자개-붕어새끼-날치-참게새끼-민물새우 등이 숱하게 잡혔다. 그 고기들을 냇물에 씻어 큰 솥에 쏟아놓고 풋고추와 마늘, 약간의 고추장-된장을 넣어 '푹푹' 끓였다. 그 국물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맛'이었다며 목젖을 꼴깍 움직인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이 맛을 즐길 수 없었다. 고향을 떠나 바쁘게 살았고 시골 풍경도 옛날과는 달라진 탓이다. 입맛이 없을 때면 그때 그 맛을 그리워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파주에 음악감상카페를 만들면서 놀라운 곳을 발견했다. 근처 민물매운탕집에 들어갔다가 '그때 그 맛'을 찾은 것이다. 그 집이 바로 '반구정 어부집'이다.

그는 "요즘 매운탕은 맛을 내려고 조미료 등 여러 가지 첨가물이 들어가 순수한 맛이 없어졌다"면서 "이 집은 옛맛 그대로"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민물고기의 맛을 잘 살리면서도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물이 얼큰하면서도 담백해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바로 '이맛이야'라며 무릎을 쳤단다. 장어도 다른 곳에서는 느끼해 잘 먹지 않는데 이 집에서는 즐겨 먹는다고 한다.

어린 시절 사랑을 그리워하다 수십년 만에 만나는 옛 연인처럼 그는 '반구정 어부집'의 매운탕을 설렘으로 대하고 있었다. 매운탕을 즐기는 그의 입맛은 음악처럼 한 번의 인연을 끊지 못하는 그의 성품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아니겠는가. 그의 말을 따라 함께 웃고, 안타까워하면서 문득 '그를 프로로 만든 8할이 성품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부 토속 매운탕 "이 맛이야"

김씨 부부가 음식점을 낸 사연도 기가막히다. 김 사장은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서울 생활을 해왔다. 남편은 엔지니어 출신. 남편이 하던 일이 잘못되자 1995년 고향인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로 내려와 농사와 축산을 했다. 그러면서 고기잡이도 했다. '비료값이나 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죽어라고 일을 했는데 3~4년 지나니 자산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농사라는 게, 축산이라는 게 그랬다.

주위에서는 '3개월도 못가 망할 것'이라고 수군댔단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따른다'고 했던가. 음식점을 차리자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찾아왔다. 인사차 왔다가도 음식맛에 매료돼 단골이 됐다.

요즘 이 집에서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는 메기-동자개-참게 등을 섞은 매운탕이다. 얼큰한 국물에 고기 맛까지 싱싱하게 살아 있다. 이미 시기가 지난 요리지만 매년 4월말부터 5월초까지는 황복이 인기다. 임진강의 귀족이라고 불리는 황복은 양식 황복과는 달리 쩔깃쫄깃한 그 맛이 환상적이어서 내지-외지 손님 할 것없이 하루종일 북적댄다. 주차 가능하고 시간과 상관없이 손님이 있으면 언제나 음식이 차려진다. 메기-동자개-참게 매운탕(중)4만원. 메기찜(중)3만원. 참게 매운탕(중)5만원이다. (031)952-0117.

찾아가는 길 : 자유로를 타고 임진각을 향해 달리다가 문산인터체인지로 나가 사목리쪽으로 가면 반구정이 나온다. 반구정에서 500ｍ쯤 떨어져 있다.

<글 황인원 기자 hiw@kyunghyang.com·사진 지호영 [경향미디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