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루시드 드림」

‘메디치 효과’와 닮은 뇌수면 과학 활용

자식을 잃은 부모가 겪는 아픔을 ‘단장(斷腸)의 고통’이라고 한다. 창자가 녹아 끊어질 정도로 아프다는 뜻이다. 생때같은 아이가 백주대낮에 이유도 모르게 납치됐다면 어떨까.

영화 <루시드 드림>은 대기업 비리 고발 전문 기자가 납치된 아들을 찾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이용해 범인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았다./NEW

김준성 감독은 루시드 드림을 떠올렸다. 루시드 드림이란 자신이 꿈을 꾼다는 것을 알면서 꾸는 자각몽을 말한다. 루시드 드림은 렘수면 상태에서 잘 꾸는데, 이때는 뇌활동이 평소보다 활발해져 기억하지 못했던 것도 기억해낼 수 있다고 한다.

대호(고수 분)의 외아들 민우가 3년 전 놀이공원에서 납치되면서 영화 <루시드 드림>은 시작된다. 경찰수사도 지지부진한 상태. 하지만 대호는 포기할 수 없다. 매일 1분 1초가 단장의 고통이다. 대호는 루시드 드림을 이용해 자신의 꿈속으로 들어가 단서를 찾기로 한다. 과학적으로 아직 증명되지도 않았고, 뇌혈관에 무리를 줄 수도 있지만 앞뒤를 잴 부모는 없다. 아들이 사라졌던 그날로 돌아간 대호는 꿈속에서 오른팔에 문신을 한 수상한 남자를 기억해낸다. 단서를 넘겨받은 형사 방섭(설경구 분)은 그렇게 얻은 몽타주를 근거로 수사망을 좁혀간다.

루시드 드림은 1913년 네덜란드 정신과 의사 에덴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이 꿈은 본인이 상상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때문에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종종 겪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STD) 등을 치료하기 위한 심리요법으로 많이 연구되고 있다. 대호는 친구인 정신과 의사 소현의 도움으로 루시드 드림으로 들어가 용의자를 찾아낸다. 하지만 용의자는 2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있다. 이번에는 용의자의 의식속에 들어가 꿈을 공유하는 ‘공유몽’으로 추가단서 확보에 나선다. 뇌파를 맞추면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다.

이처럼 뇌수면 과학을 이용해 미궁에 빠진 범죄를 해결하는 과정은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와 닮았다. 메디치 효과란 서로 다른 영역의 지식이 결합해 창조와 혁신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한 곳에서 만나면 그 교차점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요한슨이 2004년 저서 <메디치 효과>에서 소개한 개념으로 15세기 대표적인 금융업자인 메디치 가문에서 유래됐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문화·철학·과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를 적극 후원했다. 그 결과 철학자와 과학자, 수학자들이 협업할 수 있었고, 이들의 성과물은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단테·마키아벨리 등이 피렌체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

2008년 LG생활건강은 기업의 경영 전반에 메디치 전략을 내세우면서 화장품에 식품 기술을 융합한 ‘숨 37’을 출시해 대박을 터트렸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이미지와 결합한 삼성전자의 ‘보르도 TV’도 메디치 효과를 적용한 사례다. 인터넷과 카메라, MP3플레이어 등 전혀 다른 하드웨어를 통합하면서도 감성을 강조한 아이폰은 이동통신 분야에 신기원을 열었다.

메디치 효과는 한 분야보다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로 팀을 만들어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이 한 세기가 다 가도록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는 이면에는 ‘멜팅포트’로 불리는 인종적 다양성을 유지한 결과일 수도 있다.

영화 속 경제

자각몽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영화로 2010년 개봉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이 있다. 영화 <인셉션>은 올해 재개봉된다. 난해했던 그 영화를 지금 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될까. 주연을 맡았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나는 아직도 (이 영화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꿈의 세계는 생각보다 난해하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