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알라딘> 인정받기 위한 과도한 노력 ‘가면증후군’

생각나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작품들을 꼽아보라면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과 함께 <알라딘과 마법의 램프>가 빠지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디즈니의 선택은 ‘알라딘’이었다. 1992년 제작한 애니메이션 <알라딘>은 아카데미상, 골든글로브상, 애니상을 휩쓸며 디즈니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27년 만에 실사판으로 돌아온 가이 리치 감독의 <알라딘>은 그래서 기대가 컸다.

영화 <알라딘>은 좀도둑 ‘알라딘’이 마법사 ‘자파’의 의뢰로 마법 램프를 찾아 나섰다가 주인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모험을 다룬다./디즈니 제공

알라딘은 아그라바 왕국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훔쳐 생계를 이어가는 소매치기 좀도둑이다. 알라딘은 신분을 감춘 채 시장을 돌고 있던 자스민 공주를 우연히 만나고, 한눈에 반한다. 재상 자파가 유혹한다. “공주를 사로잡을 만큼 큰 부자로 만들어주겠다. 마법의 동굴에 들어가서 램프만 가져와.”

알고보니 그 램프에는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는 지니가 갇혀 있다. 단 소원은 세 번만 빌 수 있다. 알라딘은 첫 번째 소원을 빈다. “왕자로 만들어 달라”다. 아바브와 왕국의 알리 왕자가 된 알라딘은 화려한 퍼레이드를 앞세워 아그라바 왕국에 입성한다. 마침내 자스민 공주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언제나 두렵다. 진짜 왕자가 아닌 좀도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공주는 자신을 사랑할까. “난 네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 자파의 한마디에 알라딘은 움찔한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실력이나 노력이 아닌 운으로 얻어졌다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제 실력이 드러날 것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 실력 이상의 지위와 포상을 받았다며 스스로를 ‘사기꾼(Imposter)’으로 몰기도 한다. 이 같은 심리적 현상을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라고 한다. 심리학자인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가 1978년 처음 사용한 단어다. 두 사람에 따르면 가면증후군은 성공한 여성들에게 많이 보였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운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윗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매력을 이용하는 등 모든 것을 퍼붓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가리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면서 자신을 혹사하고 심지어 신경과민과 대인공포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가면증후군에 빠진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과 조직을 무리하게 이끌 수 있다.

가면증후군은 왜 생길까? 심리학자들은 가면증후군은 타인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일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큰데, 실제로 실패를 했을 경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 중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6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나탈리 포트만은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멍청한 배우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수업만 골라 들었다고 밝혔다.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앨버트 아인슈타인도 자신의 업적이 과도하게 평가받고 있다며 스스로를 ‘의도하지 않은 사기꾼’으로 불렀다고 한다. 심리학자 해롤드 힐먼은 가면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과도하게 신경을 쏟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요한 치료요법으로 진정성을 꼽았다.

술탄이 주최한 연회. 지니는 자스민에게 다가가기를 망설이는 알라딘에게 “겉모습은 왕자로 만들어놓았지만 네 내면의 모습은 바꾸지 않았다”며 “네 가치를 믿으라”고 조언한다. 자스민을 연인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알라딘, 자신이라는 얘기다.

영화 속 경제

자스민은 배우자의 재력과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알라딘이 가진 순수함, 용기, 유머와 재치가 좋았다. 알라딘은 자파를 물리치면서 비로소 가면증후군에서 빠져나온다. 알라딘이 지니에게 자유를 선사한 것은 마법의 램프가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