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세계를 움직이는 강력한 힘, 돈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지음·신정원 옮김 위즈덤하우스·1만5000원

꼭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역사를 움직여온 것은 돈임이 분명하다. 전쟁과 분쟁, 갈등과 대립의 뒷면에는 반드시 돈이나 이권이 걸려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2003년의 이라크 전쟁도 후세인 정권이 원유 결제수단을 달러에서 유로로 바꾸려는 시도에서 촉발됐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사실 돈이나 이권이 걸려 있지 않다면 구태여 수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는 전쟁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복잡하고 아리송한 역사도 ‘돈’을 기준으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무관료 출신 작가 오무라 오지로는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원리가 돈이며, 돈이 곧 권력이라고 강조한다. 근대 세계의 기본 질서를 형성한 영국의 성공 비결이 해적질한 돈에 있었다는 것은 자본의 시원적 축적에서 벌어진 폭력성과 야만성을 웅변한다. 당시 영국의 국가 예산이 20만 파운드인데, 해적 선단은 한 번 떴다 하면 30만 파운드를 왕실에 바쳤다. 해적선장 드레이크가 해군 제독이 되고 귀족 작위까지 받은 것은 당연지사다.

산업의 혈액인 석유도 돈과 한 몸이다. 전후 세계 질서를 기초한 얄타 회담 직후에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사우디의 초대 국왕을 만나 사우디를 지켜줄테니 향후 석유 거래는 달러로만 결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달러를 기축통화로 유지할 막강한 후원군을 얻게 된 것이다. 조폐기로 달러를 찍기만 해도 미국이 전세계의 부를 끌어올 수 있는 배경이다.

냉전의 해체도 돈에서 비롯됐다. 1970년대 중반 미국은 GDP의 6%, 소련은 25%를 군사비로 지출하는 사실상 전시체제였다. 막대한 국방비 부담으로 미국의 공업 생산성이나 제조업 경쟁력은 독일과 일본에 추월당했다. 세계의 부자 미국은 1985년 세계 최대의 ‘빚쟁이’로 전락한 이후 소련과 군축 회담에 적극 나선다. 하루바삐 냉전을 종결해서 경제 패권을 지켜야 한다는 위기감에서다.

현재의 국제 상황도 마찬가지다. ‘미국=일등’의 공식이 흔들리게 된 것은 누적되는 무역적자 탓이다. 빚더미에 올라탄 미국이지만 여전히 달러를 사주는 나라들 덕택에 미국의 패권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위안화를 무역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국가에게 특혜를 준다면 기축통화의 권력교체도 가능할 수 있다. 물론 중국 또한 금융 시스템이나 공해, 양극화 등 많은 문제를 갖고 있고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호락호락하게 단순 채무국으로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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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물은 유전한다. ‘해가 지지 않는다’던 영국의 파운드화도 브레튼우즈 협정 이후 권좌에서 내려왔듯이, 미국의 ‘그린백’도 한계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의 달러가 다른 통화에 자리를 내주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저자의 지적처럼 단순히 미국 몰락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경제 판데믹(pandemic)‘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미국은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문제아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