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시대 따라 영화 속 경찰도 변했다

비리의 온상에서 정의의 공권력까지… 사회 분위기 반영한 이미지 변신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뒹구는 정의의 수호자. 법의 집행자이면서도 가끔은 법을 무시하고서라도 범죄자를 응징하는 어두운 히어로, 툭하면 범인을 놓치는 무능하고 아둔한 집단, 반쯤은 깡패나 다름없지만 결정적일 때는 정의로운 소시민.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경찰의 면면들이다. 경찰은 영화에 단골로 등장한다. 국내 영화는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찰이란 ‘정의’와 ‘폭력’을 다룰 수 있는 소재인 동시에 시민이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마주치는 국가권력의 모세혈관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경찰이 묘사되는 모습의 변천사를 보면 당대인들이 생각하는 공권력의 민낯을 파악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최초로 흥행한 경찰영화는 <투캅스>다. 1993년 개봉했으니 영화 제작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문민정부가 시작되자마자 만들어진 셈이다. 금기시되어 오던 경찰 공권력을 영화 소재로 썼다. 영화에는 경찰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 베테랑 조 형사(안성기)에게 불법도박 현장을 덮치면서 능숙하게 수표 몇 장을 빼돌리고, 오락실 주인들에게 돈을 걷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중앙경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원칙에 철두철미한 신세대 강 형사(박중훈)와 짝이 되며 조 형사의 부패에는 ‘브레이크’가 걸리고, 둘은 시시때때로 다투지만 사건을 해결해내는 명콤비로 변화한다. 5공 시절 만연해 있던 경찰의 부패를 통렬하게 풍자해 큰 인기를 끌었다. 뛰어난 인기 때문에 2편(1996년)과 3편(1998년) 등 속편이 제작됐다. 속편에서 강 형사는 자신이 비판했던 선배 조 형사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전편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그러나 바꿔 생각해보면 개혁의 좌절이다. “나이들면 어쩔 수 없다”며 부패를 묵인하고 순응하는 모습에는 각종 비리 게이트가 터지고 유흥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IMF 외환위기 직전의 한국 사회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7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배우 마동석에게 명예경찰 위촉장을 수여한 후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마씨는 영화 「범죄도시」에서 형사 마석도를 연기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찰의 부패 통렬하게 풍자한 <투캅스>

2002년 개봉한 <공공의 적>에서 경찰 이미지는 10년 전과는 자못 다르다. 경찰은 풍자의 대상에서 사회악을 때려잡는 정의의 수호자로 등장한다. 서울 강동경찰서 소속 강철중은 <투캅스>의 형사들과 다를 바 없는 구악(舊惡)으로 그려진다. 조폭을 두들겨 팬 뒤 마약을 빼돌려서 팔거나, 전과자나 노점상에게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조규환(이성재)이 등장하면서, 그는 정의를 지키는 경찰이 된다. 강철중은 수사에 방해된다며 상부와 검사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정의에 눈을 뜬 이상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달려든다는 점에서 이 해 선거에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독재정권의 수호자였던 경찰 공권력을 비로소 시민권력의 대변자로 어느 정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인식 변화로 읽힌다.

경찰과 검찰 간의 관계가 영화의 주된 소재가 됐다는 점도 특징이다. 검찰이 경찰을 통제하는 악으로 그려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김대중 정부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자치경찰제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화됐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비친 검찰의 모습은 국민들의 반감을 사 수사권 조정의 찬성 여론을 높였다.

2006년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쌀협상 국회 비준 저지를 위한 농민시위에서 과잉진압으로 농민 2명이 사망하면서 여론은 반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규모 경찰비리가 적발되면서 수사권 조정은 흐지부지됐다. 정부는 검찰과 경찰 모두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2010년 <부당거래>는 검찰과 경찰, 언론의 파워게임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 중에서 가장 약자인 존재이나 권력의 사슬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던 최철기 반장(황정민)만이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부패에 대한 풍자인 동시에 ‘거악’은 여전히 떵떵거리고 살아있는 사회상을 반영한다.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추격자>는 이명박 정부 첫 해의 개봉작이라는 점에서 김영삼 정부 첫 해의 개봉작 <투캅스>와 대비된다. <투캅스>에서는 공권력의 부패가 두드러졌지만 <추격자>에서는 공권력의 부재가 핵심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추격자>는 공권력의 상실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연쇄살인범을 쫓는 이는 현직 경찰이 아니라 부패혐의로 옷을 벗고 출장 안마방을 운영하는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이다. 경찰은 여러 작전을 쓰고도 연쇄살인을 해결하지 못했다. 엄중호는 경찰이 아니라 경찰의 심리를 잘 아는 일반인에 가깝고, 그 자신이 범죄자(성매매 알선)다. 엄중호의 출장 안마방에서 일하는 김미진(서영희)이 도망쳤다가 다시 연쇄살인마(하정우)에게 잡혀 살해당한다. 김미진을 보호하지 못한 게 경찰이었다. 차악은 있어도 선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가 희생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강 교수는 “<추격자> 이후에는 경찰이나 검찰, 법을 믿지 않아서 나오는 사적 복수 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이명박 정부 시절 영화의 메시지는 ‘공권력은 없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신뢰도는 2013년 기준 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었다.

영화 「베테랑」의 형사 서도철(황정민·사진 왼쪽)은 안하무인 범죄자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사진 오른쪽)를 끝까지 쫓아가 처절하게 응징한다.

불의에 타협 않고 정의 실현한 <베테랑>

유쾌한 경찰영화는 박근혜 정부 말기에 등장한다. <베테랑>(2015년도 개봉)이다. 경찰이 정의를 실현하는 동시에 <투캅스>나 <공공의 적>과 달리 부패하지 않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현실에서는 분명 경찰은 재벌의 유혹에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베테랑은 일종의 판타지를 줬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대사를 치면서 유혹을 뿌리친다”며 “정의를 구현하는 베테랑 경찰들을 보여준 영화”라고 평했다. 강유정 교수는 “이 영화의 초점은 악의 구체화”라고 말했다. 배우 유아인씨를 통해 재벌 3세의 갑질이 코믹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권력의 부패에 대한 분노, 침묵하지 않겠다는 시민적 열정, 대안권력을 세우려는 열망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오로지 정의로운 경찰이 등장하는 영화가 나오기까지 민주화 이후 약 30년이 걸린 셈이다.

촛불 이후의 경찰영화는 어떨까. <청년경찰>과 <범죄도시>가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배경을 서울 가리봉동의 조선족 밀집지구로 한다. 바다 건너 온 조선족 폭력조직이 척결할 악의 대상이다. 경찰이 시원스럽게 악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조선족 혐오 조장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청년경찰>에서는 경찰대생이 해결사다. <범죄도시>의 주인공 마석도(마동석)는 ‘괴물형사’로 불린다. 서울 금천경찰서 괴물형사로 불리는 인물로 깡패보다 더한 무력으로 깡패를 때려잡는 형사다. <청년경찰>의 경찰대생은 월권으로, <범죄도시>의 마 형사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촛불 이후,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공권력의 모습에 대한 열광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찬일 평론가는 “대중과 평론가는 마동석 폭력에 박수를 보낸다. 경찰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긍정적으로 그린 연출 탓이긴 하지만 폭력을 희화해서 연출한 게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허핑턴포스트> 기고 글에서 “형사가 피의자를 패는 것을 보여주는 점이 불편했다”고 적었다.

<정상빈 자유기고가 literature09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