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의 이코노베이션](21)사회 기펜재를 생각하자

수학을 조금 들여다보면 비약불연속(jump discontinuity)이란 단원이 나온다. 양단의 극한값은 있으나 함수가 없는 경우 등이 그 내용 속에 설명이 된다. 비약불연속은 과정은 끊어지면서 단속적이지만 발산을 거치며 계단처럼 점프를 한다. 양자컴퓨터는 이런 구조의 입자와 파동 사이에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정보처리가 가능한 컴퓨터를 말한다. 머지않아 우리가 만나게 될 세상이다.

11월 28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고강도 코로나19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와 우루무치시 화재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집회가 함께 진행되면서 시위자들이 거리를 따라 행진하고 있다. / 베이징 AFP=연합뉴스

관련 학계에서는 이런 세상을 준비하기 위해 단위를 더욱 세분화하고 있다. 속도는 이미 100경분의 1초까지 구분된다. 실제 생활의 경제 수치도 우리 돈으로는 100경원급까지 나왔다. 지구 경제 부의 총합도 약 100경원대로 추산된다. 미국 뉴욕증시 시가총액이 5경원을 넘나든다. 그 안에서 빅테크 주식 몇 개만 합쳐도 요즘 시세로 1경원은 쉽게 넘어간다.

양극단의 존재와 중첩현상

화제를 바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대처하는 방식을 보자. 대부분 국가는 국민 모두의 면역을 추진한다. 반면 중국은 국민 모두의 방역으로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려 한다. 이 두 방식 사이에 분명한 연결함수는 없으나, 최근 대부분 국가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중국 당국의 봉쇄에 대한 내부 사회의 극렬한 반발을 보면 그 파장이 해외동향과 무관치는 않아 보인다.

이처럼 양극이 존재하면서 서로 직접적인 연결함수는 없지만, 입자 이동과 파동의 중첩현상과 얽힘 등이 보이는 장면은 우리 사회에서도 한두 곳이 아니다. 대도시 주택시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소위 초부유층이 사는 프리미엄급 주택시장의 공급요인이나 수요는 일반 국민의 실용주택 시장과 다른 내부구조를 지닌다. 요즘 들어 살펴보면 프리미엄급 주택시장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가격동향은 어떤 경로로든 국민 실용주택 시장에 영향을 준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하반기에 서울 강남 모처에서 한 채에 300억원 정도 하는 초호화 아파트를 선보였다. 아주 소량의 분양 수량이었지만, 유명 연예인들이 사들인다는 등의 소식들이 화제성으로 전해진 바 있다. 얼마되지 않아 서울 전역의 중산층 이상 아파트 가격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종전에는 중산층이 6억~9억원으로 서울에서 그럭저럭 살 만했던 집들이 갑자기 뛰어 한 채에 12억~15억원으로 훌쩍 올라버렸다.

여기에 놀란 당시 정부는 과세정책과 금융통제 정책 등을 동시에 들고 나왔다. 그 파장이 (고금리로 시세가 많이 약해졌다고 하는 지금도) 아직도 역력히 남아 있다. 이후 현 정부는 공급의 비책을 카드로 들고 나왔다. (미국에서 당장의 금리 충격이 조금 가라앉고 나서) 예의 프리미엄급 시장의 시세가 다시 꿈틀댈 경우 전체의 시세 안정 기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본다.

직장인에게는 급여 차이가 주는 상대적인 상실감이 가장 큰 심리적 불행이고 사회적 불이익이다. 잘 나가는 성장산업에서 업황이 좋아 임금이 급등하면 평범한 분야의 직장인들이 겪는 사기 저하와 인생 불만족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그런 인상 여파들이 어느새 그들 삶의 비용 증가나 구매 기회 상실로 슬그머니 찾아온다. 지난해 중소 및 중견기업의 신입사원들이 받는 평균급여(2900만원)가 300명 이상 직원 수를 가진 대기업 정규직의 신입사원(5000만원)보다 평균 2000만원 가까이 낮았다. 같은 해 사업소득자(자영업) 551만명의 평균 수입(2000만원)도 공기업 신입사원 초봉(3900만원)보다 많이 낮았다.

우리는 그동안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경제를 중요시하던 시절을 상당히 보냈다. 이전보다 전반적으로 좋아진 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1인당 4만달러를 향하는 지금, 상당한 개인의 마음속을 파고드는 문화적 고적함과 경제적 소외감이 사회 곳곳에 깃들어 있다.

12월 6일 광주 서구 국민의힘 광주시당 앞 도로에서 민주노총 광주본부가 화물연대 총파업 투쟁을 지지하며 총파업·총력투쟁대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1999년 이후 3% 내외의 연평균 기초생계비 증액 추이만 보더라도 사회적 경제의 국가 예산이 국민소득 증가를 앞지르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국민적 정서로는 여기서 더 국민소득이 올라간다고 사회적 경제의 비용을 증액하려는 선한 의도가 소득에 비례해 증가하리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국민의 안전이나 건강과 같은 질적인 사회기반의 욕구가 증가하면서 국민 문화적 경제비용이 증가하게 되면, 오히려 사회적 경제비용은 ‘기펜의 역설’이 될 수도 있다. 가격이 낮아지는데도 점점 정책이나 국민의 지원 수요가 더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점점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대한 국가나 국민 전체의 관심이 더 낮아지는 것이다.

장애우들의 공공교통망 확대 요구 시위와 화물연대 노조, 공공 교통서비스 노조 등의 파업 소식이 들린다. 정부는 안팎의 경제적 어려움을 강조하며 국가수송망의 정책적 엄중함을 들어 모두 강한 규제와 처벌로 대응하고 있다.

몰인정한 세상과 착한 언론

지금 우리 경제사회 앞에는 두 가지의 산업혁명이 도도한 깃발을 들고 있다. 하나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무인노동 기계의 등장이다. 다른 하나는 무인 자율운영 시스템이다. 무인화를 기반으로 하는 지능혁명의 혁신파도 위에서, 위에 열거한 사회적 호소 주체들은 장기적으로 미래의 사회적 입지가 대저 자유롭지 못하다. 차츰 사회적 기펜재가 될 소지마저 엿보인다. 이러다간 약한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위치에 있는 착한 매스미디어도 미필적 기펜재의 처지가 되지 않을까 벌써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기우이길 바란다.

막스 베버는 국가 제도가 강화되고 관료사회가 강력해질수록 ‘몰인정한 세상’이 될 거라고 갈파한 바 있다. 연장선상에서 빠른 지능사회의 확장은 동시에 관료지능화의 차가운 국가환경을 짐작하게 한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19세기 중반에 등장한 사상으로,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은 인간에게 주는 유익과 행복의 증진을 기준으로 삼자”라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는 작금의 인공지능과 같은 지능적 유틸리티의 인간 추월과 인본으로부터의 비약으로 그 논지가 무색하게 됐다. “순간의 편안을 얻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면 편안도 자유도 얻을 수 없다”고 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어린 나이에 신문사를 만든 언론인이다. 낮은 자리의 사람들이 살아갈 최소한의 자유를 위해 힘쓰는 착한 언론이 사회 기펜재가 되지 않도록 한 사람의 독자로서 열독과 정독의 일상을 지키고 싶다.

엄길청의 이코노베이션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엄길청의 이코노베이션’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