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비정규직·재벌개혁 ‘못다한 과제’

참여정부서 추진하다 실패한 한국 경제의 병폐 최우선 해결해야

비정규직과 재벌개혁.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과거 참여정부의 실패한 경제정책이다. 두 문제는 참여정부의 실패 이후 보수정권 9년을 거치며 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공통점도 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문 대통령의 경제공약 최상단에 비정규직 문제 완화와 재벌개혁이 위치한 이유다. 비정규직과 재벌개혁 문제는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저성장, 양극화 등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에서도 문 대통령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비정규직 얼마나 감축될까

참여정부가 처음부터 비정규직 양산을 목적으로 기간제법을 만든 건 물론 아니었다. 참여정부는 분명 과거 정권에 비해 노동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실제 전문가들도 입법에 많이 참여했다. 들쭉날쭉한 기업의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사용기간 만료 후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자는 게 당초 취지였다.

하지만 취지와 현실은 달랐다. ‘영악한’ 기업들은 법의 허점을 악용해 온갖 편법 사용을 일삼았다.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2년이 되기 전 일방적인 해고를 통보하기 일쑤였다. 2년이 아닌 수차례 단기계약을 반복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정부가 ‘해법’이라고 내놓은 무기계약직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이상한’ 신분을 낳았다. 어느 것이든 고용불안정이 계속됐고, 이는 경제부문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잡았다.

2017년 4월 25일 경제민주화 실현 전국네트워크, 2017 중소살리기 대선행동, 전국가맹점주협회의 연석회의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손팻말을 들고 차기 정부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국정 핵심과제로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경란 민주노총 비전국장은 “더 심각한 것은 기간제와 파견제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이 증가한 것”이라며 “지난 10년 동안 정부의 친기업 재벌정책과 비정규직법 개악 등으로 간접고용은 제조·서비스업·공공부문 등에 광범위한 저임금 노동의 대표적 고용형태로 나타났고, ‘위장된 자영업자’로 불리는 특수고용은 250만명을 웃돌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용기간을 정해 규제할 경우 악용 소지가 너무 많다는 점은 기간제법이 제정될 당시 이미 공론화됐던 사안이지만 참여정부는 노동계의 우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간접·특수고용을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의 ‘원죄’는 참여정부에 있는 셈이다.

집계하는 기관마다 수치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비정규직은 기간제법이 생긴 10년 전보다 지금이 더 많다. 통계청 집계로는 2007년 8월 570만명이던 비정규직이 지난해 8월 기준으로는 615만명으로 늘었다. 간접·특수고용까지 포함해 계산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집계로는 같은 기간 비정규직이 816만명에서 873만명으로 늘었다.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였던 문 대통령 역시 비정규직 문제의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감축과 처우개선을 위해 비정규직 비율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수준으로 낮추고,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을 제정해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격차와 차별을 해소해 나가겠다고 공약했다. 간접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대기업인 원청기업이 ‘공동 고용 책임’을 지도록 법제화해 근로조건 결정 및 산업안전분야와 관련된 책임을 하청기업과 함께 지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도 포함됐다.

비정규직 해법을 통해 참여정부의 실패도 바로잡고 당면한 경제현안도 풀어낸다는 게 문 대통령의 복안이지만 계획대로 실행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2015년 기준 OECD 통계 기준 22%인 국내 비정규직 비율을 회원국 평균인 11% 수준으로 줄이는 일이 만만찮다. 산술적으로 비정규직 숫자를 현재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12일 “정부부터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모두 없애겠다”고 밝혔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전부 없애도 8만명 수준에 그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해소되면 민간부문으로 확산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의미가 있다”며 “다만 각 공공부문별로 고용형태나 임금격차 등에 따라 전환과정에서 다양한 갈등이 불거질 수 있으므로 세심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동 고용 책임 법제화나 최저임금 1만원 상향 등의 공약은 재계의 강력한 반발이 불보듯 뻔하다. 문 대통령은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재계 및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에 비해 문 대통령의 비정규직 해법의 상당수가 기업의 이익과 충돌하는 것이어서 공약의 이행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열을 원만하게 조정해낼지가 관건이다.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만 해도 대선기간 중 이미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로부터 “근본적인 해법이 못된다”고 혹평을 받는 등 법 제정과정에서 험로가 예견되고 있다.

벌써부터 “재벌개혁 의지 있나” 비판

문 대통령의 경제공약 ‘1호’인 경제민주화의 경우 재벌개혁이 핵심이다. 재벌개혁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를 계기로 국민적 열망으로 떠오른 ‘적폐청산’의 최우선 과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재벌의 불법경영승계, 황제경영, 부당특혜를 근절시키겠다”며 총수 일가의 부당한 지배력을 제한하기 위한 각종 제도 도입과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개정안의 통과 등을 공약했다.

문 대통령이 거론한 재벌개혁안의 상당수는 과거 참여정부에서도 시도했다가 흐지부지로 끝난 정책들이다. 참여정부가 재벌개혁에 실패한 주요 요인으로는 재벌개혁을 주도할 전문가가 없었던 점이 꼽힌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참여정부는 재벌개혁을 포함한 경제개혁 정책을 주도할 적절한 인물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기존 경제관료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줬다”며 “보수적인 경제관료들 사이에서 재벌개혁의 의지와 힘이 떨어져 결과물을 내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불거진 SK그룹의 ‘소버린 사태’로 정권 초기부터 재벌 규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었지만 정부가 기업과 국민을 설득할 제대로 된 명분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패착으로 지적된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실패를 인정하고 반성하겠다는 뜻을 꾸준히 밝혀왔다. 2012년 18대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에도 “참여정부의 재벌개혁이 흔들려 재벌공화국의 폐해가 더 심각해졌다는 것을 깊이 성찰하고 있다”며 “두 번 실패하진 않겠다”고 밝혔다.

참여정부 당시 ‘인재부족’을 절감한 문 대통령은 대선캠프에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영입해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를 다져왔다. ‘기업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과 위상도 대폭 올라갈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벌개혁이 새 정부의 국정과제가 되면서 최근 기업들의 최대 관심사가 공정위원장이 누가 되느냐는 것”이라며 “공직사회에서도 이젠 기재부보다는 공정위를 선호하는 움직임이 더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두 번 실패는 없다”고 공언한대로 재벌개혁을 과감히 추진해 나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다만 문 대통령이 집권 초기 ‘일자리위원회 신설’을 첫 지시로 내리고,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10조원대 추경을 검토하는 등의 움직임을 감안할 때 문 대통령의 경제분야 최우선 관심사가 재벌개혁이 아닌 일자리 창출에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박상인 교수는 “재벌개혁은 정권 초기부터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려운 공약”이라며 “재벌개혁을 하는 것이 곧 일자리 창출이나 내수 활성화 등 여러 현안을 해결하는 길이기도 한데, 문 대통령이 너무 일자리 문제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당장 시행령 등을 바꿔 추진할 수 있는 재벌개혁안도 많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문 대통령이 신설한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에 누가 임명되는지에 따라 재벌개혁의 방향성이나 추진력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