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100㎝ 택배상자’에도 구멍 2개

‘총알 배송’이나 ‘로켓 배송’ 같은 말이 일상화됐지만, 택배상자의 여정은 간단치 않다. 우정사업본부(이하 ‘우본’)에서 소개한 우체국 택배상자의 수송 과정을 살펴보자.

우정사업본부 제공

①이용자가 직접 포장해 택배상자를 창구에 가져가면 ②창구 직원이 저울에 있는 택배상자 무게를 확인해 접수한 뒤, 상자를 자리 뒤편으로 옮긴다. ③접수된 택배상자가 모이면, 카트에 실리고 ④다시 카트에서 차로 옮겨진다. ⑤차에 실린 택배상자가 지역별 우편집중국에 도착하면, 택배상자를 차에서 내린다. ⑥택배를 보내는 지역에 따라 분류한 뒤 ⑦다시 차에 택배상자를 싣는다. ⑧택배 수신지가 있는 우편집중국에 수송 차량이 도착하면 택배상자를 내리고 ⑨이번에는 도착하는 주소지에 따라 분류한 뒤 ⑩다시 택배 수송차에 상자를 싣는다. ⑪택배 기사는 집 앞까지 배달하면서 택배상자를 들게 된다.

상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과정만 적어도 10번이 넘는다. 우본은 2020년 11월 25일, 규격 120㎝(48×38×34㎝·가로×세로×높이)인 5호 상자 양쪽에 구멍을 뚫었다. 5호 상자에는 20㎏ 가까운 물건이 담기기도 한다. 구멍이 있으면 상자를 들어올리고 놓기 수월해진다. 택배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을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그냥 구멍이 아니라 ‘반구멍’을 뚫었다. 반구멍이란 구멍의 윗부분에 골판지가 그대로 붙어 있어 손을 밀어넣었을 때만 구멍의 안쪽이 드러나는 형태다. 복원력이 있어서 손을 떼면 남아 있는 구멍 윗부분 골판지가 내려오면서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이물질이 안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려는 조치다. 대형 택배회사들은 “구멍을 뚫게 되면 상자에 이물질이 들어가 민원이 늘어난다”고 난색을 표해왔다.

우체국 택배상자에 ‘구멍 손잡이’가 더 많아졌다. 우체국은 지난 6월 1일부터 규격 100㎝(41×31×28㎝·가로×세로×높이)인 4호 상자에도 구멍 손잡이를 뚫어 배포하기 시작했다. 우본은 다음달부터는 전국 우체국에 구멍 손잡이가 뚫린 4호 상자가 배포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연간 ‘구멍 손잡이’ 택배상자는 4호(366만매)와 5호(385만매) 합쳐 751만매가 쓰일 것으로 보인다.

가격은 소폭 올랐다. 지난 6월 1일부터 구멍 손잡이 4·5호 상자는 200원 인상됐다. 구멍 손잡이 도입뿐만 아니라 골판지 가격 인상, 친환경 포장재 도입에 따른 결정이다. 우본에 따르면 구멍을 뚫게 되면 제작 단가가 5호 상자는 개당 85.51원, 4호 상자는 249원 증가한다. 구멍 손잡이가 달린 4호 상자는 하중을 견디기 위해 단단한 이중양면 골판지를 쓰게 됐다. 기존에는 양면 골판지를 썼다. 대형 택배사들은 지금까지 “구멍 손잡이를 뚫게 되면 비용이 증가한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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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섭 우본 소포전자상거래과장은 “2020년 11월 이후 벌레나 이물질이 들어오는지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접수된 민원은 없었다. 택배 기사분들만이 아니라 택배상자를 옮기는 창구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