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바뀌지 않는다, 바뀌지가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서울 도심 한복판 이태원에서 또다시 청년들의 막대한 죽음을 직면하게 됐다. 현재(11월 1일 기준)까지 확인된 156명의 사망자 중에서 20대와 30대가 대부분이다. 10대도 12명이나 희생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게 사실인지 꿈인지 먹먹하고도 암담한 마음이다. 폭발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테러가 자행된 것도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 경찰도 있었다는데 어떻게 이러한 참사가 발생한 것인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8주기인 올해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세월호 사고 해역에 희생자 유가족들이 헌화한 국화꽃이 떠 있다. / 권도현 기자

벌써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등장하는 희생자들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자발적으로 모였기 때문에, 놀러갔기 때문에, 축제를 즐긴 것이기 때문에 죽었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말들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칼날이다.

문화를 다루는 인류학자이다 보니, 외국인들이 많고 다양한 세계 문화가 밀집한 이태원이라는 지역 공간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이 강화되지 않을까, 또 ‘노는’ 젊은이들에 대한 혐오가 거세지지는 않을까 자못 걱정된다. 이제부터 혹시 다수가 모이는 집회나 시위가 금지되거나 제한돼 우리의 자유권이 침해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도 스멀거리며 올라온다.

과거 참사에서 배우지 못한 교훈

그러나 잊지 말자. 이 모든 분노와 걱정, 불안보다 우리가 가장 먼저, 그리고 충분히 해야 할 일은 희생자들에 대한 깊은 애도다. 다른 것들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우리와 함께 같은 공간에 살던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참사로 세상을 떠났다. 심지어 그중 다수는 이제 막 꿈을 꾸기 시작하거나 꿈을 향해 달려나가던 젊은이들이었다.

죽은 자들에 대한 추모와 더불어, 충격과 원통함에 목 놓아 울 힘조차 없을 유족과 애통한 마음을 진심으로 나눠야 한다. 그들이나 그들 자녀의 잘못이 결코 아님을, 각자 자기 자리에서 표현할 방법을 찾아 그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이 우선이다. 안타깝고 답답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함께 슬퍼하자. 그래야만 더 큰 상처를 우리 사회에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지난 8년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내가 배운 작은 교훈이기도 하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자. 지난해 핼러윈에 이태원에는 사흘간 20만명이 모였다. 올해는 30만명이 모일 것으로 경찰은 예상했다. 사고 전날에도 인파에 밀려 넘어진 사람들에 대한 신고가 소방서와 경찰서에 속속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한 기관의 예상과 사고 신고가 있었다면 적어도 용산구와 서울시, 서울경찰청은 당일 상황에 대한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 하지만 다들 별도 요청이 없었다며 자기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방치했다.

어째서 위험 가능성을 예측하고서도 담당자들은 가만히 있었을까. 내버림의 대가가 너무나 크고 아프다. 일방통행 조치만 있었어도, 안전요원 배치만 제대로 했어도, 인파의 흐름을 모니터링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 공무원들이 자신이 맡은 구역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과 책임의식, 보살핌의 마음이 있었으면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었던 일을 막지 못한 참사, 참혹한 인재였다.

지난 8월 세 모녀가 신림동 반지하에서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담당 공무원들은 사전에 위험의 낌새를 눈치챘다. 이 집은 정부가 2년 전 전수조사를 해서 최저주거기준 미달, 침수 우려 반지하가구로 분류해놓은 특별관리대상이었다. 그렇지만 전수조사를 하고 분류를 한 뒤 그뿐이었다. 그에 대한 추가적인 관리와 필요한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참으로 공무원들의 무책임을 이해할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 세 모녀 사망 사건, 그리고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허망한 죽음이 자꾸 발생하는 까닭은 사실 단순하다. 사고를 예상하면서도 ‘내가 담당하고 있는 동안은 별일 없겠지’ 하는 공무원들의 안일한 태도, 게다가 담당 기관이 서로서로 “그건 내 할 일 아니다”라며 발뺌의 이유를 줄줄이 늘어놓기 때문이다.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회원들이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직된 조직문화와 자발성의 부재가 막을 수 있는 죽음을 자꾸 부른다.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대상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과 보살핌의 마음이 없으니 사건 사고가 우리 사회에서 멈출 리가 없다.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봐야 우리 사회는 바뀔 것인가.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을 잃어야 담당 공무원과 책임자들은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

가슴 아픈 죽음을 앞에 두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비열함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혀 입이 저절로 다물어진다. 꽃다운 청년들의 희생 앞에서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다니, 우리 사회엔 분명히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함께 살고 있나 보다.

애도하고 슬픔을 나눈다는 것의 의미

더 이상 애달픈 죽음을 이용하지 마라. 이제라도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보듬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국민은 더 이상 허망하고 마음 찢어지는 죽음을 보고 싶지 않고, 그러한 죽음을 막지 못하는 무책임한 공무원들을 보고 싶지 않으며, 아픈 죽음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정치인들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다.

법 따지고 규정 따지고 책임 범위 따지기 전에 제발 좀 사람을 우선시하는 마음, 다른 이의 생명도 내 가족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보자. 노력이라도 해보자. 하나의 참사가 잊히기도 전에 다음 참사로, 또 하루에도 몇명씩 각종 산재로 젊은이들의 죽음이 발생하고 있는 이 땅에서, 밖에서 선진국이라 자랑하고 다니는 게 무슨 소용인가. 4월 벚꽃이 눈물로 얼룩진 지 얼마나 됐다고, 올해는 10월 단풍이 슬픔으로 물들었다.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유족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아픔도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지금은 충격적인 소식에 어안이 벙벙하지만, 이태원 현장에 없었던 나도 이번 참사에 대해 조금씩 현실감을 느끼며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매스컴과 SNS에는 각종 이야기가 난무할 것이다. 복잡한 말들과 색색 가지 의견이 뿜어져 나올 것이다.

적어도 이것만은 잊지 말자. 이 모든 혼란과 각종 말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우선은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그리고 모든 피해자와 함께하는 슬픔의 나눔이라는 사실을. 그것만이 우리가 진짜 인간이라는 증거다.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