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완벽한 타인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사는 ‘포노 사피엔스’

‘진실게임’이라는 게 있다. 술을 마신 뒤 한 명씩 자신의 마음속에 감춰진 이야기들을 고백하는 게임이다. 불콰하게 취하면 어디선가 용기가 나 속내를 드러내기 쉽다. 듣는 사람도 괜히 마음이 넓어지는 데다 술이 깬 뒤에는 상대의 고백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게임이 성사된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40년 지기 친구들이 ‘핸드폰 잠금 해제 게임’을 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린다./롯데엔터테인먼트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은 그 같은 진실게임을 차용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서로의 정신이 말짱하다는 것. 그랬을 때 우리는 새롭게 밝혀진 진실에 어떻게 대처를 할까. 영화의 원작은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다.

어릴 적 친구 네 명이 있다. 유방성형 전문의사인 석호(조진웅 분), 변호사 태수(유해진 분), 레스토랑 사장 준모(이서진 분), 학교 선생님 영배(윤경호 분)다. 석호가 집들이로 초청한 저녁식사에 이들은 배우자들과 함께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발칙한 제안이 나온다. “우리 게임 한번 해볼까? 다들 핸드폰을 식탁에 올려봐.” 자신들의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통화, 문자, 카톡을 모두 공유하자고 한다. 꺼림칙하지만 나만 뒤로 뺄 수도 없다. “난 당당해”라며 시작한 게임. 알고 보니 모두가 비밀을 갖고 있다. 사랑, 연애, 투자, 뒷담화, 약속 등 비밀은 얽히고설킨다.

석호는 말한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는데, 이 핸드폰은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다”고. 아이폰이 처음 출시된 것은 2007년. 10여년 만에 스마트폰은 세상을 지배하는 도구가 됐다. 이른 아침 기상 알람부터 쇼핑, 게임, 약속, 계약, 예금과 대출, 영화관람, 통화, 뉴스검색, 예약, 지도검색까지 스마트폰의 신세를 지지 않는 것이 없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새로운 인류를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고 명명했다. 2015년 3월 표지기사 ‘스마트폰의 행성’을 통해서다. 포노 사피엔스는 ‘지혜로운 폰을 사용하는 인간’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중독의 단계로 넘어서는 포노 사피엔스도 있다. 길을 걸을 때, 일을 할 때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스몸비족’이라 부른다.

포노 사피엔스는 산업생태계를 바꿨다.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MAGA(MS, 애플, 구글, 아마존), NFT(넷플릭스, 페이스북, 트위터)는 포노 사피엔스를 고객으로 둔 기업들이다. 지난해까지 시가총액 세계 1위였던 MS는 최근 아마존에 왕좌를 넘겨줬다.

스마트폰은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이 양분하고 있다. 영화 속 석호의 아내인 예진(김지수 분)은 “남자와 여자는 뇌 운영체계부터 다르다”며 “남자는 안드로이드폰, 여자는 애플폰”이라고 말한다. 남자는 싸고 다루기 쉽고 바이러스 잘 먹고 일일이 업데이트 안해주면 완전 바보가 된다. 반면 여자는 예쁘고 지조 있고 똑똑하지만 비싸고 까다롭고 호환도 안 되고 자기들끼리만 재미있다는 것이다. 실제 2010년 1월 시장조사기관 닐슨이 2009년 8~10월 사이 미국 소비자 9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여자는 i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남자는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폰을 구매하겠다고 한 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영화 속 경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학부 교수는 “이제 역사는 BC/AD(기원전/기원후)가 아니라 BJ/AJ(스티브잡스 전/스티브잡스 후)로 나눠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완벽한 타인>도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다는 점에서 잡스의 수혜를 받은 영화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